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유 (4). 사유가 즐겁다면 가장 재미있는 건 인간 세계다

in #kr6 years ago (edited)

인간과 사유 (4). 사유가 즐겁다면 가장 재미있는 건 인간 세계다


생각이 희귀하다는 건 앞선 글들로 증명이 됐다. 우리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너무 가까이에 많은 생각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주에 내던져져 산소가 사라진 다음에야 비로소 숨을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주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오지에 나가 대자연 속에 얼마간 있어보면 마음이 평온할지언정 그다지 생각할 거리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생각할 거리가 없어 절로 심신이 편안해지는 이 현상은 두고두고 이용해볼 필요가 있다. 매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육체의 도움을 받고 있어서 24시간 같은 강도로 생각할 수 없기에 휴식을 취해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유의 장소로는 도시만한 곳이 없다. 왜냐하면 도시는 모든 것이 생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인간이 생각해서 만든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는데, 도시 생태계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관찰하거나 교류하는 일도 흥미진진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순수한 생각은 예술품 안에만 들어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생각은 도시의 가로등에도 있고, 빌딩 속에도 숨어있다. 그것들은 분명 인간의 육체적인 부분이 아닌 순수한 사유의 결합들로 이뤄진 것이다. 가로등에는 ‘길을 밝히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고, 그걸 어떻게 해내는지 그 방법을 품고 있다. 그건 모두 생각이다. 재미있는 건 이 모든 생각들이 완성된 게 아니란 거다. 모든 도시의 결과물들은 논파될 위험에 처해있다. 도시의 모든 부분이 완벽하다면, 우리는 구태여 우리의 몫을 강제로 헌납하면서까지 공무원들을 쓸 필요는 없을 거다. 그러나 도시의 모든 부분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논파되기 쉬우며, 필요는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공산품에 깃든 생각은 아무리 그럴싸해도 훌륭하지는 않은 것이다. 어쨌거나 도시는 가장 사소한 것일지라도 ‘육체 운전자’들에게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는 생각을 더 많이 써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의식이 없는 물질계의 것들이 생각이라는 비물질의 존재에 의해 만들어져 그것이 생각에 영역에서만 재생될 수 있는 비물질의 영역을 함께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으로 도시를 바라보기 때문에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지만, 생각을 거둬내고 보면 도시는 무척이나 이상한 장소다. 건물은 층이 나눠져 있고 방이 있으며 그 방안에는 전등을 켜는 스위치가 있지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데, 때로 어떤 건물은 그 모습 자체로 ‘물질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기업이나 국가를 상징하기까지 한다. 길거리를 거닐면서 보게 되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소거하고 단지 물질이라고만 생각해보자.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면, 혹은 인간의 의도가 아니라면 그렇게 있어야할 이유가 없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 내재된 생각이 재생되는 순간 거리는 비로소 모든 기능을 찾기 시작하는데, ‘비물질적 물질’들이 내뿜는 의지의 합은 하늘을 뒤엎을 정도다. 우리가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기쁨도 바로 거기에 있다.

생각이 희귀한 만큼 당연히 이 비물질적 물질들도 희귀한 것이다. 그러나 전편에서도 언급했듯, 아무 생각보다는 훌륭한 생각이 나은 법이고, 이 비물질적 물질 또한 아무 물질보다는 훌륭한 물질이 더 낫다. 여기서 훌륭한 물질은 보다 순수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 책이나 예술품, 심지어 대형 실험실이나 우주 발사체까지 포함된다. 그 종류는 인간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한데, 더 주목할 점은 그 물질들은 인간의 생각이 물질계에서 현재 얼마만큼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드러내는데 있다. 그런 점에서는 때로 비물질적 물질은 한 개인의 사유를 능가할 때도 있는데, 도시에 존재하는 것들은 대부분 한 개인이 노력해서 만들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개인의 극복할 수 없음은 도시에 소속된 인간들에게 절대적 무기력을 안겨주기도 하고, 짙은 패배의식에 빠지게 한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갈수록 고독해지는 이유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그저 맹목적으로 도시라는 거대 사유결집체에 따르는 것임을 직각했을 때, 인간은 항거할 수 없는 불능상태와 무기력을 맛보게 된다. 허나 그건 감각에 굴종해버린 인간들의 이야기일 뿐이고, 크고 강한 생각을 지닌 사유자들은 도시의 이런 거대함조차 사유의 논파대상일 뿐이다. 오히려 해낼 수 없는 것일수록 사유의 저변이 물질계에서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 여긴다.

도시는 우리의 사유가 잘 작동하는지, 혹은 작동하고 있는 사유가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 그 모든 긍정과 오류의 결과가 집합해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고 간단명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더구나 도시는 그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무수한 물질과 사유를 불러들인다. 그에 미혹당한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는 도시의 모습처럼 역시나 형편없는 자들도 있지만 우수하고 훌륭한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도 들어있다. 당연히 우리가 큰 도시로 나아갈 때, 그 속에서 사유를 즐거움으로 삼는 또 다른 존재들을 만날 확률 역시 커진다. 그렇기에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도시는 ‘육체 운전자’이자 ‘사유재생기’인 우리에게는 더없이 재미있는 공간이며, 또한 나의 사유가 실험되어 물질계의 육체와 비물질계의 정신이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과 사유>

인간과 사유 (3). 생각의 본모습과 나의 본모습
인간과 사유 (2). 부와 사유
0. 신은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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