인간과 사유 (5). 예술은 왜 훌륭한가

in #kr5 years ago (edited)

인간과 사유 (5). 예술은 왜 훌륭한가


문학 작품이나 예술품이 위대하다는 말은 대중들에게 와닿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현인들에게나 의미 있는 말이다. 하지만 위대하다, 위대하지 않다 그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논의다. 그런 것들이 뛰어난 데는 누군가의 평가나 받자고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이나 어떤 기록들이 값지다는 건 그게 순수한 생각에 가까운 덕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 역시도 비물질적 물질이다. 허나 이들은 메타 물질로 작용하는 공산품 따위와는 달리 보다 더 비물질의 영역을 담고 있다. 가령 휴지는 뭔가를 닦는 정도의 용도로 쓰이지만 노트는 그것에 문자가 새겨지는 순간 오로지 사유를 담지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같은 이치로 아무리 위대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었어도 그의 모든 부분이 뛰어날 수는 없다. 예컨대 니체의 작품은 무수한 사람이 옮겼으나 그가 똥을 싸는 장면과 그것에 대해 기술한 사람은 없다. 실로 니체라도 똥은 누기 마련이며, 그건 구태여 배우거나 들여다볼 만한 일은 아니다. 나 역시도 똥을 싸고, 오늘 만난 사람들 누구나 똥을 싼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물질계의 일을 사유에 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가급적이면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려고 하지, 내 육체가 겪는 모든 문제들까지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물질계에 놓인 인간들은 그 자신이 속한 물질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를 지칭할 때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육체를 가리키게 되지만 누군가를 쫓는다는 건 분명히 말하건대 그를 따르는 게 아니라 그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지, 그의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사물을 가리키고 박수를 친다면 그것은 그 사물의 결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 사물 속에 내재된 비물질적인 생각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뛰어난 사유를 담을 수만 있다면 물질의 형태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는 소리가 된다. 현대 예술이 갈수록 비정형화 되어가는 까닭이 여기에 기인한다. 이점은 추후에 좀 더 세부적으로 논하겠다.

어쨌거나 사유를 위한 비물질적 물질들은, 육체와 결합해 불완전한 자아를 이루고 있는 나 자신보다 훨씬 나아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사유를 제한받는 인간들에게는 그 자신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만큼이나 축복 같은 기회다. 그것은 나의 가장 뛰어난 부분을 현현케 하는 것으로, 흙탕물 속의 진주를 건지는 것과 같고 썩은 기름에 젖은 백조가 빛을 내며 비상하는 것과 같다. 뛰어난 사상을 가지게 된 현인들이 그 자신의 저술 혹은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목숨까지 불사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신의 육체는 통제되지 않은 다양한 요인들이 섞여 온전한 나, 자아의 탐구를 방해할 뿐 아니라 어차피 언젠가는 소멸돼 무의 세계로 환원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가장 뛰어난 부분인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그것을 ‘꺼내’ 오래도록 곁에 두고 그것에 몰두하는 방법뿐이다. 비록 위대한 자들의 정신은 육체적, 물질적 한계를 만나 현실로 ‘꺼내어 졌’지만 그 꺼내어짐의 목적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완전한 나의 완성을 향해가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 그것을 참고하면서 그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면 그는 보다 고차원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한 위대한 인간의 생애는 그가 ‘남긴 것’의 발전과 계승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것들을 탐구하는데,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을 직접 참고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그가 만들어낸 훌륭한 것, 거기에 내재된 생각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꼭 어떤 작품, 회화나 조각, 문학 같은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이나 스포츠도 예술일 수 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꺼내어진 것’을 바탕으로 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비물질적 물질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훌륭하거나 위대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데, 특별히 훌륭한 것은 그것이 훌륭한 생각을 담고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훌륭한 것의 기준을 ‘논파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실로 어린아이들도 비물질적 물질을 만들 수 있지만, 우리가 초등학생의 그림일기를 보고 예술작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양식을 빌려온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비단 초등학생의 그림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전문인이라 하는 사람이 예술을 자처해도 예술이 아닌 경우가 있다. 우리가 예술, 혹은 훌륭한 것이라고 할 만한 것에는 그만한 사유가 담겨있어야 한다.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보자마자 그에 반하는 사유를 대입해 중화시킬 수 있는 것은 훌륭하지 않다. 논파되지 않는 굳건한 사유를 지닐 수 있다는 건 그 자신이 곧 사상인 상태, 누구도 접근하지 않았거나 접근했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견해를 가지는 것이다. 그런 훌륭함은 대체로 불멸성을 추구하는데, 가장 뛰어난 부류의 예술이 대개 인간의 본질을 향하고 있는 까닭 역시 현재로서는 우리가 인간이며, 인간이 결국 또 인간을 탄생시키기에 인간에 대한 물음은 영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학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주 또한 그 본질인 시공간과 물질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일수록 위대함은 두드러진다. 같은 이치로 쉽게 해체되지 않지만 영원히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자신의 공고한 견해를 세운 사람은 누구든 예술, 훌륭한 비물질적 물질을 낳을 수 있고, 그 자신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인간이며, 평생 어쩔 수 없이 온전한 사유의 상태로 살아갈 수 없다면 예술 내지는 뛰어난 비물질적 물질을 향한 고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그런 갈망이 절로 우리를 뛰어난 예술과 물질, 그것에 담긴 생각으로 이끈다.


<인간과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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