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소나기

in #kr6 years ago

소나기 @jjy

아침엔 따갑던 햇살이 오후가 되면서 점점 구름 뒤로 숨는다.
하늘엔 구름이 층을 이루고 저마다의 높이를 유지하고 지나간다.

옅은 색으로 설핀 구름은 가장 높은 길을 한가롭게 떠돌고
중간 톤의 비둘기색 구름이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가장 어두운 회색의 비구름이 무거운 눈물을 끌고 달음질친다.
수묵화처럼 농도가 다른 구름이 겹치기도 하면서 잠시 두터운
구름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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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하늘에 오가는 구름이 커다란 마블링 작품을 보여준다.
색깔도 무게도 방향도 다른 구름은 서로 거리낌 없이 만나고
망설이지 않고 흩어진다.

때깔 고운 첫물 고추를 더 오르기 전에 샀다. 하나하나 먼지를
닦고 꼭지를 따 꽁꽁 묶은 비닐 포대를 다시 집으로 끌어들인다.
방앗간에 가기 전에 비를 만날 것 같다.

갑자기 작은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밤톨만한
빗방울이 먼지를 날리고 댓돌 위에 벗어놓은 슬리퍼를 적신다.

떠돌다 스치는 구름도 서로 맞지 않는다고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싸우는지 하늘의 소리가 땅을 울린다.

20180709_155959.jpg

컴퓨터를 끈다.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닫히고 익숙한 고립감 속에
젖은 신문을 들여다보다 부채를 들고 꿉꿉함을 날린다.

지나가는 빗소리는 어느새 잦아든다.
바람은 벌써 무겁게 매달리던 구름을 쓸어내고 밝은 얼굴이고
길모퉁이에 핀 채송화도 눈물을 털고 생글거린다.

이제 내 차례다.
내일의 외출을 생각하며 충전기에 꽂아 둔 핸드폰을 연다.
눅눅해진 마음 거풍을 하고 싶다.

20180811_191949.jpg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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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구름이 제 마음 같네요.

구름이 비를 잔뜩 머금고 있군요.

소나기를 배경으로 그리는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내린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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