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무대] 나의 빅밴드 극복기

in #kr6 years ago


< Jaco Pastorius - The Chicken >

회사에 포트폴리오를 보내던 중 이 노래가 나왔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때'로 돌아가게 되었는데요.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 글까지 남기게 되었습니다.

Jaco Pastorius는 전설적인 베이시스트입니다. 그중에서도 자코의 곡 치킨 은 칙 코리아의 스페인과 더불어 실용음악 전공자들에겐 마치 교과서 같은... 정말 많이 듣고, 모두가 아는 곡입니다.


저의 모교에는 빅밴드 합주 수업 이 있었습니다. 빅밴드는 이름 그대로 사람이 많은 밴드인데요. 보통 빅밴드를 얘기할 때는 관악이 많은, 혹은 관악이 주가 되는 밴드인 경우가 많습니다. 편곡에 관심이 많던 저는 늘 이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작곡 전공은 거의 듣지 않던 수업이었어요. 2학년 때 용기 내 외국인 교수님께 (한국말로) 수업을 듣고 싶다고 문자를 남겼다가 답장도 못 받고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빅밴드를 잊고 있다 졸업 학기가 돼서야(나름 고참이 됐다는 생각에) 빅밴드 수업을 신청하고, 듣게 되었어요.

그 무렵 원래 수업을 맡던 교수님이 해외로 돌아가시고, 새로운 교수님께서 수업을 맡게 됐습니다. 관악기 연주자인 교수님은 작곡을 전공하셨는데요. 그래서인지 작곡 전공을 많이 신경써 주셨습니다. 그간 빅밴드 수업에서 작곡 파트는 그냥 참관하는 정도였는데, 교수님이 바뀌면서 작곡에게 매주 무시무시한 과제들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지만 과제들을 따라가기가 버거웠습니다. 관악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악기개론도 전혀 몰랐던 지라 매일 혼나는 것이 일상이어었어요. 수업 시작엔 무조건 작곡 전공의 과제를 검사합니다. 수업을 듣는 모든 사람 앞에서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주 과제는 Charlie Parker의 곡 Confirmation 섹소폰 솔로를 만들어가는 것이었어요. 피아노 솔로도 힘든데 관악기 솔로라니. Charlie Parker는 물론이고 Zoot Sims, Cliff Jordan, Dexter Gordon의 솔로까지 카피하면서 열심히 솔로를 만들어갔습니다. 수업 시작과 함께 섹소폰 선배가 제 솔로를 연주해주었는데요. 음역도 잘 안 맞고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솔로가 나오더군요. 대차게 혼나고 시무룩해 하는 제게 선배가 다가와 제 솔로를 관악기 연주자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고쳐줬습니다. 그때의 감동이란.... 그때부터는 귀찮다 싶을 정도로 관악기 주자들을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수업 종강이 다가오면서 점차 과제의 양도, 난이도도 올라갔는데요.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음악을 듣고 카피해 직접 빅밴드 풀스코어를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너무 하기 싫어서 처음으로 과제를 안 해갔어요. 안 해가면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 주에 해오라고 하셔서 결국 했습니다. 결과는 폭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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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아닌 벌로 총보 사보를 했습니다. 이게 그중 한 장인데요. 약 20장 정도 되는 거대한 분량. 그때는 프로그램이 익숙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라 정말 뜬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악보를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은 흐르고,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종강만을 앞둔 상황이었어요. 교수님께서는 대뜸 작곡보고 지휘를 시키시더군요. 한 학기 내내 듣고 공부했던 곡인데 막상 지휘하려니 완전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작곡 전공 모두 아주 말아먹었지만... 그나마 덜 말아먹은 제가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어요. 그 곡이 바로 자코의 치킨입니다.

그때부터 때아닌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쟤네 숨 못 쉬어 죽게 만들 거냐는 교수님의 불호령이 계속 맴돌았어요. 제가 사인을 제대로 주지 못하면 계속 악기를 불고 있어야 하니까요. ㅠㅠ 지휘를 배워본 적도 없을뿐더러, 제 손끝에 무대의 흥망이 달려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말 불안했습니다. 교수님이 지휘하는 모습을 찍어서 집에서 따라 해보곤 했습니다. 그래도 연습 때만 되면 맘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특히나 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이 어찌나 부담되던지요. 마지막 연습 때까지도 불안불안 위태로운 합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저번 글에도 썼던 것 같은데요...)


그리고,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급하게 무대에 올라오는 모습 하며...
휘휘 손을 내젓는 모습 하며....
교수님을 흉내 내는 정체불명의 손짓까지...
모든 것이 다 절망스럽습니다.

망설이면서도 이 영상을 올린 것은 연주자들의 멋진 연주 때문입니다. 영상을 다시 보니 제가 연주자들에게 기대 지휘했던 것 같아요. 부족한 저를 봐주던 연주자들의 눈빛이 이제서야 보이네요. 이 연주의 유일한 오점이 저지만, 그래도 다시 보니 반가운 얼굴들과 흥겨운 음악에 몸을 들썩이게 돼 즐겁습니다. 살면서 돌아가고 싶은 때가 많지 않습니다만, 이때론 한 번쯤은 돌아가 보고 싶네요. 그럼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아쉬움이 있으니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족함 많지만,
저희가 만든 치킨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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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저 악보가 진짜.... 듣고 따내신 거라면 대단하십니다.... 근데 연주자 분들도 그렇고 지휘도 잘하시는거 같습니다... 제가 음알못이라 그런걸수도 있지만요

아 저 악보는 기존에 있는 스코어를 옮겨적었어요! 필사같은 개념이랄까요?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제 큰애도 고등학교 빅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성인 빅밴드라 역시 다르군요. 저희 애가 작곡할 프로그램을 찾던데 그런 프로그램도 가격이 만만치 않더군요. 하시는쪽일이 저희 애가 가려고 하는 길과 비슷해서 관심이 많이 가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작곡 프로그램 / 악보 프로그램이 다른데요.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죠ㅠㅠ 크랙 버전(불법다운로드)을 쓰거나, 요즘은 월 정기구독도 많이해요! 저는 월 정기구독으로 이용하고 있답니다. 구매하지 않아도 되니 한두달 정도 결제해서 써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요?!

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오~ 저는 처음 듣는곡이지만 뭔가 신이 나네요!

네! 꽤 유명한 곡이랍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훌륭 하십니다~~
좋은 추억이지요^^

아 치킨을 연주할 때 중간중간 빈번하게 나올주밖에 없는 1.2.3.4.카운트의 소중함이란...
가끔 정신 줄 놓고 있으면 빠밤빰빰 빠빠밤 빠! 뒤에 4마디를 놓치게되더라구요 특히나 솔로연주중에말이죠 ㅎㅎ

뭐 귀에는 뭐만 들린다고...저는 테너색소폰 소리보다 스크리밍하는 트럼펫소리가 제 취향이네요~
덕분에 신나게 잘들었습니다. 전 나팔로 언제쯤 저정도 합주를 할주 있을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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