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사악해지기까지 | 누비아의 금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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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 도시 바르나에서 한 무덤이 발굴되었다.

전선을 묻으려 땅을 파던 굴삭기 기사에 의해 무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는데, 발굴이 진행되자 무덤 하나가 아닌 고대의 공동묘지가 이곳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1972년 시작된 발굴 조사가 20년 동안 진행되었고, 294개의 무덤이 발굴되면서 이내 바르나 문명 또는 바르나 네크로폴리스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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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르나 문명 유적지에서 금과 구리의 유물들이 쏟아졌는데, 순금의 부장품은 3,000여 점, 무게로 따지면 6kg 의 유물들이 나왔다. 43호 무덤에서는 170cm 가량의 남성 유골이 금목걸이, 금 팔찌, 금귀고리를 착용하고 금 손잡이의 도끼를 든 채로 누워있었는데, 신체의 소중한 그곳마저 금으로 감싼 채 매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4,800년 ~ 4,200년 전에 형성된 유적지에서 금으로 온몸을 휘감은 유골이 발견되었으니, 이는 기존에 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문명들 보다 훨씬 이른 시기다. 어쩌면 금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인류의 소유욕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명 자리를 가장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던 이집트에서조차 구리 확보를 위해 시나이 반도로 원정을 떠나고, 상이집트로 군사 원정을 가던 시기는 기원전 3,200년 경이다. 금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시기부터 인류를 유혹해왔을 것이다.



1887년에 발견된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 BC 14세기에는 바빌로니아 왕이 이집트 파라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최대한 많은 양의 금을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신속히 보내주십시오. 제가 추진 중인 건물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올여름 안으로 금을 보내 준다면 당신과의 결혼을 위해 제 딸을 드리겠소이다. (중략) 당신 땅에서 금은 먼지와 같지 않습니까. -금속의 세계사 中



먼지만큼 많은 이집트의 금은 어디서 왔을까.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 수단에 걸친 지역에는 아주 먼 옛날 누비아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던 곳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의 조사와 연구에 따라 점점 그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왕국이다. 특히 인류의 발원지가 사하라 지역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4대 문명보다도 빠른 속도로 문명을 이룩했던 나라가 누비아 왕국이 아닐까 하는 관점도 있다. 그리고 누비아인들은 흑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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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최대 영향권. 범위만 참조. 푼트 왕국 구분도 생략. 누비아 금광 위치 표기.



누비아Nubia왕국에는 금이 많았다. 그리고 이집트 말로 금은 Nub 이다. 누비아는 금의 땅이었다. 나일강 상류부터 오늘날의 수단에 이르는 지역에 약 250개의 금광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 영역을 관장하던 국가가 누비아였고, 당시 누비아의 연간 금 생산량은 1톤이었다. 중국 및 인도와의 교역으로 인해 유럽의 금이 말라가던 15세기에 유럽의 연간 금 생산량은 3톤에서 많아야 4톤을 넘지 못했는데, 조악한 고대의 채굴 장비로 누비아가 연간 캐낸 금의 수량이 1톤에 이르렀다. 그만큼 고대 세계에서 누비아의 금 생산량은 절대적으로 많았다.



이렇게 금으로 유명했던 누비아의 환경은 그들의 역사를 결정했다. 나일강 하류에 있던 이집트는 금에 대한 갈망으로 누비아를 점령했고, 오랜 세월 동안 통치하에 둔다. 정복자들은 누비아 인들로 하여금 금을 공물로 바치도록 하였고, 누비아 사람들은 평생을 금광에서 금을 캐다 노예의 생을 마감하고는 했다.



누비아에서 이집트로 모여든 금과 더불어 나일강의 사금, 푼트 왕국과의 교역에서 이집트가 벌어들인 금은 거의 대부분 파라오의 궁과 신전에 축적되었고 내수 거래용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무게로 가치를 정해 무역에 사용되면서 이집트의 금은 당시 기준의 세계 곳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러한 금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그 가치가 소금과 같았다.
당시 이집트에서 소금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사후의 삶을 보증하고 영생을 준비하는 데 있어 시체를 소금물에 담가 썩지 않도록 해야 했기에, 소금이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그 간절한 필요성은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는 사치품으로서의 금의 가치와 동일했다. 금 속에 이집트인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내재 가치는 없었다. 자연히 화폐로서 기능하는 금을 설명하기에 이집트가 완벽한 사례는 될 수 없다.



반면, 금과 은을 신성하게 여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배층은 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하여 금이 본격적으로 화폐로 부상하는 장면을 지켜보려면 이집트가 아닌 메소포타미아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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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치, 희소성, 합의 그리고 믿음
#2 아름다움
#3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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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쪽에 금이 많은 줄은 몰랐네용
ㅎㅎ 신기한 사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은 아직도 신성하지요 ㅎㅎ

ㅎㅎㅎㅎㅎ 이젠 좀 그자리 내어줬으면 싶은데 말입니다. :)

금의 영롱한 빛깔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 하였군요...

어찌보면 참 맹목적인데 말이죠.

인간의 욕망을 불러오는 금!! 이렇게나 오래전부터 인간사를 지배했었군요.

바르나 무덤 사례를 보면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엄청 많은가 봅니다. xD

크........... 스팀잇이 좋은 이유
평소엔 읽지도 않는 글을 읽다가 빠져들게 된다는...ㅋㅋㅋ
누비아라는 왕국은 처음 들었습니다.....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좋은 글이라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누비아 사람들은 평생을 금광에서 금을 캐다 노예의 생을 마감하고는 했다- 금만 케다가 돌아가셨다니 너무 불쌍합니다.ㅠㅠ

고대 노예의 삶도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비참한 수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영원히 변치않는 그 빛깔 ...

의미 심장한데요... :)

이 시리즈 넘 재밌어요~~ 정말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ㅎㅎ
학창시절 세계사도 이렇게 배웠으면 좋았을것을 ^^

아이고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 xD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오 재밋어요. 시리즈 기대됩니다.
가치있는걸 가진 나라에서 힘이 없으니 노예생활을 하게되다니 ㅠㅠ 너무 안타깝네요.

지루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

어떻게 보면 자원의 저주일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물론 그네들이 금을 과소비하여 망하지는 않았지만
금이라는 자원때문에 지배받고 살아가니 말이죠..

잘 보고 갑니다.

자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도자님 (신도야...로 읽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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