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발상 001 | 낯선 계절의 반복

in #kr6 years ago





낯선 계절의 반복





때 이른 추위에 가을은 없나 보다 하려는 찰나를 잠시라도 스쳐 지나가듯 가을이 머물고 있다. 잠깐의 외출 길이나 마음먹고 나간 시끌벅적한 동네에서 걷다가 위에서 떨어지고 발에 걸리는 노란 잎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가을이 와있음을 느끼다 보면, 문득 봄의 벚꽃이 생각난다. 매번 연례행사처럼 돌아오는 벚꽃을 사람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반긴다. 나는 한 때 시큰둥해하기도 했는데, 계절이 무어라고 색이 바뀔 때마다 처음 맞는 것처럼 호들갑일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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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갔다가 그 앞 정원에 흐드러지게 핀 잎들에 나도 모르게 잠시 고게를 들고 위를 쳐다봤다. 단풍이나 낙엽을 좋아하는 건 왠지 올드해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서 마음이 동하는 건지 생각이 바뀐 건지 나도 모르겠다. 가을에 태어났지만, 그동안 가을을 충분히 좋아하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절에 시큰둥해할 동안 얼마나 많은 계절의 모습들을 스쳐지나 보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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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금 큰 은행나무 한 그루일 뿐인데, 사람들은 이 앞에서 빽빽하게 서서 사진을 찍어댄다. 그저 공간의 조화가 좋아서 한 장 찍으려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이 좋아해서 저 공간을 저렇게 내버려 두었나 봐."

"말도 안 돼. 이 비싼 땅에 그럴 리가 없어. 다른 용도나 계획이 있겠지."

"그런 거라니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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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길마다 낙엽이 떨어지고 땅 위에 수북이 쌓여 자꾸만 가을을 알려온다.

아무리 사계절이 쳇바퀴 돌 듯 돌아온다고 해도 날씨의 흐름은 계속 달라지는데, 같은 모습의 계절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물든 정도와 빛깔, 잎이 떨어지는 시기, 햇빛의 강도와 바람의 정도가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매번 이름만 같은 다른 계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차도에 화석처럼 짓이겨진 은행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처음인 것만 같다. 세상의 사람들 같다고 느껴졌다. 누군가는 안전지대에 태어나고, 누군가는 간발의 차로 고난의 길을 겪어야 하는 복불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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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안전지대에 태어나고, 누군가는 간발의 차로 고난의 길을 겪어야 하는 복불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

시로 써도 될 것 같아요

낙엽이 떨어지기까지

도로앞은 은행 낙엽으로 뒤덮여있다
곱게 말라죽은 보도의 샛노란 은행잎
바퀴에 짓이겨 검게 물든 은행잎
누구나 한뿌리에서 여름 햇살을 배우며 자란다 그러나
삶의 한기가 몰려오기 전엔 알지 못했다네
바람 결에 함께 춤추던 시절에도
누군간 굵은 나무 가까이 미동도 없이 자랐다는 걸,
또 누군가는 가지 끝에서 더 크게 흔들리며 살아왔다는 걸
대개 도로 위에 떨어진 이들은
가지 끝에서 휘청거리며 자랐던 이들이었다는 걸
낙엽 쏟아지는 은행나무 앞에서 나는
너무도 많이 흔들리며 살아왔구나 그러나
나는 아직도 떨어지고 있다
가끔은, 가끔은
멀리 뻗은 낙엽이 훨훨 날아
다시 나무 뿌리로 떨어지기도 한다


영감에 시 한 수 가져갑니다

오와 너무 멋진 시군요!!! 저의 생각에 영감을 얻으셨다니 너무 감사하고 뿌듯하네요. 포스팅으로 쓰셔도 되겠어요. :)

영감이 좋으니까요 :) 포스팅하게 된다면 저 사진과 P님의 이름을 함께 놓아도 될까요?!

ㅎㅎ 네네, 그럼 감사하죠 :)

저도 가을이 지나간줄 알고 시큰둥했는데 아직 마주칠 가을이 있어 행복해요.
그러고보니 벚꽃에 비해 단풍보러 가자는 유난은 덜한 것 같아요. 벚꽃보단 단풍이 흔하게 있어서 그런 걸까요 ㅎㅎ
제가 느낀 가을의 정취를 이토록 통찰력 있게 담아쓰시다니 대리만족하고 가요:D

감사해요. ㅎㅎ 오늘은 비가 와서 낙엽이 더 빨리 떨어지니 아쉽네요. :)

오늘 비가 와서 낙엽이 많이 떨어진 걸 보니 이제 슬슬 겨울이 오는구나하고 느꼈어요. 달력보니 어제가 입동이었네요.

대학다닐 때 정문에서 캠퍼스까지 가는 길에 있던 은행나무길은 너무나 멋졌지만...너무나 지독해 강의실까지 따라왔던 냄새가 떠오릅니다 ㅎㅎㅎ

ㅎㅎ맞아요, 은행냄새 지독하죠.한바탕 비오고나니 은행잎이 더 많이 떨어졌네요. 이제 정말 겨울이 곧일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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