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Essay 002 | 약속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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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약속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약속에서 시작되어 약속으로 끝난다.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의 환경 속에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약속은 필수다.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우리는 약속의 의미를 어렴풋이 학습한다. 성장하면서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일방적으로 지켜야 하는 약속들은 많아지고 그것은 '규칙'이라는 말로 바꿔 쓰는 것이 더 적절해진다. 부모는 자식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규칙을 가르친다. 학교에 9시까지 등교해야 하는 규칙이 만들어내는 습관과 당위성, 불이익은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는 데에서도 연속적으로 유효하다. 길가의 신호등이나 주차장의 흰 선에서부터 근무시간과 마트의 영업시간, 버스의 배차간격까지 크고 작은 약속은 무수히도 많아 우리의 일상 속에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학습하고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익숙해지면서 정해진 약속과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는 건 우리의 삶을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모두가 지켜야 하는 법과 효율을 위한 규칙만이 약속일까?








암묵적인 약속이 더 많다.


우리의 일상과 문화 안에는 더 많은 약속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어긴다고 벌금을 내는 법이나 수칙은 아니지만 더 크고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인식과 가치관, 취향과 문화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문화에 따라 혹은 개인에 따라, 어떤 것은 매우 중요한 의식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매우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잉여스러운 사치나 놀음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많은 문화적 요소들은 그렇게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약속들을 만들어 내고, 때로는 그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 되어 자유를 구속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는 약속들은 어떤 의구심도 품지 않은 채 오로지 지키기 위해 애쓰게 되는 경향이 크다. 언제부터 누가 만들어낸 약속인지 그 시작과 본질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기준을 새로 만들거나 옳고 그름을 정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묻는다.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정한 거야?'라고. 아무도 선뜻 대답할 수 없다. 무리 중에 그 약속을 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약속은 당사자들끼리 정하는 것인데,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어려울수록 갑론을박은 심해진다.

하지만, 의미가 퇴색되어 껍데기만 남은 문화에 대한 논쟁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남녀가 함께 만들면 조상을 기리는 의미가 퇴색될까? 학생들에게 머리를 염색할 자유를 허락하면, 통제하는 게 더 힘들어지고 성적이 떨어질까?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호칭을 다시 재고해보자고 하면, 서로를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까?








약속의 균열


지키려고 만드는 것이 약속이지만, 문화 안에서 약속은 언제나 깨진다. 약속은 지키는 것도 미덕이지만, 깨지는 것도 미덕일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은 언제나 기존의 약속을 깨고 새로운 약속으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시대의 젊은 세대들은 매번 자신이 약속의 당사자가 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화는 소비와 취향으로 군집되는 문화뿐 아니라, 좀 더 넓은 범주의 문화와 사회적 인식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그동안의 약속과 규칙을 잘 지켜오던 자에게 그것을 깨는 것은 매우 귀찮고 심란한 일이다. 그 간의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과도 같고, 다시 새로운 약속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변하는 것 만이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 균열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롭게 세상의 문화를 접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스스로 약속한 적 없는 것을 무의미하게 지켜야 한다고 느낄 때, 오래된 약속을 깨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술은 늘 그다음을 바라보며 발전을 거듭하지만, 문화나 예술은 꼭 그렇지도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알쓸신잡3를 보며 곱씹어 보았다. 우리의 문화나 삶의 깊이는 좀 느리게 나아갈 수도 있고, 정체할 수도 있고, 가끔은 뒤돌아 가기도 한다. 하지만, 뒤돌아가는 것 역시 멀리서 보면 그다음을 걸어나가기 위한 발걸음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고, 그 시대의 상징 혹은 감수성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약속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고 뒤돌아가는 것을 조급해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가 되지 않길 바라본다. 의미가 퇴색된 약속이라면 얼마나 오래 지켜왔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다시 본질을 이야기하고 지금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시 약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지켜지고 있는 모든 약속과 문화가 유의미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P의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Lifestyle Essay 001 | 현실감각과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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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인 약속은 악습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ㅠㅠ

맞아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지켜야할 것 처럼 느껴지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