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Duri │제18화 Episode 18│ 어둠 속의 실루엣 ─ 그리고 잊지 못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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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dventures of Duri



두리의 모험








제18화 어둠 속의 실루엣

그리고 잊지 못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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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linjane







 2018년 7월 15일 일요일 저녁, 오클랜드로 돌아갈 채비를 끝마쳤다. 보름 만이었다. 한 달의 절반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겠지만 90퍼센트의 시간이 일로 채워진 15일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일이 끝이 나니 후련했다. 마무리 현장 사진 촬영은 카메라를 가지고 온 내가 맡았다. 광각 렌즈의 과장미 덕분에 사진이 더욱 멋스럽게 찍혔다. 이 사진들이 기름이 되어 두 사람의 뿌듯함이 더욱 활활 타올랐기를. 현장을 배경 삼은 두 사람의 기념 촬영도 잊지 않았다.


 이제 '웰링턴 - 오클랜드 9시간 드라이브'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대낮에 출발할 거라 기대했는데, 또다시 일정이 미뤄져 창밖도 볼 수 없는 야간행이었다. 어쨌거나 하루를 더 낭비하느니 빨리 집에 가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기는 했다. 액셀 페달이 온 기운을 끌어모아 차를 움직였다. 짐을 가득 실은 밴의 묵직한 무게, 거기다 저릿한 피곤함과 집에서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버무려져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하품이 끊임없이 쌓이자 눈물도 고여있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결국 1번 도로를 따라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타우포 호수를 지나는 동안 깊은 잠에 파묻히고 말았다. 1번 도로로만 가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는데, 2주 전에 막혔던 구간이 아직도 처리가 덜 끝난 모양이었다. 도로가 안내하는 대로 모르는 길로 빠졌다. 내비게이션도 새로운 최적의 경로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최적'의 경로가 이 기계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편한 길은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은 산길에서 '더욱 험한 산길'로 우리를 안내했고, 속력이 급격히 줄어들어 몸이 앞으로 기우는 바람에 잠의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난 몇 달간 어떤 차도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길이었다. 산사태로 내려온 흙더미들은 도로 곳곳에 퍼져 있었고 길 위에 나뭇잎들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었다. 나뭇가지 위로 어디선가 부러진 나뭇가지가 얹혀 있었고, 왼쪽 옆으로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절벽이 솟아 있었다. 사고를 당해 구조가 필요한 차량, 혹은 로드킬을 당한 들짐승들이 금방이라도 헤드라이트에 보일 것만 같았다. 40킬로미터 이상 속력을 내기가 곤란한 굽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비게이션 지도를 보니 자잘한 선들이 봉제선처럼 지그재그로 그려져 있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지옥의 지그재그 구간을 지나니, 이번엔 안개가 우리를 덮쳤다. 별안간 하얀 밤이 펼쳐진 것이다. 1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속력을 더욱 줄여야 했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자연 앞에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평정을 되찾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다. 운전자의 입장이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소리겠지만, 안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사태가 은근히 맘에 들었던 것이다. 창문을 열어 차가운 안개를 들이마셔 보았다. 새벽 한 시, 깊은 숲 냄새에 정신이 맑아졌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개는 지표면에서 어느 정도만 두껍게 쌓여 있었고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뚫린 하늘로 믿을 수 없이 촘촘한 은하수가 보였다.

"어?!"



 순식간에 다시 높은 나무와 산이 내 시야를 가렸다.

"여기 봐! 별이 진짜 많아!"

"이 안개에 무슨 별이 보인다고 그래."



 답답하게도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한동안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산길을 벗어나자 안개도 함께 사라졌고, 우리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수북이 쌓인 별들의 향연이었다. 불평 불만은 어디로 가고 감탄사가 연신 흘러나왔다. 구름과 안개가 종종 시야를 가렸기에 하늘이 열렸을 때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하늘이 나의 소원을 들었는지 우리 옆으로 꽤 넓은 갓길이 나왔다. 헤드라이트도, 시동도 모두 끄고 잠시 동안 자연의 선물을 만끽하기로 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별 말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땅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나는 후지필름 카메라 어플을 열어서 빠른 속도로 원격 모드로 카메라를 연결했다. 삼각대를 꺼낼 시간도 없었다. 우선은 창문에 올려 놓고 찍었다. 가장 밝게 보이는 별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가 세상의 빛을 끌어모으는 30초 동안 나도 경이로움에 완전히 빠져 있기로 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요?"



 갑자기 집 안의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억양을 한 사내의 거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 오클랜드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잠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최대한 크게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나 보다. 다만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만 전달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이번에는 두두가 대신 대답했다. 멀리서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들은 어깨에 총을 둘러 매고 있었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마지막 사진이다, 생각하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을 향해 카메라를 두었다.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을 벗어서 각도를 높였다. 재빨리 셔터 버튼을 누르고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늦은 밤 죄송합니다. 오클랜드로 가던 길에 별을 촬영하고 싶어서 잠시 멈췄어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한국 사람이에요."


"어디서 오시는 길인 가요?"


"웰링턴이요. 일을 마치고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그들에게 카메라에 은하수가 담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 맞아요. 밀키 웨이가 머리 위로 지나가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사시네요."


"우리는 여기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2주 후에 떠난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두 사람과 우리는 잠깐 동안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안전을 위해 총을 맸다뿐이지 그들은 꽤나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너무 늦은 밤이라 더 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미안해요. 좋은 밤 보내세요!"


"조심히 가요!"





 작별 인사를 건네고 차로 돌아왔다. 찍은 사진들을 몇 번이고 다시 바라보았다. 감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휴대폰에 저장된 노래 중에 밤하늘과 딱 어울릴 만한 곡을 하나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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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airaka Valley Road, Wharepapa South, New Zealand in July 2018
ⓒ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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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airaka Valley Road, Wharepapa South, New Zealand in July 2018
ⓒchaelinjane





 정신을 차릴 무렵, 더 늦기 전에 지도를 켜서 여기가 어딘지 확인했다. 와레파파 사우스(Wharepapa South). 확실히 기록하기 위해 스크린샷을 찍어두었고, 나중에 로드뷰를 이용해 우리가 멈췄던 그 집이 어딘지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남섬으로 내려가기 전, 사진 한 장을 현상해서 짧은 편지와 함께 그 집으로 보내줄 계획이다. 우리가 그날 힘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당신의 집 앞에서 축복을 받았다고. 잠깐이었지만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고. 그날 느꼈던 아름다운 감정을 담아 당신의 행복을 가득히 기원하겠다고.


 이방인의 낯선 편지가 그들에게 또 하나의 깜짝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날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가 우리 앞에 예고도 없이 펼쳐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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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u & Riri are the ones who develop each desire in each place. Dudu wants to live as a builder and Riri as a creator. Though there are a lot of different things between them, Dudu & Riri pursue the same values: living an independent life, fulfillment of a dream, learning & reading about things, living a future-oriented life, and the value of BEING TOGETHER.


목수로 살고 싶은 두두와 기록자로 살고 싶은 리리.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격도, 하고 있는 일도 다르지만 같은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삶, 꿈의 실현, 배움에 대한 애정, 미래 지향적인 삶,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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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유리 온실 탈출기
│제2화│행운의 증표
│제3화│안녕, 오클랜드!
│제4화│새로운 모험을 위한 붕붕이
│제5화│보름 동안의 변화
│제6화│첫 바다, 무리와이
│제7화│+프리미엄+ 공기의 축복
│제8화│와레 푸카푸카
│제9화│어느 심심한 가을날
│제10화│이렇게 예쁜 가을 바다
│제11화│옷 말리기 대작전
│제12화│오클랜드 아트 갤러리 산책 - 고대 유적 기록물부터 현대 미술, NZ 페미니즘 제2물결까지
│제13화│웰링턴 여행, 웰링턴 '출장'이 되다
│제14화│라글란에서 생일을 (1)
│제15화│라글란에서 생일을 (2)
│제16화│일요일의 웰링턴 산책 (1)
│제17화│일요일의 웰링턴 산책 (2)





by│@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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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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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찍은 티가 나지만,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

와....태양계가 보이는 우주 한가운데 있는것 같습니다 사진 대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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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한 점 없는 지역이라 저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태양만큼 강렬하게 담겼어요..! 두 번째 사진으로 은하수 선을 발견했는데, 한 장 더 찍을 수가 없었네요. ㅠㅠ 정말 우주같은 순간이었어요..!!

마치 소설 속 풍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시골에 살아서 별을 많이 보는데. 촬영지는 하늘에 티끌 하나 없나보군요.
무척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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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그러시군요 :-) 매일매일 좋은 기운이 감도는 집일 것 같네요 :D
저도 저렇게 티없이 투명한 밤하늘은 처음이었습니다. :) 근방에 불빛이 없는 곳이라 더 잘 보였나봐요! ㅎㅎㅎㅎㅎ

세상에...하늘이 진짜 너무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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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카님, 정말 맑은 하늘이었어요 ㅎㅎㅎㅎㅎㅎ :)) 베트남의 밤 풍경도 한 장 올려주세요!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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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밤풍경은 아쉽게도 저렇게 하늘 구경을 못하고 너무 잘 자버렸네요~

이제 남섬으로 내려가시는군요 :) 그곳에서도 좋은 인연들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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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은 겨울을 좀 더 북섬에서 보내다가 내려갈 생각이에요ㅎㅎㅎ
따뜻한 응원 감사합니다 작가님-!!!!

뜻밖에 만난 갈래길이 최적의 장소로 인도했네요.
저런 별들이 실제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넋 놓고 바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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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상한 길로 계속 가는 것 같더니 결국 이렇게 선물을 만나게 되었네요 ㅎㅎㅎ
인공 조명들이 밤하늘의 빛을 얼마나 가리는지 알게 되었어요. :))

즐거운 스팀잇 생활하시나요?
무더위야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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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님도 화이팅입니다!!!!

사진 실화입니까...
진짜 이런 사진 찍으러 다니고 싶었는데...
현실에 치여살다보니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나마 힐링하고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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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은 아닐지라도 열심히 흘리신 땀이 다 별처럼 빛나고 있을 거예요 :-)))
저도 태어나서 이렇게 우주같은 광경은 처음이었답니다- ㅎㅎㅎㅎㅎ
이 풍경이 신입사원님께 잠깐의 휴식을 선물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ㅎ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소식 잘 듣고 있습니다. 안개 너머에 별이 빛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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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빛나고 있었겠죠? :) 불안함이 걷히고 내면의 평온이 드러나는 것처럼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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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학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오네요. 달은 감정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혼의 감옥’이라고 한다. 감정에 갇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의 연원을 알고 다스릴 줄 알게 되면 다르다. 달은 ‘혼의 저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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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대한 인용구 감사합니다, 인석님! 감옥과 저택의 비유가 흥미로워요. :) 게다가 '저택'이라는 단어에서 경외감이 느껴지네요. 감정의 연원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제 평생의 목표입니다ㅎㅎㅎ 달이 찼다가 기울었다가 하는 것도 뭔가 감정을 다루는 달의 위대한 움직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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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점성학에서는 달의 움직임이 우리 감정의 움직임이라 하더군요. 감정에게 친해지는 건, 원형적 여성성을 인정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과제 같습니다.

정말 이 광경은....행운이시네요!
이런 광경을 마주할수 있다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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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급작스럽게 맞이한 선물이지만, 다음에는 치밀하게 기획된 탐험을 떠나볼까 해요. :) 온 감각의 전율을 마음껏 느껴보고, 더 세밀하게 담아내고 싶어서요ㅎㅎㅎ 감사합니다 케이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