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그장면] #1 Atonement | 속죄와 편지 그리고 기다림

in kr •  11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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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면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있는 한 영화를 떠올리고 있다. 영화 어톤먼트(속죄)는 이완 맥완의 소설로, 1930년대에 시작된 범죄와 그 결과를 60년 동안 기록한 영화이다. 베스트 신으로는 로비(제임스 맥아보이)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날 시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가 입고 있던 짙은 초록색 드레스, 그리고 망연자실한 그와 그녀의 표정과 마지막 키스. 주로 배우의 의상, 표정, 분위기, 감정 복선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음악이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기는데, 조 롸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 사운드 트랙 콜라보레이션 팀의 두 번째 작품으로 대표곡의 날카로운 리듬이 영화의 몰입도와 긴장을 더 하는 재미까지…결말을 알고 다시 봤을땐 정사신에 눈물을 흘렸을 정도이다. 영화의 제목이 왜 '속죄' 인지는 영화를 끝가지 다 보면 알 수 있다.

     타자기를 치는 소리와 절묘하게 떨어지는 영화 구간. 로비가 다급하게 “Briony!!!!!!!!!!!” 를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브라이오니가 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숨을 멈추고 봐야 한다. 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이 편지 하나로 시작되기에 이 전까지의 알 수 없는 평화와 긴장감은 배가 되는데….

     프랑스 타이틀로는 reviens-moi, 내게로 돌아와요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화 후반에 시실리아가 로비에게 인제 그만 내게 돌아오라고 말하며 그의 얼굴을 감싸는 장면이 있는데, 시실리아의 이 아련한 한마디, Come back to me 가 짓지 않은 죗값을 치르며 희생 하는 그의 삶을 이제는 놓아주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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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아노 운율이 반복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배경에 늘 존재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심볼중 하나인 꽃병을 시실리아가 들고 방에 가져가며 그녀의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끝에 피아노 줄을 가볍게 튕기면서 그녀의 마음에 불길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로비에게로 가는 시실리아와 그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목격하며 오해를 사는 브라이오니. 서막은 이때부터였을까. 이 사소한 오해는 비극적인 결말의 씨앗이기도 하다.

    여러 감정의 복선이 깔려있는지라 몇 번을 돌려본 장면인데, 로비가 의사가 되려 떠나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세실리아는 이를 알게 되고, 그를 향한 마음을 (본인만) 모르고 괜히 심술을 부리며 연구원이나 되지 뭐하러 6년동안 학생노릇을 자진하냐며 쌀쌀맞게 대한다. 로비가 걸음을 멈추고 너희 아버지께 빚은 갚을 거야. 라고 걱정을 덜어주는 의도의 말을 하자 시실리아는 순간 얼어붙는다. 속상함과 서운함으로 뒤덮은 얼굴로 그건 내가 말하려던 게 아냐, 라고 말하며 뒤돌아 버리는 그 순간.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는 두 젊은 영혼들 사이에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감정이 오가고 있는 것이겠지. 이후, 로비의 한쪽 손에 멋쩍게 들려진 화병 손잡이의 잔상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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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편지’가 등장하는 신으로, 로비가 집에서 시실리아에게 건네줄 편지를 적는 장면. 그의 마음을 대변해줄 말을 적지 못해 연신 담배를 피우고, LP를 수차례 바꿔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용기 내 쓴 편지는 결국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하지만 창문 사이 그의 곱슬한 갈색 머리와 잘생긴 이마와 턱선에 햇살이 비치면서 이 영화의 핵심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게 되는데…. 꿈을 꾸는 듯, 마치 그녀가 그를 어루만지는 듯 고심의 절정을 행복하게 이뤄내는 그의 모습이 이 영화의 7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대표적인 초화상 같기도 하고...

Atonement Letter #1 :
"You'd be forgiven for thinking me mad - wandering into your house barefoot, or snapping your antique vase. The truth is, I feel rather light-headed and foolish in your presence, Cee, and I don't think I can blame the heat. Will you forgive me? Robbie."

     수많은 영화 속, 한 사람만을 기리며 평생 마음에 품고 사는 지고지순한 캐릭터들에게 닥치는 일말의 시련들에 이상하게도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감이랄까, 몰입이 깊다고 해야 하나.. 나와 닮지 않은 면을 갖고 있어 그런가 싶기도. 이런 캐릭터들의 운명적인 스토리 텔링에 영상미, 분위기, 색감 그리고 음악까지 끼얹은 멋진 영화이기에 언제나 손이 가는 고전 중에 속한다. 속죄라는 영화 제목처럼, 나에게도 속죄하고픈 이별의 아픔이 있는건지..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는 로비같은 사랑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 존재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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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nement letter #2 :
"Dearest Cecilia, the story can resume. The one I had been planning on that evening walk. I can become again the man who once crossed the surrey park at dusk, in my best suit, swaggering on the promise of life. The man who, with the clarity of passion, made love to you in the library. The story can resume. I will return. Find you, love you, marry you, and live without sh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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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신을 보면서 제 마음을 찢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해요. 색계가 제겐 그러했죠.

무엇에 대한 속죄일까요. OST를 들으면서 이 글을 봤는데 꼭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장면을 제대로 알고싶거든요. 영화보고 돌아와서 다시 코멘트 달러올게요 ㅋㅋ

ㅎㅎ 최대한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가 감명받았던 장면과 음악을 전하기가 쉽진 않네요.

전 영화를 처음 볼때보다 두번째 볼때가 더 좋더라구요. 스토리를 알고 나니 복선이 더 잘 보인달까.. 천천히 보고 오세요.^^ 고물님의 마음을 찢는 영화(?) 이길 바랍니다.

  ·  11 months ago (edited)

@Laylador님 사랑얘기라고 했잖아요. ㅠㅠ 흑흑흑 이러기 있습니까?
다시 읽어보니 범죄라고 적어주셨네요.. 제게 이것은 누명과 억울함에 관한 영화네요...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흑흑

키이라 나이틀리의 초록 드레스는 압권이에요. 앞으로 빛이 진한 아름다운 초록색을 보면 세실리아가 생각날 겁니다. 또 초반 아름다운 영국저택과 자연의 배경과 끔찍한 전쟁터의 배경이 대비되요. 참 영화는 세련되고 감각적이에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멋진영화였어요.

사람은 알게모르게 상처를 주고 살아가죠. 살아간다는 것에 필시 상처가 필연적으로 첨부됩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건 실수라고 해도 용납할 수 없어요. 분명 바로잡을 순간들이 더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로비의 울부짖음처럼 그건 계급의 격차였어요. 로비가 귀족이었다면 분명 결말은 달랐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 브리오니를 옹호해주고 싶지 않네요.

로비가 브리오니에게 편지를 잘못 건네고 소리친 순간 그들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경찰에 끌려가는 순간 로비와 세실리아가 절대로 다신 만날 수 없다는 것도 말이죠. 비극적인 사랑.

너무 감정소비가 심하고 충격적이어서 멈추고 싶었는데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브리오니였군요.

내게 돌아와. 내게 돌아와줘

이야기는 계속 될 수 있어. 우리 이야기는 계속 될 수 있어. 나는 계속할거야. 너를 찾고 너를 사랑하고 너와 결혼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어.

마음을 찢는 영화를 찾았는데 전 두 번은 못볼 것 같아요.

보고오셨어요? 으규으규. ㅠㅠ

영화에 깊히 취하셨군요. ㅎ 처음 볼때는 스토리의 전개를 따라가느라 자극적인 장면이 머리속에 주로 남지만 그 후에는 좀 더 이 영화의 디테일을 발견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스포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적지 않고, 분위기를 최대한 전달하려 애썼지요. 그 둘을 가슴에 묻은 브리오니가 속죄의 의미로 쓴 다른 결말의 책에서 그녀의 삶에 진하게 녹아있는 슬픔을 느꼈기에 로비와 시실리아 만큼이나 그녀또한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는 관람 후에 원본 책을 읽었는데, 한장 한장 넘기면서도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 몰입도가 깊었던 기억이 나네요. 마음 잘 추스리시길 바라고, 편안한 밤 되세요. ^^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ㅎ 이 긴 글을 읽어주셨다니 성공한 셈이네요.^^ 칭찬까지 건네주시고,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잘 읽었습니다. 매우 맘에들었던 영화중 하나로 제 머리속에 있네요 ㅎㅎ
다른 영화도 올려주세요 ㅎ

ㅎ 글에는 거의 전반부에 대해서만 썼는데, 후반부에서 풀어지는 속죄의 의미와 아이의 상상력, 회상 전개 방식은 직접 보시는게 더 좋죠. 제찬님도 좋아하시는군요 ^^

영화는 못 보고 소설만 읽었어요. 참 답답하고 가슴 아픈 소설이었죠.
영화도 궁금해지네요.

이완의 글은 참 세련되고 슬픈것 같아요. 브리님은 소설을 먼저 본 케이스군요. ^^
영화를 보신다면 동시에 소설과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가 될것 같네요. ㅎ

책으로도 영화로도 좋은 이야기였어요. ^^

솔메님은 책과 영화중 뭐가 더 좋았나요? ^^

전 영화가 더 좋았어요. 그 이유는.. 연애중에 그 당시 여자 친구와 함께 본 영화거든요. 아주 설레던 시기여서, 영화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ㅜㅋ 역설적으로, 영화나 책의 구성이나 내용과 상관없이, 그냥 제 가슴이~ 영화가 더 좋았었다네요,,ㅋㅋ
이상, 현문우답이었습니다.ㅎ

ㅎ 좋은 영감을 또 이렇게 주시네요. 저도 설레면서 영화를 봤던 몇년 전 일이 떠올라서요. 관람에 집중을 못해본적은 없지만..솔메님의 그때 감정이 느껴지기에 영화가 더 좋다는 현답에 동감해요.^^ 연애 시리즈도 기대해봅니다 ㅋㅋ

좋은 영화를 소개받아서 기분이 좋네요 ^^
팔로우하고 갑니다. 좋은 글 좋은 영화 계속 부탁드릴께요 ~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속죄>의 저자는 한국에서 이언 매큐언으로 표기됩니다^^
어떻게 발음하느냐의 차이겠지요.

그렇군요. 한국어로 번역된 버전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

영화 속에 있는듯한 몰입감! 도르님 필력 좋아요!^^

타타님도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 감사합니다.

이 영화는 추천하는 분들이 많아서 오래 전에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아요. 짜증이 많이 났던 기억이...ㅎ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상황이 저에겐 많이 불쾌하거나 짜증스러웠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 왜 그럴까 고민 아닌 고민도 했었네요. 트라우마??ㅎㅎ^^;;

ㅎㅎ 암유발 캐릭터가 주인공이라 그러신게 아닐까요. 저도 여러번 다시 보고 나서야 불편함을 좀 걷어낼 수 있었어요. 키이라와 제임스의 케미또한 아주 멋졌기에 제겐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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