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내 인생, 반짝 반짝 빛났던 커피 이야기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발달러 가나입니다!
@marginshort 님께서 주최하시는 백일장에 저도 한 번 참여해보려구요!ㅎㅎ
제 2회 백일장 개최 - KR이 함께 만드는 백일장!
(https://steemit.com/kr/@marginshort/2-kr)

marginshot님께서 정해주신 4가지 주제 중 저는 내 인생에 가장 빛났던 순간에 대해
글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언젠가 얘기해보고 싶었던 커피에 빠지게 된 계기와도 닿아 있는 주제이기도 하네요.
커피덕후아니랄까봐...
제 인생에서는 커피를 빼면 반이 사라질 정도인데요..
그만큼 커피가 저에게 많은 행복감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때는 가나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바로 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하셔서, 저는 낮 시간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외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식후에 커피 1스푼, 프림 2스푼, 설탕 2스푼을 넣은 따뜻한 커피를 꼭 드셨습니다. 세상 궁금한 게 많았던 꼬꼬마 시절의 가나는 할아버지께서 늘 드시는 달달한 냄새가 나는 황토색의 물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쇼파에 앉으셔서 뜨뜻한 커피를 즐기시던 할아버지 옆에 쪼르르 가서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곤 했죠. 그런 제가 귀여우셨던 할아버지께서는 때때로 티스푼으로 커피를 조금 떠서 제 입에 넣어주시곤 하셨습니다. 따끈따끈한 스푼을 쪽- 빨면 입 안 가득 느껴지던 달달함과 쌉쌀한 뒷 맛! 제 생의 첫 커피 맛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가나의 초자아는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하는 일을 좀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어머니께서는 커피는 어른들이 마시는 거야. 어린이들은 마시면 안 돼. 키 안 큰다, 가나야. 얼굴도 까매진데이. 하셨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던 저는 커피는 안 돼 하며 잠시 커피를 멀리하는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할아버지가 식후에 드시는 커피는 가끔 한 스푼씩 얻어 먹었습니다. 따뜻하고, 달달하고, 쌉쌀한 뒷맛이 있던 그 커피.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나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정신 없이 1학년, 2학년을 보내고... 드디어 3학년이 되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인서울 해보겠다며 수능 문제집을 풀며 잠과 싸우는 시기였죠. 아침에 등교할 때, 자연스럽게 슈퍼에 들러 조지아 캔커피를 하나 사서 반으로 갑니다. 달달한 커피 맛이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맛과도 비슷한데, 예전의 따스함은 없었어요.

1년 남짓한 시간은 금방 지났고, 수능을 쳤습니다. 더 잘 나온 것도 없고, 덜 나온 것도 없이.. 딱 평소 모의고사 만큼 쳤던 가나는 수능 점수를 30점 가까이 남겨서 모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4년 전액 장학금과 동 대학 대학원 장학금까지 따냅니다. 춥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던 겨울, 고등학교 근처에 작은 카페가 하나 생겼습니다. 로스팅 기계로 직접 콩을 볶는 카페라고? 고 3 내내 함께했던 조지아 커피를 잠시 내려놓고, 가나도 직접 볶은 신선한 콩이라는데 한 번 마셔볼까? 하고 그 카페에 들러봤습니다. 그런데, 핸드드립이라는 메뉴가 있네?
이것 저것 잡지식은 있었던 가나는 바리스타님께 핸드드립도 하시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바리스타님께서는 왠지 신나 하시며 설명을 길게 해 주시면서 직접 내려주셨어요. 향긋하고 고소한 향도 나고, 커피를 내리는 그 모습이 뭔가 전문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느낌... 핸드드립 커피를 입 안에 머금었을 때도, 아메리카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산뜻함과 향미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커피가 제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카페에 놀러가서 이것 저것 많은 커피들을 마시며 배웠어요. 1:1로 핸드드립 하는 방법도 배우고 다양한 커피 콩들이 어떤 맛의 차이가 있는지도 알게 되고 로스팅 포인트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게 되었죠. 졸업 선물로 핸드드립 세트를 받고 홈카페 생활도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커피와 만난 이 순간이, 제 커피 인생에서 가장 지적 호기심에 충만했고, 가장 많이 공부했으며, 가장 즐겁게 커피를 즐겼던... 반짝 반짝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맛있게 커피를 내리고 마실 때마다 반짝, 반짝, 하고 순간 순간이 빛나긴 하지만
커피를 처음 접하고 한창 배울 때 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ㅎㅎ
역시 뭐든지,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 가장 빛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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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다닐때 습관처럼 마시던 자판기 50원짜리 밀크커피 어쩌다 커피숖에 가면 한참 유행하던 헤이즐럿, 그나마 고급스럽게 투자해서 먹던것이 전부였던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추억이 돋네요

추억을 생각나게 했다니 기쁘네요:) 커피를생각하면 아련해 지는 건 커피향 때문일까요..ㅎㅎ

어렸을때에 관한 글을 읽으니
저도 고모부가 생각나네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저도 긴 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Ghana531님의 커피향이 뭍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지만 마음만으로 보면 상위 10% 는 되실 듯 하네요. 커피 먹으면 머리 나빠진다는 말은 거짓 으로 보는게 맞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 ^ 마음만은 바리스타인데 손이 따라주질 않는군요ㅎㅎㅎㅎ

네 ㅎㅎ 저도 같은 마음 일 듯 요. 감사합니다~

바리스타님께 용기내 한 번 건낸 말로 평생을 함께 할 커피를 배우셨군요 ^^

맞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단골이에요ㅎㅎ 참 감사한 분이죠, 저에겐:)

전 하루에 아메리카노 5잔도 마실 수 있답니다.
이정도면 커덕인정인가요?!

으왕ㅋㅋㅋ 인정입니다..! 근데 그렇게 드시면 밤에 못 주무실 거 같은걸요ㅠㅠ

아유 따스해라! ghana531님의 커피 이야기......고즈녁한 새피아 빛이 퍼져가는 느낌입니다. 소소봇!

앗//- // 감사합니다!

어릴적 커피에 대한 환상이 정말 대단하죠~ 초코보다 맛있는 달고 쌉싸름한 맛의 커피..

어린시절 그 찰나의 매혹을 끝까지 부여잡고 지금껏 커피사랑을 하고, 커피매니아가 되셨다니 ..ㅋㅋ 정말 대단하십니다.

원래 오타쿠라는 말이 일본에선 '어떤 분야에 푹 빠져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는데 그렇게 보면 증말 커피 오타쿠이시네요 ㅋㅋ 여러 의미에서 멋집니다! ^^

갑자기 커피가 땡겨서 시원한 냉커피 한잔 말러갑니다..ㅋㅋ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칭 타칭 커피 덕후입니다...! ㅎㅎㅎ 저도 방금 얼음물에 아이스믹스 타서 한 잔 했어요ㅎㅎ 날이 더우니 달달하고 시원한 게 자꾸 땡기는군요.

달달한 냄새가 나는 황토색의 물. 너무나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ㅎㅎ
저도 커피에 대한 기억들이 참 많습니다.
처음 좋아하는 사람 따라 카페를 가서 마셨던 쓰디쓴 아메리카노.
편의점에서 '**우유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의 커피를 마시면서,
아 달달하고 맛있네~ 하면서, 카페가서도 자신있게 에스프레소를 시키며 극도의 후회를 했던 날.

자원봉사하던 청소년 센터에서 팔뚝깡패였던 해병대출신 선생님이 내려주셨던
고소한 더치커피. 고소함이 선생님 팔뚝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커피 앞에서 즐거웠던 기억이 참 많네요 ㅎㅎ

dmy님도 커피와 관련된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군요! 커피는 주로 누군가와 함께 하기 때문에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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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서 맛보았던 싱글오리진의
신맛이 나는 핸드드립 커피는
제 인생에서 최고의 한잔이였지요...
아, 그때는 투샷이 아니였어요ㅋㅋㅋ

크... 누구에게나 첫 순간은 강렬하게 남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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