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사악해지기까지 | 믿음을 강요하는 화폐 I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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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화폐에 공권력을 반영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화폐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강제하게 된 이유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패권을 차지했던 국가는 아카드 제국이었다. 셈족이 세운 나라로 사르곤 왕 시절에 남부의 수메르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메소포타미아를 최초로 통일했다. 기원전 2350년경부터 기원전 2150년경까지 메소포타미아를 주름 잡은 아카드 제국은 제국의 판도가 최대에 달했던 나람신 왕 치세 이후 갑자기 멸망했다.



오늘날 이란 지역에서 침입한 구티족에 의해 멸망을 했다던가, 지속되는 반란,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 유목민의 침입에 의한 멸망 등 그 원인을 추측하는 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기후 변화로 인해 제국이 급격히 몰락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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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과 프랑스의 연구팀이 고고학적, 지질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기원전 2200년 경부터 아카드 제국 영내의 토양에서 가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국의 북부 지방에서 발견된 토기에는 사람들이 갑자기 남부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북부 지방에 먼저 영향을 준 가뭄 때문에 인구가 남부로 쏠렸고, 부족해진 식량과 물로 인해 더 이상 제국은 존속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아카드 제국의 뒤를 이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가져간 나라는 바빌로니아 왕국이다. 바빌로니아는 아모리인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인데, 아모리인들은 오늘날의 시리아 근방에서 발원한 유목민족이다. 농경민족의 제국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유목 민족의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게 된 결과만을 놓고 보면 유목민의 침입으로 아카드가 멸망했다고 볼 수 있으나, 가뭄에 의해 농경이 힘들어진 환경을 감안 시 농경 민족에서 유목 민족으로의 교체에 대한 인과의 고리가 자연스레 맞물리기도 한다. 게다가 바빌로니아 시기에는 보리 경작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기후 변화에 의한 아카드 멸망 주장이 신빙성을 가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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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드 제국 사르곤의 영토 확장에 의해 서로의 역사가 얽히게 된 두 민족 사이에서 한쪽에 공백이 생기자 다른 한쪽이 비옥한 지대로 유인되었다. 삶의 조건과 부의 조건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농경민족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환경이 유목 민족에게는 보다 나은 삶이 가능한 환경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옛사람들의 속 사정이 어떠했건 아직 곡물이 화폐로 기능하던 시기에 부의 원천인 두 강 사이의 농경지대는 통째로 바빌로니아의 손에 넘어갔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왕을 신의 대행자로 떠받들었고, 바빌론은 신성한 도시로서, 모든 왕은 바빌론에서 왕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신성시 된 왕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중앙에 힘이 집중되었고, 필연적으로 관료 조직이 등장했으며, 세금이 명확한 제도로써 기능하기 시작했다. 함무라비 왕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한 바빌로니아 제국도 아카드와 마찬가지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상류까지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인류의 역사가 있으니 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국가나 민족은 어김없이 팽창을 시도하고, 곧 다른 지역의 패자와 충돌하는 것이다. 강의 상류는 산지다. 유프라테스 강의 상류 지역은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한 토로스 산맥과 맞닿아 있었고, 토로스 산맥에는 금광과 청동의 재료인 주석 광산이 있었다. 산맥 너머에서는 마찬가지로 금광을 향해 뻗어오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패자가 있었으니 히타이트였고, 이들은 말을 이용한 전차를 전력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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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위키피디아



아카드 제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자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궁병의 활용이었다. 앞선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규모로 조직했던 궁병을 앞세워 패권을 차지했던 것인데, 히타이트는 전차에서 활을 쏘아댐으로써 궁병에 기동력을 더하여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렸다. 멸망한 바빌로니아에서는 카사이트 왕조가 들어서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고, 전성기를 목전에 뒀던 이집트는 기병과 전차를 운용하는 힉소스인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기병과 전차를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이집트인들은 이 병력을 맞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전혀 경험이 없었다. 속절없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집트는 힉소스 지배하에 들어갔고, 당대 최강을 자랑하던 두 왕국이 거의 같은 시기에 몰락함으로써 카사이트 왕조를 세운 민족이 힉소스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제기된다.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벌어진 패권 전쟁의 결과에 따라 토로스 산맥의 금광은 히타이트 제국에 속하게 되었고,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를 직접 지배할 큰 동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카사이트 인들은 티그리스 강의 상류에서 발원한 민족으로 보이는데, 바빌로니아 멸망 후 권력 공백기의 메소포타미아를 통치했다. 그리고 바빌론에서만 왕권을 부여받을 수 있던 관례를 없애버리고 아수르Assur에서 직접 왕을 내세우며 아시리아 제국을 세우게 된다.



토로스산맥의 금광을 히타이트가 가져간 후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게 된 아시리아의 왕들은 여전히 신의 대행자 신분이었다. 그 신성한 권위를 신민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했던 아시리아의 왕들은 부와 권력의 상징인 금을 마음껏 얻기 어려웠다. 따라서 아마르나 서신에 나오는 내용처럼 이집트 파라오에게 금을 구걸했다.



파라오는 대외 교역용으로서만 금이 필요했고, 파라오의 금을 얻으려면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필수품 내지는 희귀한 물건들을 구해 금과 바꿔야만 했다. 인더스 문명의 산물과 아나톨리아 반도, 미케네, 크레타, 키프로스를 거쳐 들어오는 에게해 문명권의 교역품은 왕권 존속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기에 오리엔트 사람들은 교역에 관한 능력을 길러야만 했다.

그들의 능력은 타고 난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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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치, 희소성, 합의 그리고 믿음
#2 아름다움
#3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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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있는 포스팅이네요. 좋은글 보고 갑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
강아지 포스팅 자주 해주세요.ㅎㅎㅎ
그 녀석 무심한 척하는 거 너무 귀엽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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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아카드 제국 처음 들어보는데 제가 사는 곳이 포함되어있군요.

네. 써니님 동네 얘기하는 중이에요.ㅎㅎㅎㅎㅎ

각 나라별로 이루어지는 흥망성쇠가 참;;;

영원한건 어딜가나 없구나
라는걸 실감하게 해줍니다.

잘 보고 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 고등학교 다닐때는 문과 이과 나뉘어서 세계사는 1도 공부를 못했어서 ㅋㅋㅋ(전 이과) 언젠가 책을 좀 읽어보고 싶다 했는데 (마음만.. 실천을 못했어요 ㅋㅋㅋ) 포스팅을 통해 조큼이라도 이런 글을 읽어 좋구만용.

전 문돌이라 세계사를 좋아했었다지요.ㅎㅎ
마침 굵직했던 일들은 다 써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흥미가 생기셨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이오스 계정이 없다면 마나마인에서 만든 계정생성툴을 사용해보는건 어떨까요?
https://steemit.com/kr/@virus707/2uepul

So good and cl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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