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한 햇빛에 보송하게 말리기

in #kr7 years ago (edited)

IMG_2720.JPG

대학교 때 부모님께서 두번째 이혼을 하셨다.

첫번째 이혼은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데 아버지께서 다시 잘 살아보자고 종종 찾아와 엄마와 우리 두딸들에게 잘 해주시는 바람에 맘이 약해진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다시 아버지와 재결합.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으신 후 내가 대학교 때 두번째 이혼을 하시고 현재는 홀로 살고 계시다.
(어머니의 명언: 괴로운 것보다는 외로운 게 낫다)

엄마를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신 아버지는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엄마와 우리 두 딸들은 거의 목숨(?)을 걸고 이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각오로 이혼을 밀어붙였고 결국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그 과정이 좀 험난했다. (경찰까지 집에 옴)

아무튼 그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나는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그때부터 종종 꿈을 꾸면 꼭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꿈에는 아버지가 나올 때도 있고 뭔가에 쫒기기도 하는데 나는 그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고 그 비명으로 인해 잠에서 겨우 깨곤 했다.

(아이러니는 꿈에서 아버지가 나와 비명을 지르며 겨우 꿈에서 깼는데 나의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 잠에서 깬 아버지가 나에게 무슨 일이냐며 달려 오셨다는....)

그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는 버릇은 내 생각보다 더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아마도 5년 이상이 지나서야 완전히 사라진 듯 하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시작되어 남편과 결혼 후에까지 이어졌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러냐고 해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신 분열증처럼 보일 것 같아

"귀신 꿈을 꿨어..."라고 속이곤 했다.
(내가 어찌나 크게 비명을 질러댔는지 언제나 남편이 나보다 더 식겁하곤 했다. 불쌍한 남의 편..)

그런데 그렇게 잠이 깨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남편은 귀신 꿈을 꿨다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고 무슨 꿈인지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이혼 후부터 생긴 버릇이고 종종 이런다고 털어 놓았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이러한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나는 종종 이렇게 깨어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럽고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나의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의 짐을 한결 덜은 느낌이었다.

남편도 우리 집안이 화목하지 못한 집안이었고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남편 앞에서만큼은 애교도 부리고 사랑스러운 여자이고 싶었는데(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남편에게만큼은 종종 부리곤 했다)

사랑스럽기는 커녕 이런 못난 모습을, 불쌍하고 추한(?)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줘야 하니 참으로 슬펐다.(나는 감출 수 있었으면 끝까지 감췄을 것이다. 하지만 꿈은 너무나 솔직했기에 나의 본 모습을 감추기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는지 나는 남편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남편은 이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영원히 갈 것만 같아 무서웠던 이 버릇은 남편에게 고백 후 점점 횟수가 줄어들더니 남편과 결혼 후 일이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도 자취를 감춰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무의식에 숨겨진 나의 공포.. 수치심 등은 숨기면 숨길수록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그럴수록 무의식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그리하여 감추려는 나의 의식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무의식은 서로 충돌하여 그토록 나를 힘들게 만들었나보다.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 나의 반갑지 않은 옛 친구..

왜 자취를 감췄을까.

나의 비밀을 알고도 나를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그 사랑에,

그도 더이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일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났고 그 존재 자체로도 온전히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상처는 축축한 빨래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양지에 탁 하고 드러내고 말려 놓으면
축축했던 빨래가 보송하게 말라서 산뜻한 향기가 나지만,

음지에 숨겨 놓으면
처음에는 그저 축축할 뿐이었던 빨래는 점점 악취가 심해지고 곰팡이가 생겨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다.

쨍쨍한 햇빛에 그냥 탁 하고 드러내놓자.

막상 드러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Sort:  

아 어린시절에 말 못하신 아픔을 간직하고 사셨군요.. 그래도 이제까지
잘 이겨내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슬픈 사연 하나쯤은 간직
하고 살지 않나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말씀대로 막상 드러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정말 마음을 울리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민님~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 툭 털어놓게 되네요~~ 조금 더 일찍 마음을 열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듯 합니다.. 그 때가 저한테는 지금이었나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지금부터라도 남은 빨래를 쨍쨍 말리면서 새인생(?)을 시작해보고 싶습니다(⁎⁍̴̛ᴗ⁍̴̛⁎)

네 맞습니다. 준비는 자연스럽게 되는 듯 합니다. 억지로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새인생 이라는 표현 참 좋네요~~ 늘상 하던일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맞아요 억지로 이제부터 잘 살거야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해도 잘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다 때가 있나봐요^^

늘상 하던 일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면 더 의미가 있다는 말씀을 잘 새기고 싶네요~~~^^

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확인했네요 ㅎㅎ megaspore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
시작 하셨음 좋겠습니다^^ 화이팅요~~

"막상 드러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란 말이 가슴을 때리는 한 마디네요.

어린시절 아픔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거 같아요 들키기 싫은 , 그렇지만 알고나면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겠죠 그런것이 진정한 사랑아니겠어요 ^^

그 상처가 나를 더 못나게 만들 것(만든 것)같아 꽁꽁 감춰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나서 그것이 받아들여졌을 때 그제서야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오늘글은 많은 공감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 감사합니다..

사랑만이 유일한 치유약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말못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거 같아요..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힘든데 남편의 사랑으로 극복하셨다니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는걸 느끼네요^^
이런 남편이 있으시니 megaspore님은 분명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실꺼에요~
megaspore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려요~^^
늘행복하세요^_^

다 이해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저도 한때 7년간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꾸던 시절이 있었지요. 이또한 지나가더라구요 ㅎㅎ

7년간!!! 저보다 더 긴 시간을 꾸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약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 또한 지나가더라 라고 지금 말 할 수 있다니 새삼 행복함을 느낍니다..^^

시간이 약이 되나봅니다. 누구나 마음에 큰 아픔들은 하나씩 안고 사는것 같습니다. 메가님 말씀대로 꺼내보면 별것 아닌것을 많은 시간이 지나 무뎌져야 가능한일인가 봅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 마음이 짠해집니다.
잘 이겨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rosaria님~
조금 더 일찍 마음을 열고 드러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도 들긴 해요... 한번밖에 없는 인생 조금 더 빨리 마음을 열고 살았다면...

하지만 모든 것은 그 때가 있나 봅니다..^^

상처로 인해 평생을 남편보다 먼저 깨어나 화장을 했었다는 아내의 이야기..
그런 아내의 숨기고픈 상처를 알고 있었으나 단 한마디도 그러한 아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남편..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메가님의 이야기를 읽고 행복해졌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대상이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성처를 보듬어 주는 대상도 사람이라는..
결국 치유는 사랑이라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끼나봅니다.

주어진 남은시간 메가님이 내내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 날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

글을 다 읽고, 반사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이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타의든 자의든, 잊어버리고 싶고, 그 흔적을 지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

저 가사가 그렇게 와 닿았습니다.

(넥스트 - 먼 훗날 언젠가. 노래 남기고 갑니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

노래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삶의 흔적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겠지요?

노래 듣고 위로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카페제이슨입니다.
@corn113님이 카스 머그잔을 선물로 드리고 싶으시다고
연락이 와서요
스팀 챗으로 주소및 전번 알려 주시면 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월드콘님께서 저한테 선물을!!!!

너무나 감사한 일이네요~~~!!!!^^

근데 스팀 챗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ㅎㅎㅎㅎ

스팀챗 사용방법

1.스팀잇 사이트 오른쪽 윗부분의 석삼자를 누릅니다.

2.화살표 표시된 스팀챗을 클릭합니다.

3.이메일과 비밀번호를 넣고 계정을 만듭니다.(스팀잇과 스팀챗 비밀번호는 다릅니다. 비밀번호를 사용자 임의로 작성해서 넣으면 됩니다.)
4.이메일 로그인 후 스팀챗 가입 인증을 확인합니다.
5.스팀챗 계정에 로그인합니다.
6.스팀챗 계정명을 스팀잇 계정명과 같은 것으로 등록합니다.
7.검색창 에서 @cnstlf60 를 검색합니다.
8.하단에 있는 멧세지 등록창에 원하시는 메세지를 쓰고 엔터키를 쳐서 메세지를 등록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방금 챗으로 메시지 보내드렸어요^^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2
JST 0.027
BTC 64886.88
ETH 3516.64
USDT 1.00
SBD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