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life story - 한국전의 숨은 영웅, 레클리스 하사를 아시나요?

in #kr5 years ago (edited)

한국전의 숨은 영웅, 레클리스 하사를 아시나요?@jjy

작년 5월12일 미국 동부지역 켄터키주 렉싱턴에 위치한 호스 파크에서
레클리스라는 이름의 말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레클리스는 어떤 업적으로 세계적인 경마대회로 유명한 켄터키더비의
고장인 이곳 호스파크에 전설적인 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을까.

1950년대 초반에 지금은 없어진 서울 성수동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제주산 아침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1950년대와 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말이었다.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미 역사상 유일하게 정식으로 하사 진급까지 했다.

이날 행사는 이 말이 숨을 거둔지 50주년을 맞아 거행됐으며 한국전
참전용사 4명이 함께 자리해 이 말의 업적을 기렸다.

당시 CNN과 켄터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마로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아침해는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에릭 피더슨 중위에게 250달러(현재 가치로 400만원)에
팔렸다. 당시 이 말을 판 한국인은 전쟁 속에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여동생에게 의족을 해주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젊은 청년이었다.

아침해는 미 해병 1사단 5연대 대전차 부대에 탄약수송 훈련받으며
미 해병들이 그의 친구가 돼 주었다. 친근감이 깊어지면서 아침해는
동료 해병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동료들은 그의 용감함을
빗대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레클리스는 우리말로
무모할 정도의 용감함을 뜻한다.

기동성이 뛰어난 레클리스는 산악지형에 통신선을 설치하는 임무에서
일반 병사 12명의 몫을 해내기도 했다. 전장에 투입된 레클리스는
한국전 막바지인 1953년 3월 미군과 중공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치열했던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하루 51개의 전장을
누비며 포탄을 실어 나르는 맹활약했다.

‘베가스 고지 전투(Battle for outout Vegas)’로 알려진 5일간의 전투
에서 레클리스는 4000kg이 넘는 탄약을 386회나 실어 날랐다. 총
56km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 것이다.

레클리스는 전장에서 포탄 파편에 왼쪽 눈 위를 다치고, 왼쪽 옆구리가
찢어지는 등 2차례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임무에 복귀해
부상당한 병사들을 안전지대로 후송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레클리스는 이 같은 모든 임무를 포탄이 쏟아
지는 가운데 말을 조정하는 기수 없이 혼자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였다는 점이다. 레클리스는 철조망 같은 장애물을 피하고,
포탄이 터지면 바닥에 엎드리도록 훈련 받아왔다. 해병들은
레클리스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방탄복을 사용해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2014년 발간된 ‘미국 전쟁영웅 말, 레클리스 하사’
라는 책에 자세히 소개됐다. 이 책은 레클리스하사 기념재단
이사장인 로빈 허턴이 펴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E. 워들리의 말을 빌리자면

레클리스는 우리의 탄약을 지원해주는 생명선이었다.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 요동치는 전장에서 그는 놀라지 않고
견뎌냈다. 그러면서도 무사했던 것을 보면서 수호천사가
레클레스를 타고 있었다고 믿는다.

허턴 이사장은 저서에서 “레클리스는 식탐이 대단했다. 모닝커피와
함께 에그 스크램블과 팬케이크를 즐겼고, 초콜릿 바, 사탕, 콜라에
심지어 맥주도 마셨다.”며 “저녁에는 군인들 숙소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등 동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1954년 한국전이 끝난 후 레클리스는 미국으로 이송이 추진됐고
수백 .명의 환영 인파속에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왔다. 한국전 당시
병장으로 진급한 이래 1959년 미 해병대 하사로 정식 진급했다. 당시
미 해병대 1700명이 도열해 기념 행진을 진행했고, 예포 발사를
진행하는 등 진급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미 해군 1사단은 이날

레클리스에게 앞으로는 담요 외에
어떤 것도 등에 싣지 않도록 한다는
명령을 내리며 업적을 기렸다.

레클리스는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수여되는 미 ‘퍼플하트’ 훈장 2개, 미 국방부 종군기장, 미 해병대의
모범 근무장,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 참전 유엔 훈장을,
한국전 참전훈장 4개 등 여러 개의 수훈 표창을 받았다. 2016년7월
영국에서도 전쟁이나 국가안보에 기여한 동물에게 수여하는
‘디킨 메달’을 수여했다.

레클리스는 1960년 11월 명예 전역을 하고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해군기지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딸 하나와 아들 셋을 낳고 1968년
5월 2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레클리스의 죽음은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전국적
관심을 불러 모았지만 세월이 지나 점차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쟁 영웅마 레클리스의 전설이 재조명됐다.

-본문 이미지 뉴시스 인용-

한국전 정전 60주년인 지난 2013년 버지니아주 해병대박물관에 동상이
세워졌고, 2016년 팬들턴 해병기지에도 동상이 제막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레클리스 사망 50주년을 맞아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호스파크에 3번째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함없이 사랑을 베풀어
준 미해병대의 생명 존중정신과 전쟁이 끝나고 귀국해서도 레클리스를
본국으로 이송했고 사람과 견주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예우를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는 경기도 연천 물 문화 전시관에 레클리스의 업적을 기리는
군마 아침해 전시코너가 마련돼 있다고 한다. 한 번쯤 시간을 내어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동생의 의족을 해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낯선 미군에게 팔아넘기고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경주마로 생을 마감하는
평온함을 누렸겠지만 타고난 용맹함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며
포탄을 날라 많은 생명을 구하는 전쟁영웅으로 살게 되었다.

그를 팔았던 주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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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redible story brother.
excellent article @jjy

thank you
have nice day

오오.... 영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기억해 둬야겠어요, 아침해.

팔려가긴 했지만
용감한 군마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지요.

훈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알려주셔 고맙습니다.

미국이 왜 선진국인지 알 수 있게 하는
한 페이지였습니다.

저 예전에 다른 뉴스에서 접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보니 또 반갑습니다^^

그렇지요.
저도 처음 접할 때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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