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반대말

in #kr6 years ago (edited)

중국인 남편과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친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두운 목소리의 언니는 통화 괜찮냐고 물어보더니 괜찮다고 하자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랑 친하게 지내던 그 XX엄마 알지? 그 엄마가 며칠 전 크리스마스에 죽었어.. 자살인 것 같아..”

나의 언니와 친하게 지냈던 두아이의 엄마였던 그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며칠 전에도 언니와 만났으며 언니 말로는 특별한 다른 징조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는 원래 자기가 자기 말만 하는 스타일이니 그 아기엄마가 자기한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을거라며 괜한 자책을 했다.

언니 말로는 그 아기엄마는 평소 집에서 만날 때도 단 한번도 맨발인 모습을 언니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정도로 깔끔한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평소 특별한 고민도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은 언니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듯 했다.

샤이니 종현의 유서에서 이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나도 우울하게 보낸 시절이 있기에 저 말의 깊이를 감히 다는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저 말 속에 담겨진 절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종현의 저 말이 내 가슴에 아리게 박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지 우리는 쉽게 그들에게 ‘죽을 힘으로 살지’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너무나 쉽게 내뱉는 얘기가 아닐런지.

종현은 지금껏 자신이 버텨온 것도 죽을 용기가 없어서였다고 유서에서 밝혔고 그는 결국 살 용기 대신에 죽을 용기를 택했다..

종현은 유서에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 하는 의사에 대한 원망을 표현했는데,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그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정신과 치료는 더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보통 “정신력이 약해~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어. 죽을 용기 있으면 그 힘으로 살아봐.”라며 편하게 조언하지만 그리 쉽게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면 그가 먼저 진작 의지력으로 일어서지 않았을까?

우리에겐 남의 인생이지만 그에겐 전부가 걸린 그 자신의 인생이다. 그가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면 당연히 진작 이겨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에게 가장 큰 독은 그 사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어설픈 판단과 비판이다. 그러한 그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판단은 안 그래도 힘든 그를 더욱더 고립시킨다.

종현이 유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다. 나보다 약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니, 왜 특별한 문제도 없는데 저러는거야, 더 힘든 사람도 사는데!’ 라며 답답해하지만 우리는 겪어보지 않으면 그가 되어보지 않으면 그의 아픔을 짐작할 수 없다.

행복이 절대적일 수 없고 상대적이듯이, 아픔도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까진 정도의 상처가 누군가에겐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아프게 느껴진다.

그러니 그 본인이 아니면 ‘너가 성격이 너무 예민한게 문제야~ 정신력이 약해.’ 이러한 말을 조언이랍시고 쉽게 내뱉는 것은 아무말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못 하다. 가끔은 말 없이 그저 그 사람을 지켜보는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종현이나 언니의 지인인 그 아기엄마에게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들은 어떻게든 또 다시 분투하며 이 세상을 살아보려 노력했을까.

얼마전 엄마와 통화하다가 또 한명의 엄마 지인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엄마 지인의 딸인데 나보다 겨우 한살 많을 뿐인데 재정적 문제와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분에게도 어린 아이가 둘이 있었다..

나는 겁쟁이라 혹은 삶에 애착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금까지 아무리 우울했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근데 이렇게 나도 두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지켜야 할 아이가 있는데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정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SNS를 보면 다 행복한 사진만 보여 나말고는 다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자주 뚱해지는 나도 SNS에는 고르고 고른 제일 맘에 드는 행복해 보이는 사진만 올린다. 아니, 평소에 안 그래도 뚱한 표정인데 굳이 또 그런 사진을 또 올릴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도 이왕이면 사진이라도 행복해야 하지 않겠나..싶은 마음에서다.

그래, 나도 이런 때가 있었어. 하며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니 SNS만 보고 나만 이런거야..? 라며 소외감 느끼지 않길 바란다. 다들 고르고 고른 사진만 올리는 거니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레 짐작으로 타인의 아픔을 짐작해버린다. 그리고 섣부른 조언을 한다.

타인의 말은, 타인의 눈빛은 아픔을 느끼고 있는 당사자에겐 너무나 큰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설령 아무 생각 없이 선의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선의가 꼭 선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선의 반대말은 선의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선의 반대말은 선의…
우리는 종종 선을 행한다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힌다.
‘나는 선의니까 괜찮겠지..’란 마음으로 할말 안할말 속마음을 거르지 않고 다 전달해버린다.

내가 선의로 생각한 것이라고 해서 그게 꼭 선은 아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에게는 별 생각없이 한 작은 말도 비수가 되어 그를 갈기갈기 찢을 수도 있다.

상처 한번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우리 인간관계가 무 자르듯 딱 이 선에서 이 선까지 선을 그을수 있겠느냐만은, 조금은 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자.

내가 선의라고 해서 꼭 선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선의도 정말 선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나의 다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잠시 이용하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볼만 하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 서로 토닥거려 주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공감만이 꽁꽁 얼은 마음을 녹일 수 있다.

Sort:  

제가 정신과에 가려고 했을때 제대로 이해 못해주던 주변인들이 생각나네요. 억지로 제몸을이끌고 가서 약도 먹고 나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선의는 오히려 타인을 상처주는 것 같아요. 저도 자주 상처를 주었고.
우리나라의 임상심리사분들이 더욱 제도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은 너무 열악해서 막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전문적인 손길도 얻기가 어려워요....

케이지콘님..!

제대로 이해 못해주던 지인들...
맞아요... 그런편견 때문에 원래는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약 먹고 나을수도 있었던 건데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는거 같아요..

정신적인 병을 앓는 사람들이 편견 때문에 치료를 꺼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p.s 근데 제가 정신과에 간다고 했을 때 선뜻 “그래. 가봐.” 라고 했던 남편...

그것도 기분 나쁘던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남과 다르고 다를 수 있고, 남도 나와 다르고 다를 수 있다 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봅니다. 순간순간의 나의 생각과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나를 이끄는 간사한 혀를 통해 마음과 다르게 표현되어 흘러나가는 말들, 사색과 훈련을 톻해서 그 실수를 줄여갔으면 좋겠군요.

<순간순간의 나의 생각과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나를 이끄는 [간사한 혀]를 통해 마음과 다르게 표현되어 흘러나가는 말들, 사색과 훈련을 톻해서 그 실수를 줄여갔으면 좋겠군요.>

빅맨님의 멋진 댓글..!!

너무 동감합니다!!

어떤 집단에 새로 들어가게 되면 관심을 꽤 많이 받다가..
결국에 남는건 몇 안되는 이들뿐이 었는데..

지금까진 음주무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항상 직구성 발언만 하는 제가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변화는 힘들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남아 있는 고마운 이들에게 잘하고 살아야겠에요 :-)

가무는 좋아하시는 우리 회장님..^^

저는 사실 음주가무를 다 좋아하지만 항상 상사에게는 미운 털.. (노는 것만 좋아하고 일 하는 건 싫어하는게 너무 티가 나서..)

관심을 꽤 받다가(처음에라도 관심 받는게 어디예요..)결국에 남는 건 몇 안되는 이들뿐(단 한명이라도 나에게 진심이고 나도 그에게 진심이라면 그것조차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직구성 발언만 하는 라이언님께서 저한테는 항상 따뜻한 응원의 발언만 해주시네요...!

사실 이런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스팀잇의 구조 특성상 그냥..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저냥 다른 목적을 위해 그냥 겉으로만 해주는 말인지 잘 모르겠는 때도 있잖아요..

단 한명의 저에 대한 전폭적인 관심과 응원으로 제가 어찌됐건 지금까지 쭉 여기 있는거 같네요...

물론 변화는 힘들 것이고(동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남아있는 (회장님)고마운 이들에게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저도 덩달아 해봅니다..^^

글자들이 어울려 만들어 지는 저의 마음을 잘 알아주시기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라도 나를 품어주는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이 있어서 삶을 살아가는데 참 도움이 되고 즐거운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인복은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항상 한답니다.

이공간에서도 몇몇분 때문에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중에 별님의 자리가 아주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저는 종현을 볼 때마다 샤이니에서 조금 동떨어진다... 라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었어요... 그런데 자살 소식을 듣고 완전 놀랬죠~ 항상 말은 많이 하지만 눈빛은 다른 곳을 보는 느낌이었답니다~
저도 회사때 친했던 동기가 결혼 후에 자살 소식을 듣고 많이 충격에 휩싸였었어요~ 같이 수영도 배우고 신입사원 수련회때 같이 댄스도 짜면서 퇴근 후까지도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던 동기였는데, 결혼 후 아이가 안생기자.. 우울증으로 결국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만 접했답니다~ 놀란것은 아주 밝고 긍정적인 친구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지고 작은 일에도 마음에 담게 되는데~ 친구들이 소중해 지네요~~

수백번 공감하는... 그래서 너무나 고마운 글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여기 다 있네요. 겪지 못했다면 헤아리려는 노력,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해서라도 이해할까 말까인 것들을... 우물 안, 자신의 경험만으로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지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다양한 아픔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예요...무지한(혹은 이기적인) 선의는 참 무섭습니다. 저도 늘 주의하고 신경쓰려고 하지만..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불완전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우리더라도.. 가끔은 서로 동병상련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종현의 "속에서 부터 고장났다."라는 말이 참 아프네요.
일상적으로 자주 대하는 사람이리도 그 속을 정말 알 수가 없는데, 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의 맘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싶어요.
선의의 반대가 선의라는 말처럼...
그냥 끝까지 바라봐주고 응원하고 들어주는 것이 차라리 나은거구나. 난 그걸 참 못하는 사람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네요.
동생이 힘들다 어렵다 안된다 하면 계속 내 방식이나 생각만 말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게되엇어요. 대답은 잘 했지만 동생은 내말을 듣지 않았고 듣지 않은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없는 거였다는 거요. 그냥 다른거고 멀리 떨어져있는거구 그걸 이해하면 되는데..
격려랍시고 종달새처럼 짹짹..정말 반성하게 되네요.
그냥 듣고 지긋이 바라봐줘야겟어요.

선의 반대말은 선의이다... 들으면 엄청어려운데 또 읽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종현이 의사에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뭐가 힘든지부터 찾아내라는 말이었대요. 자기 입장에서 보면 부러울거 없는 사람같아 보였겠죠. 근데 일반인보다 못한 놈이 우울증 치료을 하고 앉아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그런말은 안할거 같은데ㅜㅜㅜ 요새 저도 우울하다고 지껄일 때가 많은데 저 역시 겁쟁이고 아직은 삶에 애착이 많고, 또 새끼들 보며 죽고싶은 생각은 전혀 안드는데... 아이들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그 힘듦의 무게와 깊이는 얼만큼이었을까요... 선을 행하기 위해 선의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 선의라 생각하며 자신들의 위선에 선을 갖다 대는 행위죠... 나는 그러지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아마 어딘가에선 그러고 있을지도 몰라요ㅜㅜ

동의합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죠 그래서 비슷한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 하는 강연이나 조언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만약 종현이 스스로 아픔을 이겨냈다 라면 그도 누군가에게 진정한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거죠

얼마 전에 6빌로우라는 실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내용은 단순하게 한 청년이 추운 겨울 산속에서 8일 만에 구조된다는 생존 영화입니다 그러나 실은 미국 하키 대표 선수까지 했던 장래가 유망했던 한 청년이 마약과 함께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설산에 갇혀 구조되었지만 결국 동상으로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잃게 되고 나서야 살아갈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는 현재 결혼과 두 사내아이들의 아빠가 되었고, 유소년 하키팀의 코치로 있으며, 동기부여 강연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의족에 의지하면서요 안타까운 마음에 글이 길어졌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람마다 인내의 깊이가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건데,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으면서 용기 운운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더라구요. '선'의 반댓말은 '선의'라는 말씀에 뭔가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드네요. 저도 선을 가장해서 내 욕망을 위해 선의를 베푼 척 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메가스포어님의 이번 글은 한편의 문학작품보다 저에게 더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네요. 진짜 감동 받았습니다.

Loading...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4
JST 0.030
BTC 67978.59
ETH 3270.89
USDT 1.00
SBD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