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글쓰기 –세 번째] 글쓰기 필터와 논리적 구성에 대하여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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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살았던 정든 집을 떠나 새 집으로 이사할 때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평수를 늘리고 이전보다 나은 환경을 위한 이사는 참 좋지만, 이전의 집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느낌이 달라진다.

 싸이월드를 처음 알았을 때, 신세계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다른 이들에게 내 보일 수 있는 나만의 작업 공간이 생긴 기분이었다. 내가 쓴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곳은 내 마음대로 꾸밀 수도 있고, 손님들을 초대하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싸이월드가 쇠퇴하고, 개편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플랫폼의 형태가 바뀐 싸이월드를 떠나갔다. 나 역시 그때 어쩔 수 없는 이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새로 간 곳이 페이스북이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소통의 속도를 최대치로 확장시키기 위해 토막글 위주의 글쓰기 형태가 일반적인 곳이다. 기승전결이 있고, 기본 뼈대를 갖추는 글쓰기를 선호하는 나에겐 별로 맞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난 페이스북으로 옮겨가서도, 긴 글을 썼다. 스크롤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글말이다. 페북이나 트위터의 취지에 맞게 매일 나의 안부를 전하고 소소한 일상을 올리는 것은 내 성향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글을 쓰거나 대할 때 발동하는 강박적인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페북과 어울리지 않는 글쓰기 형태로 꾸준히 글을 써온 시간이, 글쓰기 역량의 도약을 늘 꿈꾸는 나에게는 옳은 선택이었다.

토막글의 폐해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글쓰기 능력을 중시한다. 모든 학생의 필수 코스로 글쓰기 강의가 개설되어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했는지, 작년부터 서울대 신입생들을 상대로 글쓰기 평가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는 다소 놀라웠는데, 30%정도의 학생이 글의 요지를 명확히 드러내는데 실패하는 수준으로 판정 되었다. 하위 10~20%는 글쓰기 교육을 따로 시킨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공부벌레들만 모인다는 곳의 현 주소가 이러하니, 전체적으로 얼마나 글쓰기 능력이 떨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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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결과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전문가들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이 SNS형 글쓰기 습관이었다. SNS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매일 글을 올리는 젊은 층에게서 글쓰기 능력 저하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글쓰기 능력의 향상은, 글을 자주 쓰는 것보다 어떻게 쓰는가에 좌우되는 것이다. 가령 토막글을 100일 동안 매일 올리는 사람과, 기승전결과 논리적 구조를 갖춘 글쓰기를 20번 시도하는 사람, 이 둘 중에 능력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후자이다. (후자를 표현할 때,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시도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미 그런 글쓰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글쓰기의 기술 중에는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문학적인 글쓰기’에도 논리가 필요해?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적인 구성’은 주장하는 글이나 칼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에세이에서도, 신파 소설에서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바로 ‘논리적 구성 능력’이다. 또 이 능력은 기승전결을 공부한다고,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토막글’과 ‘글’ 사이

 토막글 위주, 혹은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나열하는 수준의 글쓰기를 하다가 논리적으로 구성된 글을 바로 쓰기란 쉽지 않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편하게 얘기하는 글도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배치하고,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시점에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 것인가를 계산하여 글을 구성할 수 있다. ‘계산’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계산’은 숙련된 글쟁이가 가진 직관적인 무기이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글을 구성할 때 웅덩이도 파놓고 지뢰도 매설하고 빙판길도 만들어 놓는다. 다 읽는 이의 감정과 생각을 흔들어 놓기 위한 장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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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내가 그냥 편하게 얘기하는데, 그게 나빠?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게 좋으면 그냥 그렇게 쓰시면 된다. ‘내가 보기에’ 더 나은 길이 있다는 제안을 하는 것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판단할 자격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어떤 글을 판단하고 수준을 가늠하는 건 자유로운 일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글쓰기를 요리와 비교하자면, 때로 편하게 적힌 어떤 글은 재료를 익히지 않고 그대로 접시에 데코레이션만 해서 올려놓은 ‘요리...’라고 말하기 애매한 그 무엇이다.

 진짜 요리라고 하면, 요리를 하는 사람이 가진 가치와 목적이 담겨야 한다. 이 요리를 통해서 숙취 때문에 괴로운 다른 사람의 속을 풀어주겠다던가, 유기농 재료만을 써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접시에 그냥 익히지 않은 재료만 올려놓은 것은, ‘요리’라고 불릴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하니 참치가 떠올랐다. 그래 참치로 하자.

  1. 나는 오늘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커다란 참치 머리가 시식대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 참치 머리 인증! (사진)

  2. 마트에서 그 눈을 마주했을 때, 난 그곳이 바다가 아니라는 것이 순간 서글펐다. 시식대에 놓인 참치 머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곳은 어디예요? 라고 내게 묻고 있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뭘까. 전자의 글엔 ‘본 것’과 ‘느낀 것’만 담겨 있다. 별다른 가공이 없는 평범한 서술이다. 물론 아주 감수성이 풍부한 독자는 이런 문장에도 격한 반응을 할 수 있다. 와, 참치 머리래! 많이 놀랐겠다!

 후자는 같은 상황이, 내 생각과 감정의 필터를 거쳐 나온 글이다. 비슷한 짧은 글이지만, ‘나만의’ 시각이 들어있다. 참치를 보면서 느끼는 필자의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문장의 배치 구조도 나만의 것이다. 이것은 앞 회차에서 일부 언급한 글의 ‘진실성’과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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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서 드러나는 ‘진실성’이란, ‘사실’, 요새 자주 하는 말로, ‘팩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성은, 글 쓰는 사람이 옳다고 믿는 것, 오롯이 느낀 것을 담는 걸 의미한다.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 그런 감정인 것처럼 쓴 글은 진실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글을 읽는 사람이 듣기 좋게만 말하는 것, 그것도 진실성이 없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가치가 빠진 모든 글은 진실성이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내 생각과 마음의 필터를 거쳐서 나오는 글은, 필자의 마음에 구축된 논리적인 구조로 표현된다. 즉 마음의 필터는 훈련과 꾸준함을 통해 구축된 자신만의 정교한 논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축되어 있으면, 그 어떤 상황이나 사실을 필터에 집어넣더라도 자신만의 감성과 의미가 담긴 글로 나오는 것이다. ‘엄마의 정으로 만듭니다. 마음으로 굽는 쿠키!’ 라고 할지라도 쿠키를 완성하려면 화덕과 쿠키 틀이 필요하듯, 글쓰기에서도 그 어떤 글이든 ‘논리적 재구성’이 없으면 먹기 좋은 글을 써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논리적 구성 능력이, 훈련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과 느낌만을 담은 토막글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글을 완결된 구조로 쓰려고 하는 시도를 통해 연습할 수 있는 것이다. 소소한 사실에도 나만의 감정과 의미를 부여해보고, 사실+감정+의미가 적절히 배치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면, 그 노력이 쌓여서 글쓰기 파워로 전환될 것이다. 이곳에서만 통용되는 ‘스팀 파워’보다 훈련을 통해 얻어낸 ‘글쓰기 파워’가 더 큰 자산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드리는 말

매주 한 번씩 <문학적 글쓰기>에 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가끔은 객관적인 팁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도 다른 글쓰기 기술 요소를 갖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연재목록


#두 번째-글쓰기와 구체성 : https://steemit.com/kr/@kyslmate/7mzwch
#첫 번째-글쓰기와 문체에 대해 : https://steemit.com/kr/@kyslmate/3zmw1m

-Soulmate essayist by you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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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한 @kyslmate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배꼽잡는 @outis410님이 너무너무 고마워 하셔서 저도 같이 감사드리려고 이렇게 왔어요!! 배꼽잡는 하루 보내시라고 0.6 STEEM를 보내드립니다 ^^

감사합니다ㅎ

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토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ㅎ 좋은 주말되세요^^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논리적 구성.. 역시 어렵네요.
글감을 가지고 개요를 구성하고 살을 덧입히는 교육을 받았을 때 느꼈던 막막함이 떠오르네요.
제 글을 써보고자 앉으면 느꼈던 벽이 아마도 이거 였던거 같아요. 글쓰기 포스팅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실마리를 풀어봐야겠네요! 오늘도 생각할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말로만 들으면 막연하고, 아리송하고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글을 쓰면서만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고 하니 기쁩니다.ㅎ

많은 것을 배워 갑니다. ^^ 토막글에 익숙해져있는 제가 반성을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아이구, 반성은요! 토막글로 교류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다만 글쓰기 역량을 향상시키고 싶은 사람에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주 뵈어요.

정말 좋은 말씀이십니다. 음식을 그저 접시 위에 올려둔 것은 요리가 아님을..^^ 저도 글쓰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잘쓰고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글을 망쳐버릴 때가 종종 있어요. kyslmate님이 말씀하신 진실성을 유의하며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팔로우하고가요☺

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쓸수록 역량이 늘고 다듬어지는 것이기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글이 안늘수가 없지요. 글쓰기 좋아하는 분을 뵈니 반갑습니다. 저도 팔로우할게요. 자주 뵈어요.^^

리스팀 하겠습니다.

짧지만, 큰 관심의 표현입니다. 리스팀만큼 힘을 주는 게 없지요. 감사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여러 사람이 각자 자기 마음의 필터를 거쳐서 쓴다면 사람 수 만큼의 재미있는 글이 나오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글의 매력은 결국 다양한 사건이, 심지어 똑같은 일들이 사람에 따라 다른 색깔로 표현되는 것으로 발산됩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죠.^^

저도 글 쓰기를 좋아하는데 쓰시는 글 보고 앞으로도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 방문과 팔로우 감사드립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팔로우 하고 갑니다!

저도 둘러보고 왔습니다. 좋은 글 쓰시는군요. 한달 생활기 기대할게요.^^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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