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 지구는 거대한 커피 테이블이다
#1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루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곧잘 부분때문에 전체를 좋아하는 내가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던 대목이 있다.
지구가 둥그런 물체가 아니고 거대한 커피 테이블이라고 생각한들, 일상생활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나 불편할 것인가. 물론 어떤 일에든 그런 극단적인 예를 들어 뒤죽박죽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거대한 커피 테이블처럼 평평하게 생겼다고 하는 편의적인 사고 방식이, 지구가 둥근 공 모양으로 되어있는 사실에 의해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사소한 문제 (예를 들면, 인력이라든가 날짜 변경선이라든가 적도라든가 하는 그다지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것들)를 깨끗히 배제해 줄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세상을 (편의적까지는 아니고..편의라는 단어는 임시의 느낌이 강해서)자의적으로 보는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경향으로 인해서 추후에라도 진상을 밝히는 일을 즐기지 않게 되었다. 내 판단이 틀렸음을 확인하게 될까봐, '틀림의 인정'이 싫어서 그 과정을 생략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일에 대한 내 자의적 해석≠진실'인들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틀 안에서 살기 때문이다.
#2
나는 예언자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 '미리 아는 것'과 '예측하는 것에 확신을 가지는 힘', '예견하는 바를 기반으로 한 올바른 대처'는 모두 전혀 다른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언=자의적 판단'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세밀한 데이터를 들고 오지만 그 것 역시 자신의 기준에서 선정된 정보들일 뿐이다. 자신이 좋은 것을 알고 있다면 본인부터만 누리도록 해라. 세상을 위하고 싶다면 '예언'말고도 편안하고 참신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그럴 줄 알았어", "그러게 내가 뭐랬어?" 등이다.
일단 아무도 미리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측하는 것에 확신도 없다. 확신하지 못 할수록 자신의 예견에 대한 불신감을 숨기기 위해 자주 예언을 한다. 그리고 말하는 것에 부합하는 행동을 정작 본인은 하지 않는다. (ex. 이더리움이 떡상할 줄 알았으면 자동차라도 팔아서 사지 그랬어) 예언도 못 하고, 자신의 예측을 믿지도 못 하고, 그래서 아무런 대처도 없으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 우연히 현실로 이루어지면 스스로 대견해 하고 남에게 우쭐댄다. '예견하지는 못 했으나 그 폭발적 파급력 때문에 결과적으로 승부처가 된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신화 속으로 들어가 선지자나 영웅 행세를 시작한다.
#3
냉소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내 성향은 스스로에게도 냉소적임을 뜻하는 자조적인 성격과 맞물려서 간신히 나와 타인에 대한 공평한 시각을 제공하고 그 감각으로 사회 생활을 해간다. 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애달파 하는 대신 스스로 신화가 된 이들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가진다.
오늘 오마주를 위해 들고 온 글은 내가 좋아하는 글이다. 내 무지로 인해 생겼던 자의적 해석과 관련한 에피소드이다. 약 두 달 전의 글을 다시 들고 왔다. 독자들에게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길 바란다.
긴 시간동안 'Someone likes you'의 의미를 생각하며 아델 노래를 들었다.(정확한 제목은 'Someone like you')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이 듣고 좋아하는 노래를 같은 기간에 즐기는 것을 싫어한다. 한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였기에, 어디에서나 그 곡이 흘러나오던 시절 다 보내고 (그 노래가 끊이지 않고 재생산 되던)오디션 프로들이 한창이던 시절까지 지나고 나서야 듣기 시작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그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누군가는 너를 좋아해"
한동안 페이스북에 돌던 영상을 기억한다. 버스정류장에 한 여자아이가 있고 학교 친구들이 그 여자아이에게 못된 말을 하며 힘들게 하는 장면, 아주머니는 여자아이의 가방과 모습이 이쁘다고 했고 성인 남성은 괴롭히는 친구들을 훈계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옆으로 불러 하모니카를 불어주었다. 나는 상상했다. 'Someone likes you'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오늘 처음으로 노래의 가사를 유심히 살폈다. 영화 Once의 'If you want me'만큼이나 가슴이 저리는 내용이었다.
Never mind, I'll find someone like you. I wish nothing but the best for you, too
괜찮아요, 당신같은 사람을 찾을게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래요.
슬퍼서 아름다운 노래라고 생각했고 그 곡을 내 멜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리고 8년 전에 읽었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세상을 너무 편의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지만 내가 지구를 거대한 커피 테이블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들, 지구가 둥글고 돌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ex. 날짜 변경선, 적도 등)이 나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는 이야기.
사람은 모두 자신이 보고 싶은 것과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나는 아델의 'someone like you'가 누군가는 분명히 너를 좋아해. 라는 의미인 줄 알고 그 말이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으니, 그 말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가 되려면 someone이 3인칭 단수 주어 노릇을 해야하고 일반 동사 like에 s가 붙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자신은 바로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은 바로 모르고 있다고 흥분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아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을 올바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게 된다면 분명히 그 사람도 내가 옳다고 생각할꺼야"
아니! 그런 일은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알면 된다.
자의적인 지식과 생각을 진리로 포장하여 남에게 강요하고 남을 정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모두의 생각은 그 수준의 고하나 깊고 얕음에 의해 평가 받아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경지에 가지 않아도 적당한 욕심은 버릴 수 있고 예수님이 아니어도 작은 이웃 사랑은 실천할 수 있다. 상위 계층에 편입하여 타인을 지도하려는 행세보다는 사회의 정의와 개인의 선의에 더 신경을 기울이며 살고 싶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책 표지 아래 부분은 약 두 달 전 포스팅을 '[오마주]프로젝트로 재 발굴한 글입니다'
^^ 보고자하는 것이 보이고 듣고자 하는 것이 들린다.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마을에 지구가 둥글다 알고 있는 사람이 가서 역설한들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마을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Like는 동사일때는 누군가를 좋아한다 라는 의미지만 전치사로 쓰이면 ~처럼, 같이 라는 말이되는데.... 이것은 극명한 의미의 차이인가? 좋아하니까 비슷하겠다가 오히려 맞지 않는가...
결국... 당신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당신을 좋아하는 누군가도 있다와도 결국에는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아델의 노래는 너같은 놈 또있어..에 가깝겠지만.. ^^
크, 너무 좋은 비유입니다! 여행은 평안하고 즐거우신지 모르겠습니다. 여행지에서의 멋진 사진들 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며칠 여행지에서 그만 게으름병에 빠져서 여행기를 게을리 했네요 ^^ 이제 돌아왔습니다. 진부한 힐링이라는 표현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얻은 여행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오가는 말에 있어 명확함이 많이 요해지는 것은 그래서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자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본 건 아니었나 자문하게 되네요. 금요일입니다. 주말이 앞이네요, 즐거운 나날이시길 바랍니다.
티가든님이 댓글을 적어주시고 그 새 이틀이 흘렀다니..요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새벽에 운동을 하는 편인데 자꾸 대낮에 나가게 되고, 밤에는 자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 시간이 흐르고~ 그래도 스팀잇을 시작한 후로는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스팀잇을 찾게 됩니다. 사람들이 여기 있어서 그런 듯 합니다. 활기찬 일요일 보내세요 티가든님 ^^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장기간 자릴 비우고 근 6일만에 본격 나타났네요. 오로지 모든 것을 비우고자 참선의 시간들이 좀 필요하다고 판단, 이래저래 일상을 핑계삼아 못챙기고 소원했던 분들을 하나 둘 접선하고 다녔답니다. 다시 주말이 코앞이네요. 가든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마침 비슷한 생각에 빠져 있었더래서 올리신 글 천천히 유심히 읽었습니다. 자주 개인적인 통찰이라고 포장 되기도 하는 편의적 진실은 실체적이고 거대하고 객관적인 사실들과 무조건 배타적인 관계에 있지 않으며 그 불편한 공존이 아름답고 리얼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던 중이었습니다. 오늘 <버닝>을 보려고 하는데 <헛간을 태우다>의 하루키와 원더랜드 쪽의 하루키가 다 떠오를 것 같습니다.
앗! 페이스북에서 뵙던 분이군요, 늘 팔로우를 하지 못 해서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댓글에 적어주신 생각은 너무나 공감하는 바라서 제가 사족을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버닝'이 보고 싶던 참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교류하면 좋겠습니다 ^^
네 반갑습니다. 올리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버닝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만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점은 변치않습니다. 편한 주말이시길요!
초기 하루키 작품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가든님이 하루키를 읽으니 반갑네요^^
someone like you 가 someone likes you로 들리던 시절에 이 노래를 들었다면 힘이 났을듯 하네요. 개인적으로 위로받는 노래입니다^^
누님, 요즘 제가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특히 누님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제가 스팀잇을 함에 있어서 언제나 큰 의미가 되는 몇 안 되는 분들 중에 누님이 계십니다. 늘 지켜봐 주시고 제 감정을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누님의 포스팅을 챙겨 봅니다. 오래오래 뵙고 싶습니다 ^^
왜이리 오글오글 따끈따끈한 말을 하는거입니까...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