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의 거꾸로 읽는 세상_#4] 자본주의가 시선의 권력으로부터 도피하는 법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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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조직 사회에 갓 진입한 신입들이 겪는 이유없는 피로감에 대해 궁금해 했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신입 사원들 그리고 갓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들은 할 일이라는게 아무것도 없다. 데드라인이 닥친 원고를 마감하는 일도, 2018년 Product Roadmap을 짜는 것도, 대항군에 맞서 봉쇄선을 배치하는 것도 그들의 일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신입사원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료사회 최대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피로는 극심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줄줄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이유가 뭘까?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치는 어떤 물리적 힘의 작용 결과가 아니다. 그건 그냥 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기. 그럼 왜 이런 감이 드는걸까? 바로 시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누군가에게 평가되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느낌이 온 신경을 통해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I'm Watching You.

진실은 여기에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대담해진다고 한다. 평소엔 옆자리의 여자 동료와도 제대로 대화를 못하는 샤이 가이가 남미의 한 클럽에선 대담히 수작을 건다. 외근을 나간 신입사원이 오전 미팅을 마친 뒤 사우나에 들러 오후까지 잠을 잔다. 프로이트가 말한 슈퍼 에고도 따지고 보면 시선의 다른 말 아니었을까? 딱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억압을 감시와 동일시한다. 권력=억압, 억압=시선인 것이다.

사장의 자리가 빌딩의 꼭대기 층인 것도 임원들이 독립된 방을 갖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현대 사회에서 시선을 거부하려면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딜레마가 있다. 관료 사회의 권력 구조를 살펴 볼까? 여기 사무실에 굴러 들어온 호박을 나누기 위해 구성된 태스크포스 팀이 있다고 가정하자. 팀원들은 공평한 분배를 위해 밤새도록 토론한 결과 몇개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팀장이 반대한다. 그러더니 보완을 한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자신의 의견을 보태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팀의 의사결정으로 간주되고 잠시 후 모든 구성원들에게 전파된다. 이런 상황에서 팀원들은 팀장의 의견을 뒤집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살펴보면 합리적인 의견이 다수결에 의해 채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의사결정권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독재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팀원들이 모두 각자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건 맞다. 문제는 팀장이 가진 표가 1만개라는 것이다.

그럼 이런 팀장 10명을 거느리고 있는 실장은 어떨까? 10,000 X 10 = 100,000 표를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장은 백만표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조직 사회에서 하위 구성원들의 권력 총합은 결코 상위 구성원 1인의 권력보다 클 수 없음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료 사회를 피라미드에 비유하지만 실제 권력 분포는 그 반대인 역피라미드 구조인 것이다. 그것도 무한히 발산하는 지수 함수의 형태로.

자, 이제 권력자들의 딜레마가 확실해진다. 높이 올라간 사람들은 아래로부터 전달되는 시선으로 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실상은 더 강하고 커다란, 불가항력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시야에 포착되는 것이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셈이랄까? 절대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최고위 경영진 조차도 이 시선으로부터 도망갈 방법은 없다. 그들은 주주의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야 비로소 오늘날의 자본이 왜 그렇게 주주의 권리를 확보하려 애쓰는지 알 것 같다. 여기 질소로 과충전된 과자를 파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회사의 꼼수에 분노하고 심하면 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그 회사의 주주들에 대해선? 나는 회사를 욕하는 사람을 본적은 있어도 그 회사의 주주를 욕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주주자본주의 하에선, 회사의 모든 주체들이 사실상 주주의 이익 추구를 실현하는 대변인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뽑은 국회의원이 무슨 법안을 내고 어떤 법안에 찬성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떤 주주가 무슨 결정을 내려 회사를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주주자본주의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시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최고의 안식처다. 심지어 주주는 종종 대중의 편에 서서 회사의 비윤리적 행위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 행위를 통해 얻은 이득이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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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재현>, 르네 마그리트 1937년 작.

우리가 모여있는 여기 스팀잇은 주주자본주의와 꼭 닮아 있다. 혹자는 주주의 모든 행동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그것을 모두가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 스팀잇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모두가 볼 수 있는 환경에선 그 어떤 권력자도 안하무인이 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이 정보의 은폐와 이를 통한 권력의 독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진걸까?

설령 우리가 서로에 대한 서로의 감시로 균형과 견제를 이뤄내더라도 무엇을 감시하고 무엇을 제재할 것인가 라는 가치판단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 기준에 따라 누구는 손해를 보고 누구는 이득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정확히 주주들이 갖는 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정의라 믿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두번, 세번 숙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의는 결코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아니 대개 정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Sort:  
  1.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2. 모든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
  3. 여기가 그나마 낫다.

이런 이유로 저는 오늘도 스팀잇을 합니다.

  1. 피드백 주는 사람이 많다.
  2. 돈이 된다.
  3. 여기가 제일 낫다.

이런 이유로 저는 오늘도 스팀잇을 사랑합니다.

    1. 그나마 여기가 예의차린다(그런 척할지라도)

그런 이유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ㅎㅎ

저는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진짜 친한 친구들 끼리는 쌍욕도 얼마든지 주고 받잖아요. 너무 좋은 말들만 하다보니... 뭐랄까 이상하게 서먹서먹할 때가 있죠 ㅋㅋ

표면적 정의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사이에

이득을 보는 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이 오싹해집니다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시는 dPXs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피드백 남겨주시는 티치아노님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늘 좋은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짱짱맨 가즈아!

jjangjjanman만 외치면 언제든 달려와 주시는 virus707님 항상 감사합니다.

우연히 들릅니다.

주주자본주의와 시선에 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근대의 판옵티콘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감시와, 균형에 대한 견제가 시선으로 -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이루어지더라도, 실제 그러한 시선이 누군가를 속박하거나 세계에서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힘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현실에서는 법률이 그러한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지도 모르고요.

스팀잇에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보의 '은폐'에 의한 독점은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독점이 정보의 은폐에서 일어나진 않으니까요. 저는 오히려 정보의 투명성이 권력의 기제로 작동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믿는 편입니다. 사실 충분한 숙고 없는 경우, 악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발현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결국 행동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주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는, 알려고하면 알 수도 있는 것들이거든요. 블록체인도 모든게 투명하게 노출되지만 그걸 일일이 따져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독점이 정보의 은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투명성을 요하는 현대 사회의 윤리적 강박이 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따로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저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악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윤리나 도덕, 법률 같은 건 생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도 성악설을 좀 더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deadpxsociety 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좀 더'라고 표현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스스로는 일부분의 선(善)을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종종 저는 과도한 투명성이 피로하게 느껴지더군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노래 작업을 포스팅 하는 뉴비입니다^^
우연히 들르게 됐습니다 ㅎㅎ
여유가 되신다면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니셜이 많이 익숙하네요. KT하이텔이라는...

저는... 팀장도 실장도 될 수 없으니 주주가 되어야겠어요 !! 소액 주주!!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생태계가 맘에 안들면 다른 생태계로 가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날들이 오면 너무 좋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봐요. 그런곳에서는 사실, 주주고 사장이고 실장이 되는 것보다 신입사원이 가장 자유롭고 '저항'의 파워도 생긴다고 보거든요. 예전에 헤겔의 변증법에 관한 강의를 듣다가 이런 말이 있었거든요. 가장 권력있는 계층은 지배층이 아니고 강력히 저항하는 피지배층에게 있다고. ㅎㅎ 지배층은 책임도 막중하고 기존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이지만 떠오르는 피지배층은 책임감으로 눌리지도 않고 배째라로 나가기 때문에 가장 영향력이 세다고요. 말씀하시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약간 상통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요.

문제는 그 피지배층이 지배층이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오늘날의 지배층이라 부를 수 있는 부르주아는 귀족들의 권위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이었고 루터, 칼뱅의 개신교도 한때는 가톨릭의 부패에 맞서 싸우던 급진 종교였거든요.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죠.

그쵸 피지배층이 지배층이 되려는 욕구를 중력처럼 따랐죠. 그런데 그것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면, 즉 헤겔이 그 부분을 짚은 순간, 예리한 사람들은 항상 파워있는 피지배층에서 지배층으로 넘어가려는 찰라의 그 팽팽한 줄위에서 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레벨업 되는 순간에 자신을 다시 레벨다운하는거죠. ㅎㅎ
이론상 그렇다는거에요. 진짜 할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그치만 참 재밌게 들리더라구요.
아, 원글님께 제 글 하나 소개해도 될까요? 이 토론과 좀 맞는 얘기가 될것 같아서요. 시간되실때 읽어보시고 함께 얘기 나눴음 좋겠어요.

https://steemit.com/kr-newbie/@ddd67/4-sovereign-individ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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