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사악해지기까지 | 가치, 희소성, 합의 그리고 믿음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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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한 구석에 나우루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지도를 펼쳐보아도 척도를 조정하지 않는 이상 찾기가 굉장히 힘든 작은 나라. 세계에서 바티칸 시국, 모나코 다음으로 작은 국가. 이렇게 작은 나라가 198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980년 나우루 공화국의 1인당 국민 소득 $20,000 는 미국이 1987년에 달성한 1인당 국민 소득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막대한 부를 쌓았을까.
바다새들의 똥이 산호초 위에 수천 년간 쌓여 인광석이 된다. 인광석은 고급 비료의 원료로서 농업 용지를 개간하려는 호주와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났다. 섬 전체가 인광석으로 이루어진 나우루 공화국은 그저 땅을 판 후 퍼서, 나르면, 달러를 벌어들였다.

2,000여 년 간 열대 과일의 채집과 낚시 등의 자급자족 생활을 이어왔던 나우루 사람들에게 있어 인광석은 그저 암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 여러 나라에서 인광석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갑작스레 흔한 돌덩이는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뒤바뀐다.



21km2 너비의 섬은 풍요와 달러가 넘쳐흘렀다.
서울 보다 작은 섬에 페라리가 돌아다녔고, 버려져 있는 람보르기니 신차가 경찰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너무 비대해진 주인이 차량에 탑승을 할 수 없었던 게 신차가 버려진 이유였다. 나우루 국영 항공사는 유학 희망자 전원을 해외로 실어 날랐고, 경비는 100% 국비 지원이었다. 이 나라가 전 세계에 걸쳐 소유한 실물 자산의 가치는 당시에 이미 10억 불을 상회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돌덩이에 '가치' 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는 돌덩이는 또 있다.
그 안에 가치 자체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한다. 미크로네시아의 Yap 이라는 작은 섬에서는 바위, 정확히 말하면 석회암이 화폐로 통용된다.

약 2,000여 년 간 Yap 사람들은 땅이나 집을 구입하거나, 결혼 지참금, 카누 구입 비용 등을 이 바위를 건네주면서 해결했다. 이 섬은 미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식료품 가게나 주유소에서 US 달러가 통용된다, 하지만 Yap 의 사람들은 바위를 지불하여 거래를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들은 달러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바위를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잔돈으로서 맥주가 사용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Yap 사람 1만 명이 1년에 4만에서 5만 상자의 맥주를 소비한다고 한다. 달러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에서 바위와 거스름돈으로서의 맥주가 웬말일까.



약 2,000년 전 Yap 의 Anagumang 이라는 전사가 이웃 나라 Palau 의 석회암 동굴에서 거대한 돌을 가져왔다고 한다. Yap 섬에는 석회암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눈에는 희귀한 암석이었으리라. 그는 달을 모티브로 삼아 돌을 커다란 원 모양으로 만들었고, 이후로 오늘날까지 바위를 원형으로 깎아 화폐로 이용한다. 큰 원형의 바위 중앙에 구멍을 내어 필요시 빈랑나무줄기를 꿰어 운반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스무 명 이상의 사람이 동원되어야 이를 움직일 수 있다.

이 돌바퀴 화폐는 암시장 거래가 불가능하고, 도둑맞을 걱정이 없으며, 섬 전체를 통틀어 약 6,600 여개의 돌 바퀴만이 존재하여, 통화량이 고정된다. 이 화폐는 외관상 깨진 곳이 있으면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소유권의 이전으로만 계산을 완료하며, 집 담벼락에 기대어 두거나, 은행에 줄지어 세워두기만 한다. 보기에 따라 사기와 마찬가지인 통화가 사용되는 것은 바위에 가치를 부여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 와 합의에 따라 바위가 가치를 지닌다는 그들의 '믿음' 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합의와 믿음이 출발한 곳은 희소성일 것이다.



특화된 한가지 능력에 의해 먹고, 쉬고, 번식하는 본능에만 충실한 동물들과 달리, 사유를 통해 본능을 끝없이 확장해 나아가는 인간은, 자연히 보다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가치가 깃들어 있는 물건과, 희소성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 인간이 가치를 부여한 사물, 그리고 가치에 대한 믿음.


이것들이 우리가 '돈' 이라 부르는 것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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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보 감사합니다.. ^^

정보랄게 있나요..^^a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돈에 대한 가치관은 정말 중요한것 같아요. 한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수 있는것 같네요

동감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재밋는 이야기라 나우루공화국을 검색해봤어요.
이솝우화같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네요. 꿈같아라~

그러게요.
꿈 같다는 말씀 듣고 보니 일장춘몽의 완벽한 실례 중 하나군요.ㅎㅎㅎ

인정받게 되는 순간
그동안에는 별 쓸모 없던것도 쓸모있게 되고
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것이 안에서는 통용되어지는걸
실감할수 있었네요

어쩌면 우리도 지금 역사의 큰 획이 그어지는 한 가운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돈의 근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는데... @machellin님의 글 덕분에 이렇게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네요. 좋은 포스팅 감사드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돈에 관한 숨겨진 얘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드려요.
리스팀합니다.

재밌게 봐주시고 리스팀 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D

이제 필요를 줄이고, 소유를 줄여서 더 부유해지기를 배워야 할 때가 오고 있는것 같아요 ㅎㅎㅎ

줄임으로써 더 부유해진다는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음- 천천히 천천히 써보려고 합니다. :D
첨 뵙습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합의, 믿음, 희소성..
참 아이러니 하죠.
이런 걸 만든 사람이 돈보다 더 값어치가 없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세상이니.. ㅠ_ㅠ

크.. 제대로 핵심을 찔러주시네요 !!

스팀도 믿음과 합의가 있어야.. 요즘 많이 안보이셔서 아쉬워요.

그렇죠. 믿음과 합의가 공고해지면... 즐거운 상상이 가능하네요. :)
다시들 오시겠지요...? 바쁘셔서 그런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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