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심란 : 낭만의 과거형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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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집에서 나오던 날이 5월 14일이었으니 이제 8주 차가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집을 나왔던 것일까.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불편해진 것이 현실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자유로워졌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였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눈치를 상당히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물론 한국인 대부분이라면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인지 간섭인지 알 수 없는 부담스러운 관심 속에 괜스레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가 많았다. 감시 카메라에 둘러싸인 기분이랄까.

    집을 나온 당일에 작성했던 글([잡담] 가출? 출가?)에서는 뭔가를 결심한 듯한 아들과 그것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포장되어있다. 내가 의도한 부분도 있겠지만 스팀잇이라는 플랫폼이 모든 것을 드러내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사실상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는 집을 나가라는 간접적인 압박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아버지의 진심이었는지 단순히 겁을 주려는 목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수험생활로 인해 쌓여있던 무언가를 크게 자극하는 말이었다. 애초에 내가 원해서 시작했던 것이 아닌 만큼 응원해주는 사람마저 없다면 더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을 나온 이후로는 동생을 통해서 가끔 집안 소식을 듣고 있다. 부모님께서 크게 다투셨고 냉전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동생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오랫동안 부모님 사이에 쌓이고 쌓인 감정의 문제를 우리가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1주 혹은 2주 간격으로 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신다. 나는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오늘도 문자가 도착했고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그동안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모범생의 아들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내 몸뚱이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이 세상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단다." 아버지께서 지겹게 하시던 말씀이다. 그럴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나중이라는 것은 언제를 말하는 것이며, 그때에도 지금만큼 의욕이 샘솟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나중이라는 그때에는 또 다른 것이 하고 싶을 텐데 말이다.

    '낭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그 시절, 현실에 얽매였던 것에 대한 반항심과 그리움이 쌓인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임이 분명하다. 인생의 굴곡이 클수록 낭만의 깊이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과거의 잊지 못할 경험들은 뒤늦게 선심 쓰듯 '낭만'이라는 것을 던져준다.

    오늘의 '나'는 상당히 심란하다. 매일 몽상에 잠겨 현실을 외면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 한 통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뜬다. 낭만? 그것은 감정의 폭주를 막기 위한 방어구에 불과하다. 그렇게 감성적인 단어들로 포장하지 않으면 너무나 고통스러울 테니까. 심란했던 오늘이 내일은 낭만으로 탈바꿈한다.

    한때 인기 열풍이던 '마시멜로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어버린 아이가 된 기분이다. 최상급의 드라마틱한 낭만을 얻기 위해서는 나중을 기약하고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 성공을 위해서 욕구의 충족을 미루는 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연 평소에 누리지 못했던 사람이 나중에라도 성공(혹은 행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 나는 비록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었더라도 나중에 다시 마시멜로를 당당히 요구하는 아이가 되고 싶다. 누군가가 먹지 않고 남겨둔 마시멜로는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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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만 탐내는 아이는 철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1인!
참을 줄은 알되 계속 참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적절한 타이밍(본인이 판단한)~
그런 의미에서 응원합니당~ 인생은 스스로 사는 거니까요~
(부모님이라고 저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

움.... 글을 읽으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는 정말 후회할거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그럴수도 있겟다싶으면서...

뭐 후에 말씀하시던 인생의 굴곡이 클수록 낭만의 깊이가 더욱 깊어진다는건 사람마다 좀 다른거같네요..ㅋㅋ
저도 인생의 굴곡이 그 누구보다 절대 안깊지 않은데 ,
낭만보다 현실을 마주하게되더라구요

모두다 이해할 수 없고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한손님의 선택이 옳았다는 결론이 될 수 있기를
늘 응원할께요~!!^^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다만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면 됩니다.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세요.한손님을 응원합니다!!

그때는그게 최선이었다는 말이있잖아요 나중에 마시멜로를 요구하는 당신응원합니다

언제가는 다시 좋아지리라 기대합니다. 앞으로 좋은 일 가득하시기를~`

굴곡의 깊이만큼 포장되는 낭만의 깊이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덤덤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선가 자식은 활시위를 떠난 활과도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안타깝고 또한 어려우시겠지만 스스로의 삶을 정확히 명중하시리라 믿습니다. 응원할게요!

아픔이 시간이 지난다고 낭만이 되지는 않을겁니다. 과거형의 낭만과 추억이란 게 결국 현실의 반영일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상처를 어느정도 치유하고 나면 그때는 어떤 낭만적인 추억이 떠오를 수 있겠죠..

가출?출가?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앞으로도 한손님의 앞날에 꽃길만 있길 빌겠습니다~ 아무쪼록 한손님께도 부모님들께도 즐거운 미래가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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