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헤어짐의 의식

in #kr6 years ago

헤어짐의 의식 @jjy

빨리 갔다 와야 한다. 사또에게 전화가 오면 낭패다.
평소에도 바쁘게 살고 있지만 잠시 짬에 움직이려면 보통 빠르게 움직여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발에서 뭔가 헐렁하고 신발과 발이 일체감이 없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많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잠시 멈추고
확인을 하니 여러 갈래 끈 중에 하나가 오래 신어 봉제 부분이 낡아 본류에서
살짝 빠져나오고 있다.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시간도 없어 그냥 지나간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신기하다.
나는 무슨 물건이든 하나를 구입할 때 결정에 신중함을 넘어 곤란을 겪는
편이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결정 장애를 의심할 정도인데 대신 나중에 번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신발은 뜻하지 않게 구입하게 되었다.
단체에서 여럿이 어디를 가는 도중에 각자 볼 일도 보고 바람도 쐬고 커피도
한 잔 마실 겸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발이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 커피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왜 그런 가 살펴보니 구두 굽이 깨진 틈에
끼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쁘고 편해서 잘 신는 구두였는데 순간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고 일행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
억지로 뺐는데 구두굽이 상했다.

대략난감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름거리는데 휴게소 앞에 라틴음악을 연주하며 씨디를
팔고 있었고 그 옆에서 가방을 파는 곳이 있었고 신발 노점이 보였다. 당장에
슬리퍼라도 사야하겠기에 거기까지 가보니 구두도 몇 켤레 보였다.

나를 보는 순간 사태를 짐작하고 몇 켤레를 내 보이며 권해준다. 그 중 발에
맞는 유일한 사이즈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사기는 했지만
이렇게 요한하게 생긴 신발을 신고 어디를 가겠느냐고 하며 오늘만 신고
누구를 주든지 버리든지 한다고 했다.

나는 옷이고 신발이고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색상이나 무늬가 눈에 띄면 일단 거부하고 대개 블랙이나 파스텔톤을 선호한다.
그런데 저런 반짝이 구두를 신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무슨 나이트클럽에 조명
받을 일도 아니고 오늘이면 너랑은 끝이다 하며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 가방을
길게 늘어뜨려 들고 최대한 가리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신고 다니는 동안 발이 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집에 와서 긴 바지에 신고 아무 곳이나 다니게 되면서 남의 시선은 잊고
정이들었다.

사람도 처음엔 어색하지만 차츰 편하고 정이 가는 사람이 있고 첫눈에
좋아 보이지만 상대를 알아가면서 점점 불편해 지다 결국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 성화에 중매로 선을 보고 떠밀려 결혼을 하면서 툴툴거리다 나중에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고 점점 좋아지는 부부를 보는 격이다.

그 동안 잘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버리려고 하니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할 수 없이 신으면서 투덜거리던 생각이 나서 미안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내 발을 편하게 해 준대 대한 고마움도 크다.

힘들다 아프다는 불평도 없이 내 발을 떠받치고 사느라 고생했다는 생각에
나중에는 어떻게 될망정 다른 쓰레기에 함부로 섞이는 게 싫었다. 일어나서
신문지를 가지고 앉았다. 신문지를 펼치고 가운데 놓고 사방을 잘 접는다.

그렇게 여러 겹 싸고 풀리지 않게 잘 여미고 마지막에 끈으로 묶으면서 갑자기
아버지와의 마지막 날이 떠오른다.

들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말로 그간의 인연을 푼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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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낮고 아주 편해 보이는 신발이네요~ 신어본 사람은 알지요 ^^ 저도 화려한건 좋아하지 않지만, 약간의 반짝이 정도는 허락합니다 ~~ 남들은 제가 화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요?? ㅎㅎ 관점의 차이일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제가 워낙 드러나는 차림을 싫어해서
많이 망설였는데 막상 신고보니 편했어요.
사람에게도 그런 선입감을 갖지 않았나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에 앉아 jjy님의 글을 읽으니 참 좋습니다^_^
우연히 만난 인연이 편한 존재가 되어 jjy님의 곁을 잘 지켜주었었네요
그동안 수고많았어..예쁜 신발!

정말 예기치 않게 만나
이렇게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나에게 충실했던 좋은 친구였지요.
지나고 보니 예쁜 신발

디디엘엘님도 예쁜 엄마입니다.
오늘도 힘내세요.

반짝이는 알 하나 빠진 곳 없이 참 소중하게 신어주셨네요. 구두도 감사해할겁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엔 편안함만 남았습니다.
플로리다 복귀하셔서 잘 지내시지요?
처음인데도 편했고 참 반가웠습니다.
좋은 하루 지내세요.

이해가 갑니다. 학교 졸업하고 처음 맞춘 양복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작고 유행도 지난 옷이지만 지난 추억이 그리워 지금도 옷장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겠더군요^^

그런 섬세함이
모든처음은 더 그렇지요.
뭔가 애틋하기도 하고
좋은 하루 지내세요.

신발 멋지네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팔 것처럼 생긴 화려한 신발이지만, 오래 신어서 발 모양 그대로 형체를 갖게 된... 손떼 묻은(발떼가 묻었을까요?ㅋ)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는 신발입니다.
저 신발을 얼마나 편하게 신고 다니셨을지 신발은 보니 느껴집니다.

전 샌들을 신으면 바닥에 발바닥 모양으로 자욱이 생기던데, 어쩜 저리 깨끗하게 신으셨데요?ㅋㅋ

신고 다닐 땐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가장자리가 많이 달았어요.
제가 한 번 좋으면 뭐든 끝까지 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옷도 소맷부리가 낡아도 입고 다닐 정도로
오늘도 제주음식 공부 즐겁게 하세요.

수고했다 신발아 너 때문에 행봉했단다~ 라고 말해주세요 ㅎㅎ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왜 그렇게 목이 메이던지요.
바보 같이
아니 바보 맞아요.ㅠㅠ

좋은 하루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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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서 추억이 가득 느껴지는 것 같아요~
화려함이 조금은 부끄럽던 처음보다
편하게 내 발에 맞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겠지요~^^

처음엔 내가 날라리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이런 신발을 누가 신으라고 만들었나 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변했답니다.
날라리도 아니고 처다보는 사람도 없고
혼자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했지요.
선입감이라는 굴레를 쓰고
좋은 하루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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