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잠결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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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고대하던(?) 워터파크 방문 날이다. 주말에도, 어제도 작업을 하나도 못 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동생과 동생 남자친구가 들이닥쳐 또 작업을 못 했다. 내일도 당연히 작업을 못 하기 때문에, 애들을 밖에 보내 놓고 부랴부랴 작업을 마쳤다.

저번 주 지인에게서 독주회 반주를 부탁받았다. 몇 년 전에 내가 편곡한 레퍼토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편곡이 독자적이긴 하고, 그렇다 보니 그 편곡은 나 말고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얼마 전 악보를 다량 버리면서 그 편곡 악보도 함께 버렸는데, 이 곡을 또 하게 돼 난감했다. PDF 파일엔 적어두지 않은 중요한 포인트가 여럿 있다. 악보를 버리면서는 다신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 생각대로 되진 않는구나.

내가 반주자가 된 건 그 편곡 버전이 이유일 것이다. 지인과는 전에 여러번 그 편곡으로 공연했던 기억이 있다. 공연 레퍼토리는 그 곡 말고도 다른 곡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연습했던 곡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하기로 했다.


오늘 지인에게서 악보를 받았는데, 악보를 뽑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러 곡 중 하나가 내가 자주 연주했던 곡과 한 글자만 다른, 전혀 다른 곡이라는 걸...

악보를 보자마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알같이, 빼곡히 적혀있는 악보를 보니 현기증이 났다. '왜 미리 악보를 챙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왜 곡을 착각했지?'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겨우 3주 남짓 남았는데, 이 곡을 소화하려면 기량을 한창 연주하던 때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해도 될 지 안 될 지 알 수 없다.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 꾸역꾸역 해보기로 했다.

미루고 미루다 합주 전날 악보를 보고 밤새 연습했던 기억,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운 곡을 팔이 빠져라 연습해 무대에 올렸던 기억이 몇 있다. 바쁜 시기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러면 그다음 포기가 쉬워질까 봐 또 이를 악문다. 불안함 때문에 다시 손톱을 깨물면서도, 성취의 기억으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던 공연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서, 다른 공연까지도, 당장 내 삶까지도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워터파크 가기 전날 이 사실을 알게 되다니... 내일 돌아와서는 어떻게든 연습을 하겠지만,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돼 뻗어버릴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곡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까지는, 그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것 같다. 악보를 보고 공연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것은 공연장 피아노가 무엇이냐 물어보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랜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습 시간을 미리 확보하려 캘린더를 열었다가, 크게 적혀있는 이사 일정을 보게 됐다. 또 우울해진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작업이나 공연과 관련된 대화였는데, 그게 무척 즐거웠다. 다시 또 바빠지니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어딘가에 가야 하고, 미리 연습하고 짐을 챙겨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은 버겁지만, 예전보다는 한결 수월해진 기분이다.

밥 사주겠다는 말에 약속 일정을 먼저 잡는, 그런 여유도 생긴 것이다.


< Kenny Barron & Dave Holland - The Art of Conversation >

오늘은 종일 이 앨범을 들었다. 적당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그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재생하곤 했지만, 꽤 오랜 기간 듣던 곡이 앨범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앨범도 그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피아노 연주를 듣자마자 앨범을 꺼내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학생들과 오늘 연락했던 피아니스트에게 이 링크를 보내주었다.

당분간은 스팀잇에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할 것 같다. 바빠도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남아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너무 졸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얼른 자고, 내일 오후까지만 놀고, 내일 저녁부터는 전투 모드로 피아노와 마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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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했던 일들이 꼬여 버렸군요.
준비 잘 해서 반주 무사히 마치세요.

요즘같은 가을 날씨에 듣기 어울리는 곡이네요:]

나루님은 잘 해내실거라 믿습니다.
지금쯤이면 워터파크에서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누우셨을려나요?^^
아님 열심히 피아노 연습^^
잘생긴 친구가 왔는지 궁금하네요 ㅎ

워터파크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독주회 잘 마치시고 편안하게 돌아오시기를 기도할께요.

이런 멋진 분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네요ㅎㅎ a로 시작해서 방금 팔로워보다가 이제깨달았습니다. 연주하신거 들어볼 수 있는 곳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건강하시고 종종 글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gomdory도 가입시켜놓을게요ㅎㅎ 곰돌이의 가입인사 받고 싶으시면 직접 여기에 아무 댓글 써주시면 됩니다. 소중한 댓글을 살려주는 우리 gomdory 곰돌이를 소개합니다.

ps.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피아노를 보니 반성이 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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