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Essay 003 | 무색무취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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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썼던 글을 재가공하였으므로 보상은 거절합니다.

이전에 쓴 글을 뼈대라고 생각하고 수정, 보완을 거쳐 살을 붙이는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서 쓴 글이라고 해도 한 숨 떼고 지나서 보아야만 보이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네요. 글이든 내 안의 생각이든 나름의 숙성과정을 겪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서 세 번째 라이프스타일 에세이를 공유해봅니다. :)









우리는 얼마나 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내뿜으며 살고 있을까.


불과 얼마 안 된 것 같은 SNS는 완전히 우리 삶의 속성을 바꿔 놓았다. 개인의 창작물이 별다른 후원을 받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공감을 얻어 거대한 입소문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도 컨텐츠가 되고, 매우 주관적인 취향에도 귀를 기울여주니, 굳이 대기업의 간택을 받지 않아도 먹고사는 방법을 다양하게 간구해볼 수 있게 되었다.

개성과 취향을 존중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고, 많은 브랜드들 역시 그 다양한 취향의 소비자들을 잡겠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만의 취향이 강해지고, 그 취향이란 것의 기호는 매우 섬세하고 또 섬세해지고 있다. 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도대체 취향이 뭔데?








다양한 취향의 시대


우리는 매일 쓰는 펜 하나,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나만의 취향을 부여한다. 이전에는 단순히 소비습관이었던 사소한 것들 하나까지도 까다로워지면서 취향은 점차 그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내가 듣는 음악과 읽는 책, 머무는 공간에서부터 시간을 쓰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취향은 마치 삶의 방식의 일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입맛이 주관적이듯 모든 취향은 주관적이다.

조용하고 감성적인 동네 카페에서 주인이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실용적인 공간과 일정한 편의를 가져다주는 프랜차이즈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또, 넘실대는 시각적 즐거움을 느끼려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취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황과 성향이 여러 작용을 하면서 때에 따라 다른 선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의 경우엔 평일엔 주로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고, 책을 읽을 땐 동네 조용한 카페를, 친구를 만날 땐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나 새로 생긴 카페를 간다.

똑같은 제품을 쓰거나, 똑같은 취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같은 취향이라고 말하기도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스타벅스가 커피가 쓰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공간이 주는 편안함때문에 스타벅스에 갈 수도 있는 거고, 스타벅스의 다양한 메뉴를 좋아하고 즐겨서 갈 수도 있는 거다. 똑같이 자전거가 취미여도 선택하는 브랜드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고, 라이딩의 코스나 함께 타는 사람에 의해서 그 분위기와 결이 갈리기도 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 섬세한 '취향의 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예전엔 주류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고 미덕이라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남다른 선택이 더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개인의 고유한 취향을 하나의 프리미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겨났고, 누군가는 타인의 취향을 추종하기도 한다.








틀에 갇힌 취향


그렇다면, 우리의 취향은 개인에 따라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졌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호가 공유되면서 우리는 더욱 다채로운 문화를 품은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일상과 취향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비슷해져가고 있다. 누가누가 더 핫하고 힙한 것이냐는 경쟁의 도마 위에서 전 세계의 인플루언서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실시간으로 트렌드를 파악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되었다.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식탁 위에 놓인 컵이 너무나도 맘에 든다면, 비슷한 거라도 찾아서 내 방에 가져다 놓는 것이 가능해졌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쌓이면서 국내엔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의 제품도 잘 알게 되었고, 직구가 또 하나의 소비 습관이 되었으며, 마침내 한국에 진출한 해외 브랜드에 환호하기도 한다. 스페인의 SPA 브랜드 '자라(ZARA)'의 옷은 나도 입고, 어떤 미국인도 입고, 어떤 중국인도 입고, 또 어떤 스페인인도 입는다. 파스타는 과연 이탈리안 음식인가? 지금은 마치 전 세계인의 음식이 된 것 만 같다. 파스타를 즐기지 않아도 몇 가지의 파스타 이름 정도는 다 알고 있고, 기본적인 것도 모를 경우 무리에서 무안을 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취향의 맛이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촌스러운 사람의 비율이 줄어든다. 주류의 느낌과 새로 떠오르는 것들의 느낌을 우리 모두 예전보다 더 많이 빠르게 알게 되면서 적당히 세련된 취향이 광범위하게 공유된다. 그러다 보면 대세를 거스르는 엉뚱한 사람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 물론, 엉뚱한 사람들도 여전히 많이 존재하는데, 그 엉뚱함이라는 것도 통용되는 하나의 코드를 지니게 되면서 비슷한 엉뚱함이 생겨나기도 한다. 있어 보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대세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건 브랜드에게도 상품에게도 디자이너에게도 예술가에도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보이지 않는 공식이 되어가고 있다.








순위의 나열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가수이자 방송인 윤종신의 SNS에서 발견한 글 때문이었다. 음원사이트의 Top 100 시스템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인데,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어떡하던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이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남의취향에휩쓸리지않기'라는 태그를 쓰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음원사이트들은 새벽에 음원 사재기를 통해 순위를 올리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차트 프리징(chart freezing)'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말 그대로 동결인 것이다. 누가 뭘 더 듣고 덜 들어도 그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고 얼리는 거다. 하지만, 이것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그거 잠깐 얼린다고 전체적인 시스템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윤종신은 Top100이라는 걸 아얘 없애자고 제안했다. 사실 Top100에 들어가도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미비한 데, 들어가지도 못한 무수히 많은 곡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유투브에만 곡을 공개해 천만뷰를 훌쩍 넘게 달성한 마미손의 선택은 정말 계획대로 잘 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참 순위별로 나열하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등수를 부여받게 되면서 치열한 경쟁과 순위에 과도하게 훈련이 되는 것 같다. 포털사이트에도 댓글이 많고 '좋아요'가 많은 기사가 메인을 차지한다. 놓친 방송을 보고 싶을 때 네이버TV를 찾아보는 편인데 역시나 Top100들이 정렬되어 있다. 영화관들은 이미 주류가 될 영화들을 필터링해 놓기 때문에 기껏해야 4-5편의 영화 중에서 내가 원하는 걸 골라서 관람해야 한다. 그 4-5편이 모두 비슷한 장르일 때도 많아서 장르의 선택권 조차 별로 주어지질 않는다. 이런 식이니 베스트셀러에 대한 반항심도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큐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악, 영화, 책 등 모두 사람들이 즐겨야 하는 문화이고,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창작자 혹은 예술가의 영역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걸러내도 한참은 걸러낸 무색무취의 프레임 안에서 취사선택을 한다. 이런 형태가 과연 취향이 세분화되는 시대에 개인의 주관과 성향을 드러내는 행보라고 볼 수 있을까.

점점 Top100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Top100에 소개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건 귀찮고 오래 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Top100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시스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거다. 누군가 그것에 대한 혜택을 통해 기회를 가져가면 누군가는 그만큼 뺏기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공지능은 나의 취향에 맞춰진 큐레이션을 완벽하게 제안해줄 수 있을까? 얼마간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가끔은 기호에서 벗어난 의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존재하는 법인데, 그런 부분까지 인공지능이 해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더 깊어진 내가 되고, 더 나다운 취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양성이 공존하려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에게도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에게도 더 많은 개인의 취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것 같다. 경험의 기회와 정보의 양은 우리의 시간보다 넘쳐난다. 그렇기에 큐레이팅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 것인데,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내 취향의 큐레이터가 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 안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되고 싶다.









P의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Lifestyle Essay 001 | 현실감각과 관계들
Lifestyle Essay 002 | 약속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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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개인추천동영상을보면 기능을 참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흥미를 잃을만하면 아주 예전에 흥미있게 봤던 유사한 동영상들 소개해주고...ㅎㅎ

네 이용하는 플랫폼 중에서는 유투브가 가장 취향에 잘 맞춰주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