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아웃렛 (5th.)

in kr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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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웃 렛

   동화.   writen  by  Soulmate  


다섯 번째 편지



 집사님, 비의 서늘함을 느끼고 계신가요? 비가 땅의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어요. 오늘은 투정을 좀 부려야겠어요.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이 제게 호의적이진 않아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죠. 저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무서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참 다양한 반응을 만나요. 그런데 그 중에는 이유 없는 적개심을 보이는 부류도 있어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 중엔 드문 경우인데, 오늘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정오가 지나서 해가 기울기 시작한 때였어요. 파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들어왔어요. 전 화려한 그 차를 보고 잔뜩 기대했어요. 삶의 여유가 있어 보였고, 겉멋도 좀 있는 것 같으니 애인 앞에서 저 같은 고양이에게 호의를 베풀 거라 생각했어요. 깔끔한 인상에 하늘색 세미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렸어요. 머리는 이발소에 막 다녀온 듯 정돈되어 있었고, 향수를 뿌렸는지 차 한 대 건너에 있던 제게까지 향수 냄새가 훅 풍겨왔어요. 구두는 제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 거렸죠. 그는 제가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것부터 못마땅했나 봐요.

 “이것 봐. 더러운 고양이가 차 지붕에 있어. 이 정도 녀석이면 고라니용 엽총 정도면 충분할 텐데 말이야.” 그는 손가락을 들고 저에게 겨누는 시늉을 했어요.
 “오빠 왜 그래? 불쌍해 보이는 고양이한테.” 뒤이어 내린 여자가 말했어요. 둘은 연인으로 보였어요.
 “이런 게 문제야. 이런 작은 아웃렛은 영업의 기본을 모른다니까. 주차장에 이런 불쾌한 게 있는데도 그냥 내버려 두잖아? 들어가서 한 마디 해야겠어. 그러게 백화점엘 가자니까.” 그 말을 하면서도 그는 저를 향한 손가락을 거두지 않았어요.
 “지나가는 김에 들르면 좋을 거라 생각했지. 오빠도 집에 개 키우잖아. 똑같은 동물이라고.” 여자가 치마에 생긴 주름을 펴며 말했어요.
 “뭐 우리 캐처랑 이걸 비교하는 거야? 이 흉물스러운 거 하고? 노노. 아니지. 태생 자체가 다르잖아. 이건 아마 길에서 태어났을 거야. 이 근처에 돌아다니던 도둑고양이들이 밤새 비명을 지르며 교미했겠지. 사람들의 잠을 깨우면서 말이야. 밤마다 상대를 바꿔가며 교미하는 잡것들. 뭐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지만 말이야.”

 남자는 저를 지나쳐가다가 뒤로 획 돌아 제가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전 남자의 이유 없는 증오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어요. 한편으론 놀랐고, 어떻게 자라면 이 남자처럼 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남자는 저를 때리려는 듯 손을 높이 쳐들고는 저를 위협했어요. 전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항의했지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어요. 끼야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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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호! 너도 성깔이 있다는 거군? 그래봐야 넌 흉측하고 더러운 고양이일 뿐이야. 당장 죽어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동물 말이야. 치킨집의 통닭 같은 존재지. 치킨은 먹을 수나 있지. 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그러면서 남자는 저에게 침을 탁 뱉었어요.
 “오빠, 뭐해? 얼른 와.” 여자가 그를 부르자 그제야 주차장을 나갔어요.

 남자의 침을 피하지 못했어요. 제 오른쪽 목덜미에 남자의 침이 묻었고 일순간 그게 제 짧은 털 위로 흘러 내렸어요. 전 차 지붕에서 내려와 주차장 한 쪽에 있던 철제 봉에 몸을 비볐어요. 철제 봉에 침이 닦여 나갔지만, 침이 제 목덜미에 부딪쳐 닿는 순간 마치 날카로운 표창을 맞는 기분이었어요. 침은 닦였지만, 날카로운 날이 제 마음을 깊이 베고 지나간 것 같았어요. 시간이 지나도 침을 맞은 자리가 시큰거렸어요.

 이곳에 오면서 놀림 받거나 조롱받는 일은 자주 있어 왔지요. 하지만, 그 남자 같은 눈빛은 처음 만났어요. 굳이 자신의 에너지를 써가면서 다른 존재를 흠집 내고 파괴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걸 즐기기까지 할 사람처럼 보였어요. 전 그에 대항해서 털을 곤두세웠지만,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을 느꼈어요. 사람이라는 존재 기저에 음험하게 가라 앉아 있는 악의 존재, 그 실체의 끄트머리를 본 것 같았어요.

 그 남자에 비하면 기주씨가 저에게 보인 반응은 점잖은 편이었죠. 저를 싫어했지만, 노골적으로 적대시하진 않았어요. 기주씨가 자신의 짐을 들고 다시 집사님의 집에 들어왔을 때, 전 저를 사랑해줄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날 거라 기대하며 설레기까지 했어요. 그는 거실에 짐을 내려놓을 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저를 발견했어요.

 “고양이? 유라씨가 잠시 맡아달라고 한 거야?”
 “아니. 며칠 전부터 우리 같이 살고 있어.” 집사님은 기주씨의 다른 짐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정말 영리하고 귀여워. 내 말을 다 알아 듣는 것 같아. 기주씨도 마음에 들 거야.”
 “흠. 고양이라. 나 비염 있는 거 알지? 털 많이 빠지려나?”
 “보시다시피 털이 길지 않은 종이야. 깨끗한 아이니 비염에 별 영향은 없을 거야.”

 전 첫 대면에서 기주씨가 집사님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임을 알 수 있었어요. 저를 바로 환영하지 않는 것이 내심 서운했지만, 그래도 집사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분이기 때문에 저와도 통하는 마음의 길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큰 길이 아니라 샛길이라도 발견한다면 우린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죠. 샛길이라도 발견하려는 노력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전 지내면서 절감하게 되었어요.

 집사님과 기주씨는 다시 합친 그 저녁에 와인 잔을 함께 기울였어요. 전 식탁 가까운 바닥에 엎드려 졸고 있었어요. 두 분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때 여러 마리가 있었는데, 얘가 딱 마음에 와 닿더라고. 쟤도 날 좋아하는 것 같고.” 집사님은 웃음을 머금고 우리의 첫 날을 회상했어요.
 “처음 본 새끼 고양이가 널 좋아한다고 느꼈다고? 역시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냐.” 기주씨도 웃으며 받아 넘겼어요.
 “진짜라니까. 이건 내 상상도 아니고, 문학적인 수사도 아니야. 얘가 내 물음에 대답하면서 날 보는데, 내 말을 다 알아듣고 답하는 것처럼 보였어. 내 마음에 뭔가가 쿵, 하고 와서 부딪혔다고.”
 “그래. 그랬구나.”
 “뭐야. 또 그런 식으로 내 말을 흘려 넘기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네 말을 믿는다는 뜻이었어.”
 “자긴, 꼭 자기가 믿고 싶은 말만 받아들이더라. 자, 봐. 내가 진실을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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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님은 와인 두 잔으로 눈매가 살짝 쳐져 있었지요. 집사님은 절 불렀어요.

 “OO아.”
 전 잠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곤 집사님을 바라보았지요.
 “꼬맹아, 처음부터 나 좋아했지?”
 저는 집사님의 말에 큰 소리로 화답했어요. 그럼요. 물론이죠. “야아옹~”
 “자, 봤지?” 집사님은 기주씨에게 말했어요.
 “그냥 무슨 말에도 저러는 거 아니야?” 기주씨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어요.
 “아니야. 기주씨도 한 번 해봐.”
 “음. 야, 너 이 아저씨 방해 안할 거지? 대소변 잘 가릴 거지?”

 전 그의 질문이 실망스러워 잠자코 있었어요. 그는 이미 제 존재에 대한 평가를 끝내놓고 있었어요. 자신의 삶을 방해할 존재. 성가시고 도움이 안 될 존재. 전 조용히 일어나서 작은 방으로 들어갔어요.

 “뭐야? 나는 무시하네?” 기주씨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요.
 “질문을 잘 해야지. 처음 만났는데 반겨주지 않으니, 기분이 상한 거지.” 역시 집사님은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고양이인데.”

 ‘그냥 고양이’라는 말은 끝끝내 자신과는 교감할 일이 없을 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요. 우리 사이엔 특별한 소통이 없을 것이고, 그걸 기대하지도, 시도하지도 않을 거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죠. (그냥) 고양이, (그냥) 이웃, (그냥) 동료… 우리 주변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수많은 대상에 붙여둔 ‘그냥’이 있어요.

 어쩌면 낮에 만난 증오심 가득 한 낯선 남자보다, 처음부터 제게 ‘그냥’이라는 딱지를 붙인 동거인이 저를 더 아프게 했었는지도 몰라요. ‘증오의 침’과 ‘그냥’이라는 말, 둘 다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에요.

 비가 그쳤어요. 비구름이 물러간 자리에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어제까지 ‘그냥’ 별일뿐이었던 한 별을 유심히 바라봐요. 너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담담히 바라보는 별이구나. 그 별을 제 삶의 이야기에 초대하기 위해서, 우선 ‘그냥’부터 떼어냈어요, 집사님.



To be contiued.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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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재밌게 읽고 갑니다.
6편 기대하겠습니다 @kysl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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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볼수록 이쁘게 생겼네요..
가까이 있으면 데려오고 싶은 마음 이에요 ㅜㅜ
부디 행복해졌음 하네요...
이야기는 점점 더 알고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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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고양이 사진은 실제 아웃렛 고양이 사진이 아니고, 비슷한 사진이 있길래 쓴 거예요. 되게 닮았지요? ^^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저도 아웃렛의 행복을 바랍니다. 감사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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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

다섯번째 편지군요.
첫번째 편지부터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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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ㅎㅎ

laylador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laylador님의 [파리일기] 주말, 골동품 시장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가격이 900유로대 라는게 함정..

다양한 피규어들도 보입니다.
고양이 조각상이 보이길래 찍어봤는데, kyslmate님의 아웃렛이 생각나네요.
덕분에 요즘 동화에 다시 빠져서 쁘띠 니콜라를 읽고 있어요.

부엉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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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ㅎ

아픈 ‘그냥’이 아니라 그냥 좋은 ‘그냥이, 아울렛’ㅎㅎ
아울렛, 장편 소설이었으면 좋겠어요.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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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마담님이 좋아해주시니 더욱 힘이 납니다^^ 아웃렛을 열심히 그려보도록 할게요ㅎ
그냥 마냥 좋은 아웃렛ㅋ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