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똥파리 - 녹이 슨 롤러코스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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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전체관람가'감독들의 영화 엿보기 8탄.(감독 양익준)

잘 쓰여지는 글이 있고, 잘 쓰여지지 않는 글이 있다.
전체관람가 방영순으로 출연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리뷰를 적기로 했다.
어둠의 경로는 이미 한 참 전에 끊었기에, 왓챠플레이에 담겨진 영화만 찾다 보니 걸려드는 영화가 많지 않다.

순서 상으로는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를 리뷰해야 하지만 영화를 보고도 잘 쓰여지지 않아 마지막 편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긴 공백을 두고 다시 보게 되었다.(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왓차에 없다, 넷플릭스에도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싶었지만 다음 '비밀은 없다'를 끝으로 열편중의 아홉편으로 이 시리즈를 마감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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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캅 삼춘

슈퍼 앞 동네에서 항상 마주 하는 삼춘은 꼬마의 눈에는 링 위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크로캅만큼 큰 존재이다. 그러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마주한 그는 교복을 입은 소녀의 눈에는 양아치나 다름 없다. 양아치는 건달을 동경하고, 건달은 양아치를 무시한다. 소녀의 눈에는 때 묻지 않은 꼬마가 보지 못한 삼춘의 때가 보인다. 삼춘은 때를 가지고 있지만 꼬마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 꼬마와 소녀가 보는 그는 크로캅과 양아치만큼 사이가 넓다.

어릴 때 보았던 어른이란 존재는 나이가 들면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게 좋아지던 싫어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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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수 없는 녹

한 번 피어진 녹은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가만히,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살아가며 꼭 필요했던 존재가 나를 죄어 온다. 무른 쇠와 같던 상훈(양익준)에게 물과 산소와 같아야 할 부모는 녹을 쥐어 준다. 녹과 함께 바스라지던 상훈의 쎈 척은 그래서 이해가 된다. 바스라지는 자신을 감추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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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묻은 녹은 때 묻은 녹이 알아 본다

드럽던 침과 함께 날라온 때를 교복을 입은 소녀는 알아 봤다.거울을 보는 듯 남들이 보지 못하는 때를 그녀 연희(김꽃비)는 상훈에게서 보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와의 악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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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녹을 먹는다.

바닥을 기는 삶을 사는 상훈은 그 보다 더 한 바닥을 기는 삶에 기생한다. 숙주가 더 작으니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은 녹이 번지는 것을 혐오한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일수금을 걷고 허름한 고깃집에서 회식을 연 상훈이 보스같지 여기지 않는 보스 만식(정만식).

상훈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며 봉투를 건낸다. 이거나 갇다 드려라. 팬클럽 회장이 건낸거라고.

야, 그래도 나같은 고아새끼는 그런 아부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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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녹의 꽃을 피워준 아버지란 존재는 숨을 못 쉴 지언정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산소 없이는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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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워진 거울

성애가 낀 물기 묻은 노란 조명 아래의 거울 앞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늘 그 이상을 보게 한다. 단점은 극소화되고 장점은 극대화 되어진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는 것은 그래서 더 어렵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자신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거울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면을 타인에게서 볼 때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은 수시로 변한다. 그 앞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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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 1 의 법칙

가파른 비탈길에서 마주한 상훈과 연희의 연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바닥에서 올라갈 곳은 비탈진 오르막 길 밖에 없다. 그런 좁디 좁은 동네에서 언젠가는 마주 했을 인연은 꼬리를 물며 비탈진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평지는 저들만의 세상이고 비탈진 길을 오르 내리는 그들의 인생은 힘이 부친다. 롤러코스터는 에너지가 이름을 달리하며 빠르게 오르락 내리락을 평지처럼 쉽사리 움직인다. 롤러코스터를 움직이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힘을 받지 못한 그들은 바닥처럼 평지를 기지만, 삶의 부침은 롤러코스터와 같아 그들의 삶은 오르락 내리락 쉴 틈이 없다.

이 세상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데 어느 한 쪽으로의 쏠림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녹은 녹을 먹고 힘을 받지 못한 녹이 슨 롤러코스터는 바닥을 기어 간다.

녹이 슨 롤러코스터를 다시 달리게 할 페인트는 누가 칠해 줄까.

주인공인 상훈을 연기한 양익준은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이다.


제목 : 라라라
감독 : 양익준
주제 : Y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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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늘 고맙습니다.

아직 안봤는데, 글 읽고나니 궁금해지네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계 여려 나라에서 칭찬이 자자하다니 실망하지 않으실 듯 합니다.

예전에 똥파리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죠. 주인공이 악바리 건달이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들여다보면 뭔가 짠한 마음이 들었어요. 평지와 비탈길에 담긴 의미를 얘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글 잘 봤습니다^^

앗, 선생님께 칭찬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전 초등학교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노래 바위섬, 터를 걸개에 손수 가사를 적으셔서 종례시간마다 같이 부르며 수업을 마치셨는데 지금도 가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솔메이트님 제자들은 축복 받으신 것 같아요. ^^

아무리 연기라지만 저때의 양익준과 요즘 티비에서 보는 양익준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적응이 안되더라구요ㅎ

네 불타는 청춘에서 잠깐 봤는데 부끄럼을 많이 타더라구요. ㅎㅎㅎ연출도 연출인대 연기도 참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본 계춘할망에서도 무심한 듯 잘 하더라구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게 하는 디테일한 해석이 담긴 리뷰, 잘 봤습니다 :)

보셨나요?저는 다시 봤는데도 불구하고 재미 있더라구요. 처음 봐서 좋으면 계속 다시 보는 스타일이라...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모르는(대중에게 안 알려진, 아님 저는 모르는) 배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좋은영화들이 많다는 게 신기하기도하고 뭔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라는 세상이치가 영화판에도 그런것 같고.
근데 또 아는 사람들은 아는거죠.
잘 읽고 갑니다~^^

네 맞아요. 이번에 범죄도시에서 유명해진 진선규 배우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네요. 예전에 나온 드라마에서 처음 봤는데 처음 보는대도 불구하고 연기가 기가막혔거든요. 이번에 잘 되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똥파리 참 아릿아릿하면서 봤었습니다. 양익준은 배우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참으로 매력이 많은 분인 것 같습니다.

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아릿아릿했는데 다시 보니 저릿저릿하더군요. 감독,배우로서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모습이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아아. 아득하고 아련한 영화군요.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었어요. 그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글이네요. 녹이아슬아슬하고 삐걱대며 거침없이 질주하는 녹이 슨 롤러코스터...

개봉한지도 오래되었네요. 저는 개봉하고 4년 뒤에 보고 이번에 다시 봤어요. 맥주 한잔 마시며 보니 감상에 젖어 두서 없이 적었네요. ㅎㅎㅎ영화 끝에 페인트칠을 서로가 해주는 장면이...악연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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