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18. <셰이프 오브 워터>, '혐오의 눈'을 찾아내는 '물'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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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room.18(film)


<셰이프 오브 워터>, '혐오의 눈'을 찾아내는 '물'


1. 혐오를 체험하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사랑이야기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지만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금 충격적이다. 괴물과 인간이 교감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괴물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말 그대로 괴물(프랑켄슈타인)인 것도 있었으며, 괴수(킹콩)이거나 외계인(ET)인 부류도 있었다. 어쨌거나 인간과 괴물이 교감한다는 내용 자체는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괴물과 인간이 ‘성적인 교류’를 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일라이자(샐리 호킨스)와 괴물(더그 존스)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혐오스럽게 봤다면,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폭력의 시대’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혐오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 부분에 집중한다. ‘말로만 혐오를 부당하다 외치지 말고, 네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느껴봐!’ 라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실은 사회가 ‘괴물’로 낙인찍어버린 이들을 대표한다. 장애인 여성 주인공 일라이자와 늙은 동성애자인 그의 동거인 자일스(리차드 잰킨스), 그리고 일라이자와 함께 일하는 흑인 여성 젤다(옥타비아 스펜서)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혐오의 주박이 씌워진 인물들이다. 게다가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청소부’와 ‘사진에 밀려 도태된 극장 간판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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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이나 '장애'에 대해서, 혹은 '인종'에 대해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사진 : 다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8)


그런데 이들이 경험하는 박해와 차별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어떤 부류의 이들이 이러한 사람을 혐오하고 심지어 증오까지 하는데, 사실 우리는 그들이 왜 그렇게 그들을 싫어하는지 잘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나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마치 우리가 매일 뉴스로 범죄를 접하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 살인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 살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충격을 받고 살인자에 대한 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테지만, 뉴스로 이를 접한 우리들은 ‘살인 사건이 발생했군. 저 나쁜 살인자 같으니’ 하고 일주일 뒤면 잊어버릴 게 뻔하다.(가끔은 생각날지라도)

같은 이치로 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대해 우리는 막연한 태도로 대할 수밖에 없다. 우선 대부분의 우리는 혐오의 범주 안에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혐오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 여행을 나가 ‘동양인 비하’를 겪고 난 뒤 인종차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는 여행기 등에서 보듯이, 사람은 그것을 실제로 겪거나 목도하지 않는 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만약 이 영화가 단지 일라이자와 자일스, 그리고 젤다의 인간 역경을 다룬 이야기로 꾸며졌다면 흔하디흔한, 그리고 ‘일주일 뒤에 잊혀질’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우리에게 직접 혐오를 떠안긴다. ‘여기 등장하는 ’괴물‘은 우리와 모습만 다를 뿐, 지능도 있고 감정도 이해하는 동물이야. 하지만 징그러운 외모에 열 받으면 손가락도 잘라버릴 만큼 위험하고 괴성을 질러대지. 그런데도 네가 이 녀석을 혐오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라고 패기만만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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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뿐이었다면 우리는 끝내 우리 내면에 숨은 '혐오의 눈'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 : 다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8)


일라이자는 ‘괴물’을 구출하는 것을 넘어 그와 섹스까지 시도한다. 이것은 학대당하고 멸시당하는 괴물에게 동병상련의 처지를 느껴 정감을 나누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 일반의 범주에서라면 이 장면에서 우리는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교감이 가능한 지적 생명체라 하더라도, 역할을 바꿔 우리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비로소 우리 내면에 감춰진 혐오의 본질을 깨닫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이 혐오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혐오가 있다. 하다못해 시금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진화의 산물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금치가 싫은 사람은 그냥 시금치가 맛이 없어서 싫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적어도 여기엔 이유가 있다. 시금치가 ‘맛이 없어서’ 싫어했다면, 그래서 괴물과 일라이자의 관계에 대해 어떤 거부감이 들었다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징그러운 외형의 괴물과 괴물이 보여준 폭력성 혹은 이종교배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 등등. 만약 이중에서 외형만으로 괴물과 일라이자의 관계를 ‘부적합’하다고 여겼다면 그건 우리에게 ‘외형을 보고 혐오하는 마음이 있음’을 증명해준다.

이러한 사실을 꺼내놓고 보면 혐오라는 감정이 피상적인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혐오의 감정은 이성의 영역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세밀하지 않다. 만약 우리가 이 ‘괴물’에 대해서, 특히 ‘교감이 가능하고 고등 지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더라면 어쩌면 호프스테들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가 그러했듯이 쇠사슬을 채우기보다는 교류를 시도해봤을지도 모른다(그럼에도 성적인 교류는 힘들겠지만).

그런 점에서 주인공 일라이자가 성적 욕망을 탐닉하는 모습들은 제법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영화 속 일라이자의 적대자로 등장하는 스트릭랜드 대령(마이클 섀년)이 그러하듯 개중에 어떤 사람들은 일라이자가 농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다수의 시선들은 여전히 한 인격체를 대한다기 보단 ‘부족한 인간’, ‘나보다 질적으로 못한 인간’ 으로 치부한다.(‘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욕이 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그런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라이자는 극 초반부터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각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성질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들도 욕구를 해결하고픈 고유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인간의 욕구를 가지고 있듯이, 그들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나 인격적인 가치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피상적인’ 다름으로 인해 사람의 영역에서 추방된 이들은 인격체임에도 인격체로서 활동할 수 없다. 그것이 이 작품이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철학이다.

이것은 일라이자 주변의 소외자들 모두에게 적용시켜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쓴 외피 너머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보았는가? ‘괴물’의 위협적인 생김새외 괴성 너머에 사람과 교감하고 ‘생명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과연 우리가 저 실험실의 관계자로 서있었어도 알아챌 수 있었을까? 그러한 박해 속에서 고통 받은 자들만이 ‘괴물’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며, 그런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생명’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적어도 ‘괴물’에 관한 한, 아마 우리는 파괴를 일삼았던 스트릭랜드 대령의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의 본질을 정의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혐오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이 혐오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눈을 얻게 해준다. 물은 곧 생명을 상징한다. 물 속에서 혐오를 벗어던지고 '괴물'과 교감하는 일라이자의 모습은 마침내 ‘생명의 모양’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혐오는 끝내 생명을 총알로 관통하지만, 혐오를 벗어던진 눈은 이 상처마저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생명의 근원으로 채워낼 힘을 부여한다.

우리도 이들처럼, 서로에게 혐오보다는 '이해'를 건넨다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일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혐오에 따른 파괴는 중지되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생명은, 그 모양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와 비장애, 노인과 젊은이, 흑인과 백인, 이데올로기의 대립, 그 모든 인간들의 혐오들로부터 말이다.


'영화가 있는 공간, 영화를 느끼는 공간 Feelroom'


*지나간 '필룸' (최근 3편)

필룸. 17 <그래비티>, 우주를 체험하는 또 하나의 감각, 완벽한 감각
필룸. 16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은 '지금'뿐이다
필룸. 15 <킹스맨 2>, 더 이상 ‘킹스맨’은 없다


*함께보면 좋은 리뷰

풍류판관(@admljy19)님의
범성애를 다룬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 섹스의 정체를 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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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이해에 핵심이 있었군요. 경민님의 해석 멋지네요. 근데 왜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가 끝날때쯤 물고기인간이 사람보다 낫더군용. 최악의 인간이 계속 화면에 같이 나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ㅎ

물고기인간은 사회에서 '괴물'로 낙인찍힌 자를 상징하는 것이니, 결국 그에게서 어떤 인간적임을 느꼈다면 경아님이 가진 '혐오의 눈'은 건강한 상태라고 봐도 되겠지요 :) 그것이 영화가 의도하는 것이니까요!

매번 영화를 이해하는 시각에 감탄하고 갑니다... 이해와 혐오라는 키워드에 맞춰 영화를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겠군요

혐오를 주제로 걸고보면 영화 속의 소소한 장치들이 보다 잘 들어옵니다. 예컨대 작품에 등장하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단순히 물고기인간의 등장을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나, 파이 가게에서 쫓겨나는 흑인부부와 일라이자 집의 TV에서 방영되는 흑인 관련 뉴스 등등... 그래서 저는 감독이 의도한 것은 사랑보다는 보다 인간의 근원적인 면모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

경민님의 리뷰를 보면서 저 또한 혐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이 영화가 막 개봉했을때, 영화 줄거리와 몇몇 스틸컷을 보고 이 영화를 그냥 패스했거든요. 스틸컷만 봐도 괴물의 외모에 흠칫 놀라게 되는데, 괴물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제가 편한 마음으로 볼 자신이 없었어요.. 사실 지금도 이 영화를 선뜻 보겠다는 말은 안 나옵니다. 넓고 오픈된 마음을 갖기에 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ㅠㅠ 하지만 '외모' 가 아닌 '내면' 에 집중하면 그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제 머리에 새기고, 차차 제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괴물과의 교류까지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ㅎㅎ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괴물은 상징물일 뿐이고, 아마 우리가 물고기인간을 본다면 도망부터 가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우리는 다만 이 영화를 통해서 내재된 혐오의 눈을 인정하고 우리가 혐오하지 않아야할 대상들을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연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본 바로는 일라이자와 괴물이 교류와 사랑에 이르는 과정들이 온전히 납득할만한 것인가, 그 점에 대해선 저도 회의적입니다. 일라이자가 물고기인간에 품는 애정은 그 과정에 비해서 확실히 비약이 심해요. 이 부분만 주의해서 본다면 영화 자체는 꽤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혐오하지 않아야 할 대상을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은 연습". 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꼭 해야 할 연습이네요! :)

섹스에 보다 주목한 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훨씬 훌륭한 글이네요 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

사실 저도 영화에서 묘사된 섹스의 본질에 대해서 고찰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풍류님의 식견을 따라갈 수 없어서 간략히 언급만 하는 걸로 넘어갔습니다 ㅎㅎ 마침 생각난김에 풍류님 리뷰도 링크해둬야겠어요!

짱짱맨 부활!
Kr-gazua태그에서는 반말로만대화한대요^^ 재미있는 태그라서 추천드려요

소개해주신 태그 방문해보겠습니다 ^^

말로만 평등을 외치고 있는 저의 나약한 마음을 다시 깨닫네요.
저는 혐오라는 단어를 쓰진 않지만 그 행위를 꽤나 자주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보지 않으려구요. 저의 나약한 마음이 불쑥 나타나면 어떡해요.
ㅎㅎ

혐오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릇된 혐오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일입니다 ㅎㅎ
영화를 관람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니까요. 영화의 훌륭함을 떠나 영화를 선택하는 건 '나의 좋음'이 우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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