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Essay 007 | 감흥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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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취향이나 기호로 세련되게 포장하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즉흥적이고 무작위적인 감흥의 모음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취향이란 존재하지 않고, 때로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익숙지 않은 뉘앙스에 대해 쉽게 벽을 치면서 잘 쌓아놓은 나의 세계가 무너져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감흥이란 존재는 대체로 친근하고 안정적인 걸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은근하게 무언가에 흡수되기도 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반응하며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무엇에 감흥을 느낄까.


이걸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나서 내가 느낀 감흥 때문이었다. 밴드 '퀸(Queen)'의 음악은 그들이 풍미한 시대가 나의 세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면서 익숙하게 들어왔다. 각종 매체에서 세계는 하나라고 외칠 때나, 힘내자고 하고 싶을 때 광고에서 혹은 예능에서 배경음악이 되어 과도하게 내 귀에 주입되어왔다. 영화에 나온 거의 모든 노래가 여러 번 내 귀에 들어왔었지만, 단 한 곡의 한 순간도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보고 집에 돌아와 영화에서 재현된 1985년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영상을 찾아봤다. 난데없이 프레드 머큐리의 음색이 매우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지닌 특유의 걸음걸이도 묘하게 힙하다고 느껴졌다. 오래도록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퀸(Queen)에 대한 첫 번째 감흥이었다.

수많은 감흥의 원료들은 어리고 젊은 시절에 만들어진다. 스스로 정한 규칙이 명확하게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감흥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많은 것들에 감흥을 느낄 수 있지만, 어린 날의 것들처럼 쉽고 빠르게 부풀어 오르진 않는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고집스러운 취향은 조금씩 확고해지는데, 가끔은 그 세련됨이 감흥에 인색해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흥의 절정기


숙성된 취향은 감흥에 있어서도 스토리텔링을 좋아해서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반긴다. 그 향수가 새로운 버전으로 재해석되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코드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추억하는 그 시절은 완벽하지 않았고, 어설펐으며, 때로는 찌질하기도 했다. 그 시대가 내가 마음껏 흡수한 내 감흥의 절정기였기 때문에 그 모습 그대로 그때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지나고 보면, 그것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기억을 포장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감흥의 절정기를 지닌다. 나에겐 나의 절정기가 가장 감격스럽겠지만, 누군가에겐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어렵고 당연할지도 모른다. 태어난 시대와 자라난 환경, 사회적 분위기, 문화 현상, 개인적인 경험과 타고난 기질 같은 크고 작은 것들이 멋대로 뒤엉켜 한 사람의 감수성을 만들어 낸다.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에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움들은 때로는 너무 어설프고 가벼우며 본질을 흐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경계가 흐려지면 흐린 대로 그것이 시대적 특징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극히 상대적인 것들에 우리는 쉽게 절대적인 기준을 내민다. 내 감흥의 절정기가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했듯이 누군가에게는 지금이 나중에 곱씹으며 그리워할 감흥의 절정기일지도 모른다. 남의 시대에 함부로 개입하며 나의 감흥이 너의 감흥보다 우월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새롭게 들여다보기


새로운 감흥은 규칙을 깨지 않으면, 쉽게 다가와주지 않는다. 그리고 감흥은 생각보다 무작위적으로 다가온다. 나의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대한 환상이나, 겪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한 상상,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의외성, 무관심했던 것들에 대한 관심이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매일 가던 길을 조금만 다르게 가보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익숙한 걸 벗어난다는 건 마치 운동과도 같다. 하기 전엔 썩 내키지 않고 귀찮은데 막상 한 발만 들이고 나면, 나름의 흐름을 갖게 되고 상쾌한 쾌감과 뿌듯한 성취감 같은 감정들이 마음을 그득하게 채워준다.

감흥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일 뿐, 익숙하고 낯선 그 모든 것들에서 예고없이 찾아온다. 오랜 시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새로운 감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보헤미안 랩소디'에게 고마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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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예고 없이 고등학교때 자주 듣던 그 감흥의 기억이 예고 없이 찾아와 눈물샘을 찌르고 몰래 도망갈 것 같아요.
플레티넘 컬렉션 앨범 사서 정말 자주 들었거든요 ㅎㅎㅎ

이터널님에게는 추억의 음악이군요. ㅎㅎ 아직도 영화의 실황공연 재연 장면이 아른거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