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삼촌의 효도를 막는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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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자식만 키우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형편 없는 임금을 받으며 여기저기 일을 다니셨다. 그러다가 자영업도 해보셨는데 내가 아무리 조언을 해드려도 듣지를 않으시다가, 지금은 정리하셨다. 내가 한 조언이 특별한건 아니고 단지 수익성을 제대로 따져보라는게 전부였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값을 너무 적게 받으셨다. 그래서 손님은 많아도 남는건 없었다. 정말로 남는게 없던 어머니는 "남는게 없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가게를 정리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지혜를 존경했다. 내가 어려운 질문을 드릴 때, 답 뿐만 아니라 질문의 의도까지도 꿰뚫어 보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통찰력은 시간이 지나며 색이 흐려졌다. 삶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며 지성에 그림자가 드리웠으리라. 나는 그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당연히 자식으로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는게 첫번째, 부모의 미래에서 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게 두번째 이유였다. 그래서 작년 가을쯤, 당신은 앞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앞으로 내가 다 책임지겠으니 그냥 노시라고.

나는 몇번의 기회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남았지만, 동생은 적극적으로 고향을 떠났다. 어머니께 등록금을 갚겠다며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는데, 평일부터 주말까지 아르바이트로 일정을 꽉 채워놓고 학업에는 소홀했는지 학점이 박살났다. 그러라고 등록금 내주신게 아니니 똑바로 하라고, 어머니 대신 내가 꾸짖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닌 학교에서 졸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동생은 결혼을 했다. 자식은 신기할만큼 부모를 닮았다. 어머니도 대학 동기셨던 아버지와 그쯤 결혼하셨다. 나는 변종인게 분명하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만의 시간을 오래 가지길 원하셨다. 하지만 동생은 어머니보다도 이른 나이에 자식을 품에 안았다. 그렇게 자신의 꿈과 멀어지는 것 같던 동생은, 문득 다시 꿈을 따라가겠다며 집에 딸을 맡겼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야 했던 어머니는 손녀를 돌보는 무지막지한 업무에 시달리시게 되었다.

동생은 반년정도 어머니에게 자신의 딸을 맡겨놓을 예정인데,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만 나에게는 더디게만 느껴진다. 효도의 때는 항상 늦는다고 하는데 어깨가 너무 아파서 테니스도 쉬고 계신 어머니의 어깨가 더욱 상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카가 돌아가면, 꼭 프랑스에 보내드릴 것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에 출장을 자주 가셨다. 그러면서 한번도 베르사유 궁에 가신 적 없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를 가게 될 때 처음으로 방문하기 위해 아껴두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날은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께 베르사유 궁을 보여드리고 싶다던 당신의 바람은 이루고 싶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내가 가진 모든 성질은 부모님에게 받았다. 과연 아버지의 낭만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계승되어있을까.


아... 더 잘 쓸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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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는 부모님의 조언이 거의 100% 맞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틀리는게 많이.... 제가 더 알고 있는게 많이 생기더라고요... 아 내가 그만큼 성장했구나 이렇게 흐뭇해갈게 아니라... 아 갈수록 내가 져야하는 책임의 범위가 넓구나... 나이가 그만큼 먹었구나... 별다른 고민 없이 의지하고 따를 대상으로서 부모님은 이제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할머니(즉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이 우셨는데 왜 그리 슬퍼하시냐고 물으니, 비록 늙으셨지만 부모 세대가 남아 있을 때는 자신들이 마지막 세대가 아니라는 안도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안도감이 없어서라는 말을 얼핏 하셨습니다.

알고 있는건 역전한지 오래되어도, 자식에 대해서는 자식 본인보다도 잘 아시는게 부모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종 본가에 들러 아버지의 흰머리와 살짝 굽은 등, 어머니의 조금은 야윈 모습을 보며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때 항상 커보이기만 하였고 그림자 뒤로 숨기도 하였던 부모님이 나보다도 이제는 (물리적으로라도) 작은 존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앞날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가끔 어릴적 사진을 들추어보면 기가막히게 닮아 있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지금은 많이들 변했다고 하는데 성정은 사실 물려받은 것을 넘어서기 힘들겠지요.

희생과 침묵을 스스로 내재화하며 살아오셨고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시는 어머니들에게 어떠한 말을 덧붙일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 욕심 안내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제목을 보고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서 얼른 읽어보았어요.
어머니께서 kmlee님의 말씀을 듣고 올해부터 편히 쉬시기를 누구보다 바라셨을텐데
손녀를 돌보느라 다시 고생하시는거 같아 맘이 아프실거같아요.
아마 어머님께서 힘은 드셔도 손녀딸로 인해 새로운 행복을 경험하고 있으실거예요
조카가 돌아가고 나면 베르사유 궁에 가실거라는 계획도, 어머님을 향한 마음도...참 따뜻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즐거워는 하시는데 그래도 무언가 아쉽습니다. 가끔 봐도 그 즐거움은 똑같이 느끼셨을텐데 매일 보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낭만적이셨네요..
근데 얼마나 더 잘 쓰시려구요 ㅋㅋ

꾸준히 읽어주신건 아는데 댓글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거 같습니다. 앞으로 글도 좀 남겨주세요 ㅎㅎ

Thanks a lot Mr @kmlee .You are great !

지금도 잘쓰신 글입니다
즐건운 주말보내세요
감사합니다
tipu!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조카를 돌보느라 즐거우면서도 힘든 주말입니다 ㅎㅎ

지금보다 모친께 더 잘할 수 있는데 혹은,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으로 이해됩니다.

글이야 뭐.. 워낙 출중하시니.

아뇨! 머릿속에서는 멋지다 생각했던 심상을 글로 옮기려 하니 쉽지 않습니다. 댓글도 분위기가 무거운게, 의도에 맞게 흘러간 글은 아닌거 같아요.

@kmlee 님의 글은 바운더리가 없군요. 오늘 글은 특히나 이입해서 읽었더니 마음이 조금 무겁네요. 삶의 걱정에 어머님의 통찰력이 흐려졌다는 구절도.. 아버님께서 베르사유궁전을 아껴놓으셨다는 구절도.. 이 글에서 낭만이 느껴지는데요 저는 :-) 어머님께서 멀지 않은 훗날 꼭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셨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애교는 누구에게 물려받으셨나요 라고 쓰고 싶은 걸 겨우 억누르며...

아버지가 애교가 장난이 아니셨다더라구요. 너무 억누르시면 글이 무거워 보이니 댓글이라도 유쾌하게 써주세요.

아냐 난 아닐거야....!!!
라고 생각과 반발을 해 봐야 닮았더라구요...제 경우엔......^^

그러게 말입니다. 싫어하는 모습까지도 빼닮았더군요.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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