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Essay 005 | 나를 알아가는 시간

in kr-writing •  last year 


005.jpg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나를 알아간다.

스스로 어떤 성격과 기질을 지녔는지 확인하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탐색한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 자신에게 질문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가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나를 표현해야 하고, 내가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야 하는 브랜드의 상품처럼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색'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갈망한다.








'나'는 계속 변해간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나를 잘 알게 되거나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성장기를 지나, 나와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나를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정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고정된 진리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인물처럼 제자리에만 머무는 사람은 없다. 고인 듯해도 변해가는 환경 안에서 그리고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나의 색은 깊어지거나 옅어지거나 다른 색에 물들기도 한다. 그렇게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조금씩 톤을 달리한다.

뾰족했던 것들이 점차 무뎌지기도 한다.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마음 어딘가에 존재하고, 언젠가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날카로운 말과 눈빛을 내뱉기도 했다. 차가웠다가 따뜻하거나를 반복해왔고, 만족감과 우울감이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어떤 것은 단단해지고, 어떤 것은 더 약해지기도 했다. 매일의 기분이 다른 것처럼 나도 조금씩 달라진다.

우리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많이 변한 친구와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친구를 나누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여전한 친구의 모습 속에도 그의 일상과 속마음을 전부 다 알아채지 못할 뿐, 미묘하게 달라진 톤의 변화가 분명 존재할 거다. 그게 태도이든, 표정이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든.








'나'를 알아가는 과정


우리의 외부적인 경험과 그로 인한 내적인 생각의 시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나의 색을 만들어 낸다. 어찌 보면 살아가는 모든 시간에 걸쳐 끝나지 않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시간의 파편들이 내 안에 담겨 내가 된다. 내 취향을 저격하는 물건은 무엇인지, 영화나 책은 어떤 것인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면서 발견하게 된다. 나는 어떤 시간과 어떤 공간을 향유하고 싶은지 혹은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고 싶은지는 이런저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깨닫게 된다.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상황만이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유난히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지점을 발견했을 때 나는 결정적으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성향과 방향을 지녔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걸 알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선택과 행보를 보이게 될 수도 있다.








'다름'을 확인했을 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해내는 사람들을 볼 때, 비슷한 방향을 걸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을 때 부러움이 섞인 질투를 한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나도 똑같이 생각했는데, 저 사람이 먼저 했네'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나에 대한 확신은 어떤 필터가 끼워진 것처럼 흐리고 또 흐려진다. 마치 '비슷함'이라는 필터 때문에 나와 타인의 다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방향을 먼저 걸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어떤 사람의 설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이 궁금했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일을 벌일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게 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뛰어든 것인지가 알고 싶어 온갖 사심을 가득앚고 그곳을 찾아갔다. 나에겐 이렇게 느린 보폭의 일들이 남들에겐 어찌 그리 거침없이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건인지 알 길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었다. 고즈넉한 마당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풀어놓는 사람과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있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을 '업'으로 삼게 된 모든 과정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염탐을 하러 간 자리에서 나는 '다름'을 확인했다.


나와 비슷한 지점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서 찾아갔던 것인데, 내가 알아챈 것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실망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와는 다른 지점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렇게 필터가 거두어지고 조금은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이제야 말끔해졌다. 공기 속 먼지가 빗속에 씻겨져 내려가듯 번잡했던 내 마음이 다시금 차분해졌다.

잘 나가는 누군가의 노하우나 요령은 오랜 시간을 통해 나에게 체화되지 않는 이상 결코 나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탐색해보며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의 지점을 알아채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기 위해 남을 경험하는 시간이 나를 숙성시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더 많은 '호'와 '불호'를 마주하면서 시간을 켜켜이 쌓아나가다 보면, 헐겁지 않게 깊어진 나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다름'을 느껴 너무나 뿌듯한 저녁이었다.









P의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Lifestyle Essay 001 | 현실감각과 관계들
Lifestyle Essay 002 | 약속의 굴레
Lifestyle Essay 003 | 무색무취의 아이러니
Lifestyle Essay 004 | 기록의 양면성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I kile post you. Mantap

잘 읽고 갑니다 @emotionalp

감사해용:)

나를 제대로 알고 내 주변 사람을 제대로 아는 건 의외로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의외의 상황에서 새로운 내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진짜 오래 봐온 친구에게서도 내가 보지 못한 많은 모습이 숨겨져 있기도 하니까요. 의외성과 다름은 그래서 재미있죠 :)

젠젠님!!잘 지내시나용ㅎㅎ나조차 나를 알아가는 것이 매번 새로운 일이네요. :)

만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가지 길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상이 다채로운거 같기도 하고요..ㅎ

네 더 다채로워지면 좋겠어요. 비슷한 환경에서 너무 많은 영향을 주고받다보면 가끔 비슷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뭔가를 하다보면, 아무리 동경하고 내 행보와 똑같고 카피만 잘해도 성공이다 - 라고 여겼던 것에서조차 차이와 다름이 결국 발생하긴 하더라고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내가 그 사람이 아니고 다른 생각과 경험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결국엔 다른게 맞는건데, 그걸 알아보는 것 조차 과정이 필요한듯해요

음... 요즘은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뿐이라... 나도 달라지고 싶어요! 조금더 나아지고 싶어요! P님 잘 지내셨죠?

에빵님! 너무 오랜만이셔요 ㅎㅎ 저도 요즘은 글을 잘 못쓰다가 다시 힘내서 쓰는 중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