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 나들이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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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 때문에 홍대에 가던 길. 갑작스레 취소 연락을 받았다. 이미 지하철 안이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합정에 있는 지인의 가게에 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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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는 갈 때마다 번잡스러운 느낌이 든다. 별다른 일 없이 거리를 걷기만 해도 금방 피로해진다. 반면 합정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은 푸르고.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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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가는 길엔 카페가 참 많았다. 카페 앤트러사이트도 지나쳤다. 예쁘게 차려입은,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쇼윈도에 비친 내 추레한 차림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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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전인 지인의 가게에 도착했다. 일전에 내게 카메라를 빌려줬던 사람이다. 내게 빌려줬던 그 카메라로 사업을 시작한다.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아직 오픈 전이라 가게는 엉망진창이고, 나는 그런 사적인 공간을 보는 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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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다육식물을 선물해주었다.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두고 나오려다, 그냥 고맙게 받았다. 새로운 룸메이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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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마무리할 일이 있다고 해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한쪽은 책들로, 다른 쪽 벽은 음반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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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킹 크림슨의 강렬한 표지에 눈이 갔지만, 옆에 있는 마이크 올드필드 음반이 더 반가웠다.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반이다. 이 음반이 있는 곳은 어디든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 카페도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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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는 재즈 음반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카페 사장님께 직접 듣는 음반이냐고 여쭤봤다. 직접 고른 음반이라고 했다. 괜한 친밀감이 들었지만, 묘한 거리감도 함께 들었다.

언제부턴가 취향이 같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왠지 나를 내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인데, 별 걸 다 신경 쓴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게 뭐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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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드립이 맛있다는 말에 홀려 드립 커피를 시켰다. 원두는 내가 좋아하는 과테말라. 커피 맛은 무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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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끝난 지인과 망원 한강공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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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서울에 산 지 고작 2년 밖에 안되었다. 한강은 아직 내게 낯설다. 해지는 한강을 보고 있으니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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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나뭇잎을 한참 보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합주가 취소된 덕에 뜻밖의 알찬 하루를 보냈다. '가끔은 이유 없이 집 밖으로 나와야지. 이런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지' 생각뿐일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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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간도 좋네요.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져다주니..ㅎ

뜻하지 않은 선물같은 하루였어요.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 별 것 아닌데 일상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네요. 새로운 곳을 가서 더욱 반갑고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도 홍대보단 합정이나 상수쪽이 조용해서 좋더라구요^^
노을 지는 풍경도 멋지네요
왜 노을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드는건지...
오늘 하루는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덕분에
행복한 하루였네요^^
편한밤 되세요~

그러게요. 걷는 내내 노을이 점점 짙어지는데 애틋하고 아련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요즘같은 날씨가 계속 이어지면 좋을텐데 얼마 안가 무더위가 찾아 오겠지요. 좋은 때가 지나기 전에 더 자주 나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사진이 너무 감성적이게 찍혀서 저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었네요 ㅎㅎ
정말 가끔은 이유없이 밖을 걸어본다던가
이유없이 미술관을 가본다던가
이유없이 흘러가는데로 잘 받아 들여보는 것도 좋은 기회인 것같습니다.
0.01 이라도 들어가야 되는데 보팅파워가 없어서 댓글만 달고갑니다..죄송합니다~

ㅎㅎ 그런 말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일상의 기록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감성적인 하루였던 것도 같네요. 이유 없이 미술관을 가본 게 언제인지, 이유가 있어도 가지 않는데 말이죠 ㅎㅎ 조만간 한 번 출사 겸 나들이나 가볼까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세요:)

ㅎㅎ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꼭 보답하겠습니다.
한주의 시작인데 날씨가 매우 화창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고 점심 맛있는거 드세요~~

사진, 참 좋네요.
서울의 매력을 잘 잡아내신 것 같아요.

서울의 상징은 역시 한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한강에 갈 때마다 특히 더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잘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버스 안에서 보는 한강의 노을도 참 예쁜데, 이 날은 두 눈으로 보니 더 좋더라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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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 사람... 사진도 잘 찍네. 나는 왜 그걸 이제서야 발견했을까?

ㅋㅋㅋㅋㅋㅋ 번호 일기를 추가해주셨군요(!) 예전부터 사진 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겸사겸사 번호 일기 형식으로 올려봤습니다. 앞으로 글감이 없으면 카메라를 들고 어디라도 가야할까봐요 ㅎㅎ

뜻밖의 여유가 생길 때가 있지요. 그럴 때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건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소에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드셨나봐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할 때 선뜻 만나주는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을텐데 말이죠~!!

맞아요. 실은 지인 덕분에 이 모든 하루가 시작되고 끝났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픈 준비 중이라 항상 가게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바쁜 시기에 시간 내줘서 여유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보니 큰 축복이네요 ㅎㅎ

전화위복이랄까요. 의미있는 시간이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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