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Thumbs Up 플레이리스트 #11 > 클래식 첫걸음

in #kr6 years ago

저번 주는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만큼은 푹 쉬고 싶었어요. 음악을 듣고 싶긴 한데, 평소에 듣는 음악을 틀면 금방 머리가 아파졌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동안은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작게 틀어 놓았어요.

첫날에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곡들이 들렸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적어도 한두 곡씩은 처음 만나는 곡들이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런 곡들은 작품 이름을 열심히 받아 적고 한참을 돌려 들었습니다.

클래식은 예전부터 들으려 노력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클래식 피아노를 잠깐 배운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연습하는 곡들이 와닿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클래식이라 하면 라벨, 드뷔시, 사티의 음악만 주구장창 들었는데요. 저번 주 그 라디오 채널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클래식에 깊은 흥미가 생기게 되었어요!


제가 느끼는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은 악보를 바로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듣는 이 곡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악보를 찾아볼 수 있어요. 그렇게 악보를 보게 되면, 자연스레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올릴 곡들은 모두 제가 (한 번이라도) 연습했던, 또는 연습하고 있는 곡들이에요.

아직 작품명도, 작품도 모두 낯설어 다양한 연주까지 찾아 듣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들었을 때 좋았던 연주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유튜브에서 곡 링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네요ㅠㅠ)

Thumbs Up 플레이리스트뒤에 이어지는 클래식 첫걸음이라는 제목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더 저렇게 지어보고 싶었습니다. 한낮의 클래식 산책이라거나, 클래식 나들이 같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요. 클래식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요. ㅎㅎ


< Martha Argerich, Mischa Maisky - Franck - Cello Sonata in A Major, FWV 8: I. Allegretto ben moderato >

이 곡이 제 귀에 들어온 건 깊은 첼로 음색 때문입니다. 첼로가 나오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고요. 이 곡을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손으로 멜로디의 흐름을 가볍게 지휘해보게 됩니다. 지휘라는 말보단 손짓이 더 맞는 것도 같지만, 어쨌건 몸을 가만둘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화성과 연주입니다.

첼로 선율 뒤에 이어지는 피아노 아르페지오 연주도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네요. 이 곡은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나요?

이 곡의 악보에는 Dolcissimo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주 달콤하게, 아주 부드럽게 라는 뜻을 가진 음악 용어래요. 으악! 이거 보고도 너무 좋았어요. 아주아주 달콤하고, 아주아주 부드러운 곡입니다.


< Edvard Grieg - Sonata No. 3: II. Allegretto espressivo alla romanza >

앞의 곡은 첼로 선율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이 곡은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이 전부였습니다. 이 곡을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지면서 머리까지 저릿저릿한 전기가 흐릅니다.

이 곡은 바이올린의 여러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바이올린을 떠올리면 고음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요. 이 곡은 낮은 음역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됩니다. 그때의 바이올린의 음색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또 곡의 중간에선 피아노가 멜로디를 연주할 때 바이올린이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하는데, 곡과 정말 잘 어울려요! 곡이 끝날 땐 아주아주 높은 음도 내는데요. 그때엔 마치 제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천국이 있다면, 정말 그곳에 가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 곡을 연습할 때는, 자연스레 바이올린 선율을 흥얼거리게 됩니다. 그러면 제 광대도 같이 하늘까지 올라갈 것 같아요.


< Krystian Zimerman - Chopin -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

이 곡은 추억이 있는 곡입니다. 제가 쓰던 연습실은 클래식/실용음악 전공자들이 함께 쓰는 곳이었는데, 벽 너머 이 곡을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곡이 너무 아름다워 연습을 멈추고 벽에 귀를 기울이고 하염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이 곡이 무슨 곡인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벽 너머로 들리는 연주를 급하게 카피했어요. 후에 SoundHound 앱을 이용해 이 곡의 제목을 알아냈습니다.

이 곡만큼은 정말 다양한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봤는데, 그때 그 연습실 벽에서 흘러나오던 투박한 연주만큼 좋은 게 없네요. 그때 이 곡이 견딜 수 없이 좋았던 건, 모르는 이가 반복해서 연습하던 그 한 부분이 정말 좋았기 때문인데요. 그 부분은 어디일까요? (곡에서 무척 많이 반복되는 부분입니다)


< Claudio Arrau - Beethoven - Piano Sonata No. 32 in C Minor, Op. 111: II. 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

이곡은 제가 어제! 주절주절 일요일기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곡입니다! 무려 19분에 달하는 긴 곡입니다. 집중력이 부족한 제게 이런 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하면, 저는 악보를 보면서 곡을 듣습니다. 악보를 쫓아가다 보면 긴 시간도 금세 지나가 있어요.

이 곡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곡은 앞선 세 곡과는 느낌이 달랐어요. 저는 이 곡을 들으면서 격이 다른 아름다움을 느꼈고, 조금 더 과장해보자면 숭고를 느꼈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예술철학 수업을 듣곤 했었는데, 정말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나면 그때 배운 내용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어떻게 제가 감히 설명도 할 수 없는 곡이에요.

제가 들었던 연주는 Claudio Arrau의 연주였는데, 듣는 내내 느껴지는 연주자의 섬세한 호흡 때문에 제가 다 괴로웠습니다. 특히 앞부분은 템포가 아주 느린데요. 그 연주를 따라가다 보니 저도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심장이 터질 것도 같았고요. 이 곡은 제가 들은 버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연주자의 연주를 올리고 싶어 겨우겨우 찾았습니다.

이 곡을 통해서 Arietta라는 말도 처음 알게 됐는데요. 아리에타는 규모가 작은 아리아를 뜻한다고 하네요. 이 곡으로 알게 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아리에타라는 단어도 이 곡처럼 아름다운 단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아름답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곡들을 쭉 보니 제 취향이 참 확고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피아노가 나오는 느리고 아름다운 곡들을 사랑합니다. 물론 모든 음악은 아름답지만, 제게는 이런 서정적인 선율이 특히 더 마음 깊이 와닿는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죄다 또 피아노곡이 돼버렸네요. 클래식 첫걸음을 이제 막 뗀것도 같은데, 좀 열심히 공부해서 클래식 만 걸음까지 가보고 싶어요.

전문적인 설명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 배경 지식 없이 곡을 먼저 연습해보고 싶어서, 또 제가 좋으려고, 전문적 지식 없이 저만의 글을 써버렸습니다. 그래도 쓰고 보니 모두 늦은 밤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중언부언했지만, 그래도 곡만큼은 정말 아름다우니 꼭 한 번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1번부터 차례대로, 제가 연습했던(하고있는) 위에 올린 곡들의 악보입니다!

1. 글을 찾다 보니 나의 Thumbs Up 플레이리스트의 저번 글이 두 달 전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에게 잊혔을 작곡가가 들려주는 쉬운 음악이야기는 얼마나 밀렸을지! 부끄러움이 마구마구 밀려오네요. 이제 시리즈물이 되긴 그른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젠간 꼭 올릴게요(!)

2. 경아(@kyunga)님께서 선물해주신 한손(@onehand)님의 엽서와 스티커가 며칠 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어요. 꼭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저도 답할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이 글을 쓰는 중에 한여름 밤의 도라지 위스키 결과 발표가 났네요! @garden.park님, @peterchung님, @bookkepper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분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도 이제 다른 글들 보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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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 뜸뿍 포스팅이네요.

곡들은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어요!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밤이라 내일 일하면서 들어봐야 겠습니다.^^

잘 들어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지금 다시 하나씩 찬찬히 들어보고 있어요. 늦은 저녁에 들어도 좋네요.

나루님의 연주가 갈수록 궁금해지네요!ㅋㅋ 저는 1번음악이 좋네용. 왜인지 모르겠지만 현악기들의 연주를 들을때 머리가 힐링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피아노와도 잘어울리네요. 둘다 주인공인듯한 느낌ㅋ(이렇게밖에 표현못해 죄송...)

궁금해지신다니 저는 점점 도망가고 싶어지네요. ㅋㅋㅋ 저도 피아노 다음으로 현악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둘 다 주인공인듯한 느낌

해주신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흐음... 아라우 군요. virtuoso라는 말이 어울리는 몇안되는 연주자죠. 오랜만에 들으니 참 좋네요 ^^

Arrau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라우라고 하시니 괜히 더욱 반갑고 친숙한 느낌이 드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들었는데 거장이셨군요.

종종 좋은 곡들 추천해주세요! 이것저것 들어보고 싶어요:)

악보를 보신다는 글에서 놀랍니다. 악보를 전혀 못보는 히마판! 음악은 아주 좋아하는 히마판!

히마판님! 오랜만이네요. 악보쟁이니 악보 정도는 봐야겠지요. ㅠㅠ 원래 들어서 좋으면 그게 최고인 거죠:)

듣고 부르고 좋아합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니 여기가 천국인가 싶네요. ^^'

최고의 찬사를 남겨주셨네요! 기분이 좋아서 실실거리며 웃고 있답니다. 잘 들어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엽서가 잘 도착했다니 다행입니다. :D

예쁘게 잘 도착했어요. 감사합니다:)

서정적인 소나타 류를 좋아하시는군요!

제이미님.... 제이미님! 괜히 한번 불러보고 싶었어요.ㅋㅋㅋ 잘 지내시죠? 서정적인 소나타 류 몇 개만 추천해주셔요!!

전 사실 소나타를 잘 안 듣는데, 슈베르트, 쇼팽, 스크랴빈 소나타들 중에서 맘에 드시는거 여럿 있을 것 같아요. 한번 넘기면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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