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얼굴

in #kr6 years ago (edited)

나의 오른손 둘째 손가락 가운데 마디에는 2cm 가량의 희미한 흉터가 남아있다.

내가 4살때 손가락이 덜렁거릴 만큼 크게 베어서 바늘로 꿰맨 자국이다.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다쳤을 때의 상황같은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어떤 장면들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앞뒤 필름은 다 잘리고 마치 토막처럼 부분부분 남아있는 기억인데
그 기억 속에서 아빠는 나를 들쳐안고 한 손으로는 내 손가락을 무언가로 싸서 꽉 쥔 채 정신없이 달리고 계신다.

그 길도 기억이 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것들과 섞여서 뒤죽박죽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말이다.
손가락이 다쳤으면 아팠던 기억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그런 건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 때 나를 안고 달리던 아빠의 얼굴이 너무도 또렷해서 내 머리 속에는 마치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빠는 너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무나 절박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빠의 그런 얼굴이 오히려 더 무서웠던 거 같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곤 기억이 잘린다.

다시 이어지는 기억에서는 내가 병원에 앉아있고 진료실같은 곳에는 의사와 아빠가 있는데
의사가 막 나를 달래는 것 같은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아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한테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연신 달래주고 계신다.

난 아빠 말을 잘 듣기 위해서 울지 않았던 거 같다.
아빠 얼굴이 너무 무서울 만큼 긴장되어 있어서 울면 안 될 것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몇 바늘 꿰매고 의사선생님이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셨던 것에서 나의 기억은 끝난다.

나는 요즘도 어쩌다 한번씩 그 때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단편적이라도 어렸을 때의 강렬한 순간의 기억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법인가 보다.

손가락.jpg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난 오늘 문득 내가 손가락을 다쳤던 그 날의 아빠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 와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보고 있다.

나를 들쳐안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가신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달리면서 한 손으로는 나를 안고 한 손으로는 내 손가락을 꽉 잡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손가락이 행여라도 잘못 될까봐 힘든 것도 모르셨을 것이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엄마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온전하게 내 몸을 보살피며 키워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명을 키우기도 힘든데 셋을 키우시면서 부모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날 하얗게 질려있던 아빠의 표정과 같은 마음으로 늘 우리를 키우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 자란 우리에게도 여전한 마음을 품고 계실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모자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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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조카가 생겨보니 몬가알거같아요 그 어린게 애프다고 생각하면 ㅜ

그렇죠. 어린 애들이 아프면 더 마음이 아플 거 같아요.
조카를 굉장히 예뻐하시나 봐요.

저는 한살때 입술 아래가 찢어진 적이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도 일요일날 응급실로 저를 들고 뛰어다니셨던 이야기를 가끔하세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하시면서요..
떨려서 잡고있는 손에 힘도 안들어간다고 하시는데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글이네요 ㅎㅎ

부모님의 마음이 다 똑같으시겠죠.
krystalsnail님 아버님도 정말 많이 놀라셨겠어요.
아마 아버님께는 정말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으실 거 같네요.

지금 우리의 자식들한테는 잘 하지만, 참 부모님한테는 못 하는것 같아요.
나도 누군가의 자식인데, 안부전화 해야겠습니다. ^^;;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들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루님이 부모님께 받으신 만큼 하루님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시니까요.^^

전화 한통에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정말 작은 일에도 부모님은 항상 고맙다고 하시는 거 같습니다.
자식들은 늘 부모님께 받아왔던 일인데도 말이죠.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마음조리며 사셨을까요!
부모님에 대한 감사... 끝이 없죠!

늘 노심초사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정말 감사드릴 건 끝이 없죠.^^

읽다가 저도 모르게 울컥하네요.. ㅜㅜ가족들이 보고싶어집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한 거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요~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리셨을텐데... 어쩌면 점점 희미해지는 흉터가 싫으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모님께 전화드려야 겠습니다.

정말 정신 없으셨을 거에요.ㅠㅠ
흉터는 희미하긴 해도 절대 없어지진 않을 거라...ㅎ
라이드팀님! 부모님과 좋은 시간 보내셔요.^^

부모의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야 알겠더라구요.
참 어리석죠..

그러게요. 전 지금도 다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에요.

4살때 기억이 있으시다니 대단하세요.
전 7~8살 기억부터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얼마나 아버님이 놀라셨을지 상상이 갑니다.
저도 저희 아이가 다치면 가슴이 덜컥 할테니까요.ㅠㅠ

저도 워낙 어렸을 때라 그런지 아주 짧은 순간순간의 기억만 있어요.
나름대로 굉장히 강렬한 기억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식이 다치거나 아프면 부모님들의 마음고생이 정말 보통이 아니겠죠.ㅠㅠ

5월 다시 파이팅해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치님도 파이팅하세요!

아버지께서 엄청 놀라셨겠네요. 저도 어렸을 때 열이 심하게 나서 어머니가 간병해 주신 기억이 아직도 나요.

네..많이 놀라셨겠죠.
kingsea님이 열 나셨을 때 어머님도 많이 놀라셨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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