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오버워치 리그, 필라델피아 퓨전과 알람

in #kr4 years ago (edited)

얼마 전부터 오버워치 리그 2021 시즌을 개막전부터 차례로 보고 있다. 윈도우 PC가 없어 오버워치를 못 한지가 꽤 됐고, 5월 6일이라는 구체적인 2022 시즌 개막 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멀게 느껴지는 리그 개막을 기다리며 복습을 해둘 생각이었다.

이번 오버워치 리그는 몇 년째 나온다는 말만 무성했던 오버워치2로 진행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블리자드를 인수한 후에 진행되는 리그라 꺼져가는 불씨에 일말의 희망이 다시 찾아온 기분이 든다. 작년 2021 시즌을 보면서 망할대로 망해버린 운영(리그로도, 게임으로도)을 보면서 다음 시즌까지는 리그가 열린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1년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물론 그사이 끔찍한 일이 블리자드 내부에서 벌어졌지만, 어쩐지 마소가 잘 해결해주겠지-라는 안일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어제 자기 전 짧게 본 경기의 대전은 필라델피아 퓨전과 서울 다이너스티였다. 필라델피아 퓨전은 저번 시즌 내가 가장 강력하게 응원했던 팀이고, 서울 다이너스티는 리그에 유일한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이라(또 오버워치 전성기 시절의 루나틱하이를 계승한 팀이라) 애정을 갖고 있었다. 대진표를 보고는 재밌겠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한 채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 시작도 전에 당황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캠에 잡힌 필라델피아 퓨전 선수 속에서 힐러 Alarm(알람)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알람은 작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스물한 살의 나이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도 느껴졌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도 종일 멍했지만, 화면 속 알람의 얼굴을 본 어제 저녁에서야 나는 그의 죽음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경기를 끌까 했지만, 예정대로 보기로 했다.

경기에는 집중할 수 없었다. 그가 왜 죽었는지,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사인은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럴 때에는 자살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나는 자살이 아닌 사고이기를 바랐다. 물론 어떤 것이든 죽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만.


경기 속 알람은 뛰어났다. 힐러인데도 한타를 이기는 단독 킬을 내기도 했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플레이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나는 알람이 슈퍼 플레이를 할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졌고, 반대로 그가 상대 선수의 플레이에 죽을 때면 더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가 왜 죽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가 보고 겪은 삶의 꽤 많은 부분이 모니터 속 세상이 아니었을까라고. 그랬더니 너무 억울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죽다니.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서. 선수를 하지 않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이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세상인데.

하지만 그 생각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죽었고, 영원히 21살로 남게 되었다.


2021년 필라델피아 퓨전은 초반에 강세를 보였지만, 결국 하위권의 성적으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나는 필라델피아 퓨전의 팬이었기에 그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봐야 할 2021 오버워치 리그의 경기는 약 200개 정도가 된다. 당연히 다 보지 못하고 2022 리그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알람이 활약하는, 필라델피아 퓨전이 자주 이기던 때의 경기까지만 보게 될 확률이 높다.


글쎄. 앞으로 블리자드가, 오버워치가, 오버워치2가, 오버워치 리그가 어떻게 흘러갈까. 나는 이 게임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러면서 사랑하게 되었다.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 오버워치를 보면서 어쩌면 오버워치1로 진행된 마지막 시즌인 2021 리그를 추억하며 오래 이 경기들을 꺼내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200개가 넘는 경기를 다 볼 테고, 어쩌면 그 경기를 또 처음부터 다시 훑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기는 알람을 보고, 때로는 지는 알람을 보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겠지만, 피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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