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유(2). 부와 사유

in #kr6 years ago (edited)
인간과 사유(2). 부와 사유

훌륭한 생각을 할 때 좋은 점 중 하나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돈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회에는 머리에 똥이 들어찼는데도 돈만 많은 인간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물론 가난하다고 좋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순전히 개인의 능력이다. 훌륭한 사람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언제나 훌륭한 생각을 유지할 뿐이다. 그런데 훌륭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훌륭한 생각의 기준은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면서 쉽게 논파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유가 됐든 간에, 쉽게 반박할 수 없다면 최소한 현사태의 진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논파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사유를 내뱉는데, 그런 생각을 할 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면 누구나 현자가 될 수 있다.

어쨌거나 가난하면서 훌륭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하면서 훌륭한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어려운 와중에 평정을 유지하는 게 더 대단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난한 현자는 가진 것이 좋은 생각뿐이고, 줄 수 있는 것도 좋은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 혹은 배울만한 품행뿐이다. 나는 특별히 이러한 사람을 ‘벗어난 자’라고 칭하겠다. 만약 누군가 그와 만난다고 했을 때, 훌륭한 생각만을 좇는 사람은 그의 가난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테지만, 좋은 생각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이 훗날 이익이 될 건지 재는 사람은 벗어난 자의 거지꼴부터 보게 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이익의 노예가 되어 부의 채찍질에 게거품을 물고 뜀박질 하는 한 마리 가련한 말이 되고 만다. 1만을 벌었으면 10만이 쫓아오고, 10만을 벌었으면 100만이 쫓아온다. 부라는 건 본래 한계가 없는데, 만족을 모르는 한 인간이 그 무한한 부(여기서의 무한한 부는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크기를 나타낸다)를 받아낼 수 있는 능력은 아주 제한적이다. 게다가 부란, 그것을 벌어들인 만큼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폭포를 포대에 담으려고 하면 물이 반드시 넘치기 마련이고, 그걸 막기 위해서는 개처럼 뛰어다녀야하는 것이다. 포대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쥐고 있던 포대는 쓰러져 엎어질 것이며, 포대에 물을 담자마자 바로 뛰어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무리하게 된다. 이익이 떠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당최 말할 것이 없어서 가진 것만 늘어놓는 사람은 추하고 때로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물며 작은 이익 앞에 오락가락하는 제 가진 것도 궁색한 사람이 그 주제를 모르고 무한한 탐욕만 부리는 꼴은 얼마나 한심한가. 그런 인간들과 벗하는 건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현자에게는 더더욱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런 까닭에 벗어난 자가 그 점에 관해서는 부유한 현인보다 낫다는 것이다. 벗어난 자는 이익이 없다. 애초에 이익에 눈이 멀어있는 인간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진정 훌륭한 생각을 쫓을 줄 아는 ‘자각한 인간’들만이 비로소 그에게 대화를 시도해볼 뿐이다. 그래서 현자의 가난은 위선을 벗겨내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하는데, 때로 현자들은 그것 때문에 일부러 가난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부유한 현인은 그 자신을 쫓는 인간들이 부를 쫓는 것인지, 생각을 쫓는 것인지 긴가민가할 수 있다. 실로 부자의 몇 마디면 파리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든다. 만약 그 부자가 현자라고 했을 때, 그들 중 영악한 자들은 위선의 탈을 쓰고 ‘생각을 듣는 척’도 할 것이다. 이런 기만까지 간파할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작정하고 덤벼드는 수많은 위선자들을 가려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며, 가릴 수 있다 해도 그건 매우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생각하거나 듣는 일을 전제로 하는데, 왜 좋은 생각을 하거나 쫓는 게 좋은 일일까? 잠깐 이 점을 살펴보자. 그건 우리 모두가 자연계를 이루는 수많은 물질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의식’이라는 독특하고도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험적 사실보다도 의식 작용은 더 값지다. 금이나 다이아몬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물질은 우주상에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생각은 우주에서 가장 귀한 것임에 틀림없다. 태양계 주변만 해도 무수히 많은 물질들이 있지만 생각은 인류의 숫자만큼만 있다. 금 광물보다는 순금이 더 귀하듯이, 생각도 아무 생각보다는 당연히 정제된 생각이 더 귀하다. 즉, 가치의 정도로도 생각, 탁월한 생각을 추구하는 건 마땅해 보인다.

허나 생각이 가장 가치 있다는 건 단지 희소성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은 물질이 할 수 있는 가장 비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자연계의 법칙을 따르지만 생각은 자연계의 법칙을 모두 무시한다. 심지어 시공간도 무시하는데, 지구 어딘가에 앉아서 수천 광년 떨어진 본적도 없는 블랙홀의 존재를 예견하고 알아맞힐 정도이다. 예컨대 돌멩이가 블랙홀을 발견하는 방법은 그 중력에 이끌려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허나 생각은 보지도 않고 그 존재를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생각은 ‘위대한 정신의 승리’라는 문구처럼 이 감각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표현할 수 있다. 적어도 사유의 영역 내부는 불가능이 없고,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가 있는 것이다. 물질을 자유자재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물질을 넘어선 개념까지도 자유롭게 탐닉할 수 있다. 이 초월성은 감각세계에 실망해버린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곳이 되는데, 감각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이상 무엇이든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생각에 몰두할 시간도 부족해서, 웬만한 이야기가 아니면 듣고 나누지 않으려 한다. 세상은 매사 모든 것이 의미로 점철돼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이 수많은 자물쇠를 한번 목격한 인간은 그것을 풀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입을 닫아버리고 만다. 헌데 ‘생각’보다 가치 없는, 지천에 널려있는 것들만을 매일 떠드는 인간을 오래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그런 현인들도 물질로 이뤄진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걸 살리기 위해서라도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생존에 힘써야 한다. 그런 점에 빗대보면 진정 ‘돈을 잘 쓰는 사람’은, 아무 때나 얻을 수 없는 생각을 얻기 위해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일컬어 자유인이라고도 하는데, 실로 생각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업적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사유를 확장시키기 위해 돈, 물질을 마음대로 다루는 자, 그래서 물질계에 놓인 자신의 육체를 구태여 돌보지 않아도 되는 자,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된 행복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우리의 육체에 내재되어있고 생각 자체는 물질을 초월한 것이긴 해도, 육체는 물질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인지부조화적인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유했던 옛 사상가들이 그 자신의 부를 ‘사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사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인지를 통해 어떤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인지를 받아들이는 과정, 예컨대 책을 사는데 주머니의 지폐를 세고 있는 곤궁이 낫겠는가, 아니면 마음대로 책을 구입해도 생명을 잇는데 지장 없을 정도의 부를 소유한 게 낫겠는가. 당연히 후자가 좋은 것이다. 또한 가난에 시달리다 굶은 나머지 뇌 기능이 정지되어 더 이상의 생각을 이어가지 못한 이들 역시 그런 사태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유를 생의 목적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기회가 있으면 재빨리 탈취해서 나의 생각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단, 그것이 나의 사유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결국,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생각의 희소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고 이를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며, 그런 생각 중에서도 가볍게 논파할 수 없는 훌륭한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부를 활용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게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확정짓는 건 생각 그 자체 말고는 없으며, 그것이 아닌 살아갈 이유는 무수한 반박에 직면하게 되어 죽음이라는 결론만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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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작가님 글을 보네요. 리스팀 해두고, 아꼈다가 읽어보렵니다 ㅋㅋ 가즈앗!!!

요즘 너무 콘텐츠 제작에만 몰두한 것 같아서 다시 글도 좀 써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선생님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힘이자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즈앗!!!

생각을 많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생각 가즈앗~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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