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오는 날의 일기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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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 전이 가장 춥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쏟아지던 비가 어느새 눈이 되어 내린다.

인간 카나리아들에게는 계절의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음의 계절을 지나, 역동하는 생명의 계절이어야 할 터인 봄이, 인간 카나리아들에게는 가장 죽음에 가까운 계절이다. 인간 카나리아들에게 봄의 나릇함이란, 항히스타민제가 주는 부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시작해서 죽음에 대한 농담을 한참 늘어놓았다. 내 친구들은 나의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많이 한다. 그러다 문득, 독자분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것 같았다.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한다는 사실이 불편한 분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 지워버렸다.


내 문체를 유지하면서 밝은 분위기를 전달하기는 어렵다. 특히 소재가 소재일 때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문체를 바꿔야 한다. 필요에 따라 목소리를, 억양을, 톤을 조절하듯 문체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릴 때는, 소설 속 화자의 목소리를 빌릴 수 있겠지만, 화자가 나인 글에서는 나의 문체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식적인, 꾸며낸 글이 된다.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시종일관 유쾌한 상태이며, 내가 심각해지는건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 문체는 일반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항상 유쾌한 사람은 문체에서까지 밝음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던 것 뿐인데.

내가 오늘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따지면, 조금은 이 글이 밝아보일까? 이틀전에 몇분과 앞으로 성실하게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다 지워버려서 남은게 요만한 글이라는게 아쉽긴 하지만, 평소 같으면 그냥 다 지우고 집으로 돌아갔을텐데 약속을 지키고자 무어라도 남기려고 한다. 아무 메세지 없이 일기만 달랑 남기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지만 아무렴 어때. 대문에도 뻘글이라고 미리 써두지 않았는가. 8시간 끝에 남은건 이것 뿐이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이 여유를 사랑한다. 아! 다 쓴 글을 지운게 아니라, 8시간동안 창 밖에 내리는 눈을 정신 없이 바라보느라 글을 안 쓴걸로 해야겠다. 그럼 성실하게 글을 쓴다는 약속을 어긴게 되나?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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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리뉨.. 그런 사람있잖아요.
무표정인데 화난 표정같고 화난것은 누가봐도 다 알고
글체에도 그런 느낌은 그대로 적용되겠지만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저 사람이 지금 화난것이 아니라 평온상 상태일 것이다'

라는 것을 알듯이
킴리님을 아는 사람은 다들 알고있을 겁니다.

그러니..
화난 표정 아닌 평온한 표정을 얼굴에 하나가득 보여주듯
킴리님의 글 또한 지우지 않고 지금처럼 가져가 주심은 어떠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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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완전 기뻐!

일단 하나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억지로 웃으려다가 저런 표정 되는 것만은 피해야겠군요ㅋㅋ

ㅎㅎㅎ
진지하게 글을 읽다가 마동석님 보고 뿜고가요ㅎㅎ🤠

저 그럼 가끔씩 개구지게 댓글 달아도 되는건가요 ㅎㅎ
김리님 글 읽고 지금 기분 아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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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사람이 노래를 부를때 가성으로 부르면 목에 무리가 오고 목소리를 단숨에 바꿀 수 없듯,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문체를 단박에 바꾸면 말씀하신대로 가식적이고 꾸며낸 글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요 ^^ ;;

스팀잇에는 정보글이 많아서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 사람 냄새 나는 글이 그리워질때가 많아요. 김리님 글은 그런 사람 냄새 나는 글인 것 같아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굿모닝! 킴리님 글에 댓글을 이렇게 빨리 달아보기도 하네요. 이 시간 기억할게요 ㅎㅎㅎ 오늘 눈와요? 와! 눈이닷! 한번만 이런거 하셨으면 글이 엄청 밝아 보였을텐데요 ㅋㅋ 전 문체보다는 킴리님의 프로필 사진이 진지함을 더해주는것 같아요. 왠지 여기서 까불면 혼날것 같잖아요 ㅋㅋ

아무렴 어떤가요.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글도 좋습니다ㅎㅎ

내 본연의 목소리를 가져갈 때 도가는 가장 편안히 읽을 수 있더라구요 :) 김리님 글 편안히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정녕 8시간동안 창밖의 눈을 보느라 글을 못 쓰신거라고 하셨으면.... 어마어마한 새벽갬쉉의 소유자 및 어마무시한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했을 듯...? ㅎㅎ

제가 있는 곳은 겨울비 같은 봄비가 내리고 있네요. :)
내심 마지막 눈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말이죠.

글을 읽고 나니까 나름 김리님 만의 유쾌함이 전 느껴지는데요? :)

앗! 쵸코님 계신 곳에도 눈이 왔어야 하는데 ㅠㅠ 그래야 제 댓글이 딱! 맞는 건데.. ^^;;

화자가 나인 글에서는 나의 문체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식적인, 꾸며낸 글이 된다.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다.

글을 쓴다고 마음 먹었을 때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 중 하나 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게 되니 제 자신이 다 드러나는 글이 되고 말았지만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 좋더라구요.
읽는 사람에 의해서 글의 분위기가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환경에 따라 읽어내는 방식이 달라지더라구요. 읽어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저는 @kmlee님의 문체가 오히려 밝게 느껴졌습니다. 비슷한 말투로 밝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렇지 않을까요?^^

당부를 하지 않았다면 걱정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을거에요. 자주 겪은 일입니다 ㅜㅜ

앞으로 쓰실 글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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