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판관의 협상론 서문(3/3) - 개인사적 결단
- 지난번 쓴 내용을 3 part로 나누어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앞으로 쓸 일련의 협상론은 개인사적으로 내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로, 나는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로, 이것은 내가 세상에 하는 항복 선언이기도 하다. 누구는 아니겠냐만은 나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을 싫어한다. 기본적으로 사람 자체가 모가 나 있고, 나에 대한 평가는 시기마다 달랐지만 어느 시점에든 자기 주관은 지독하게 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차례 스스로를 바꾸어 왔다. 모두 강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예수를 믿으면 인생이 변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예수를 믿어서 인생이 변한 사람은, 종교를 바꾸거나 무신론자가 절대신에 의지해야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였고, 그래서 그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 받아들인 변화된 습관 중 하나가 예수를 믿는 것일 뿐이다. 나는 모태 신앙이라 그런지 예수를 떠나니 인생이 변하더라. 예수를 믿든 떠나든 그건 그림자일 뿐이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자신을 바꿀 간절한 필요가 있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지독한 나르시스트였다만 세상이 평범한 남자의 응석을 받아줄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성차별적 발언이지만 어떤 점에서 여자와는 분명 다르다. 정말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면, 그 목적이 어떻든 간에 그 여자의 자기 연민과 술 주정을 몇 시간이고 참고 들어줄 사람은 널려 있다. 내 이야기 따위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조각 미남으로 태어났다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여자나 등쳐먹고 생활비를 타먹으며 글이나 쓰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굳이 머리 싸매가며 공부해서 변호사 짓거리나 하고 있을 이유도 없겠지. 놈팽이 같은 삶이다만 그랬다면 아이 같은 예술가적 원형이 그대로 남아 어쩌면 지금쯤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조각미남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평범한 남자로서는 과하게 원하는 것이 많았다. 그저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고 언젠가 내 차례가 올 거라고 믿을만큼의 인내심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내 자아에서 탈피해 주기적으로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는 과정을 거쳤다. 보다 온전히 사회에서 수용되는 직업을 택한 것도, 법학이라는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독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도, 사람들(특히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싶어 화술을 바꾸고 남자로서는 드물게 성형수술까지 받은 것도, 힘들게 외국어를 공부해야만 했던 것도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실은 내 삶을 관통하는 코드는 자기애가 아니라 항복인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모든 것이 괜찮았다. 이십대 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싸그리 이루어 봤으니까. 학급에서 존재감 없는 학생으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예쁜 여자들의 손을 잡고 다니는 잘난 남자들을 보며 내게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단정적 결론을 내렸던 그 시점, 나는 변호사가 되어서 예쁜 여자들을 원 없이 만나는 게 삶의 목표였다. 힘들게 사귄 여자 친구를 친구들이 호평하지 않길래 그냥 예쁜 여자가 아니라 공인된 미인 대회 입상자나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모델을 사귀는 게 그 목적에 추가되었고, 카투사 시절 한국 여자들을 쉽사리 데리고 놀던 미군들을 보고 배알이 꼴려서 전 대륙의 모든 인종의 미녀들을 만나는 것이 다시 추가되었다.
사실 요즘 세상에 변호사가 되는 것과,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렇게 큰 관련은 없다. 여자들한테 어필이 잘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순수한 생각을 가진 어린 친구가 있다면, 그냥 그렇게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 말고, 당장 오늘부터 길거리에서 백 명의 여자들한테 말을 걸어보라고 조언을 할 것이다. 다만 여하간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택한 것이 인사이트 부족에 의한 헛짓거리였다는 것과 별도로, 운이 좋았던 탓에 나는 전술한 것들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가져볼 수 있었다.
해보니까 별 거 없다고 말하며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롭더라. 게다가 여하간 그 시작은 반 이상이 여자였지만, 전문직이 되어 조직에 매이지 않고도 먹고 사는 문제에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모든 욕망의 성취에는 역치라는 것이 있다. 일단 지난 시절 이룬 것들은, 이제는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게임을 잘 하는 친구가 또래 집단의 우상이지만, 나이가 먹으면 당연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살면서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것들은 내 허세 넘치는 말과 뒤섞여 지금까지는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로 통용되어 왔는지 모른다만 앞으로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졸업한 대학을 진학한다는 것은 머리가 좋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게다가 난 그 SKY 출신조차도 아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어린 남자가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도 그렇다. 변호사가 되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많은 미인들을 만나보는 것은 조금은 더 어렵지만 이 역시도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일이라 말할 수는 없다.
내가 무언가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불편해 이루지 않는다면 마치 바울의 가시마냥 자기 삶을 계속 찌를 게 너무나 명백하게 보인다면, 또한 그것이 지금까지 이루었던 평범의 단계를 벗어나 있다면 비록 최종 결착은 포기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스스로에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어쨌든 시도는 해보아야 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나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욕망에서 해방되었던 그 행복했던 몇 년이 이제 완전히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시점에, 다시 세상에 나를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결론 하에 이 협상론을 쓰는 바이다. 즉 남이 아니라 나를 계도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스스로를 다르다고 백 번 말해봤자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 같은 부류의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성공의 방정식이 없다.
나는 작년의 치명적 실패를 복기하며 지난 달 협상과 관련된 5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다음 달에 다시 그 정도 분량의 책을 읽을 생각이다. 이 쟁점에 있어서는 100권의 책을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다.
물론 책 수십 권 읽었다고 내가 협상의 달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남들 이상의 것을 얻는 데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노력보다도 타고난 그릇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공자는 생이지지지(生而知之者)가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타니 쇼헤이나 김연아 같이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이룬 이들은 보통 선험적으로 겸손하다. 그릇이 크다는 것은 아마 그런 의미일 것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덕이 부족한 사람으로, 아마 이 한 마디가 내 모든 단점을 서술하기에 가장 적합할 듯 싶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조차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적 없는 감정과 언행으로 실패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실은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장르는 끈덕진 협상과는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결국은 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또 다른 실패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별 수 없다. 누군가는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로 나갈 때 먹방을 찍으며 두툼한 배를 잡고 맛집 포스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도 분명 가치 있는 장르니까. 하지만 호기심 많은 나 같은 인간이라면 헬스 클럽에서 몇 달 땀이라도 흘려보지 않으면 영원히 그 잡지의 화려한 모델을 쳐다보게 될 수 밖에 없을테니.
이것이 내 협상론의 동기이자 서문이다.
이십대 관련 내용 얘기네요.정성글에는 추천!
보팅 감사합니다~!! ㅋㅋㅋ
이 쟁점에 있어서는 100권의 책을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다.
님의 위 글때문에 내가 실제의 내 위치와 상관 없이 '내가 내 의지나 의도와 상관 없이 혼돈의 도가니 안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나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Nice post. Doesn't look like you are getting the votes you deserve though. You should check out steemeng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