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오로지 노란 도시, 액상프로방스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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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느즈막하게 일어나 전날 빨아둔 옷을 개어놓고 간단히 씻은 다음, 다시 짐을 싼다. 엑상프로방스 만큼은 호텔에서 혼자! 지내보자 라며 호스텔에 두배 이상에 달하는 비싼 돈을 주고 예약을 했던 곳이다. 1인실 너무 좋다. 이틀동안 정말 푹 쉬었다. 이제 남은 기간동안 이런 호사는 누릴 수 없으리라.

이제 다시 유럽여행을 간다고 하면 8인실 16인실같은 호스텔에서는 못 지낼 것 같다. 모두가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성격의 공간이 어떤 이에게는 국제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겠지만, 나는 불특정 다수의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장기간 있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다.

마음 맞는 사람을 우연찮게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런 대화는 돈 주고도 살 수 없으리라. 하지만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만남은 극히 드문 사건이다. 나머지 8할의 만남은, 내 체력을 갉아먹는다. 나는 그냥 혼자 있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내면에 집중한다. 글쓰는 행위는 내 생각을 그저 받아쓰기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쓰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내 자신과의 대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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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덧 혼자가 익숙하다. 벌써 유럽여행을 한지 한달이 되었고, 한국을 떠난지 4개월째다.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첫 질문은 외롭지 않냐 혹은 심심하지 않냐라고 자주 묻곤 하는데 물론 외롭고 심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외로움과 심심함은 이렇게 역에서 기차를 1시간가량 기다리는 상황에서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글을 쓰게 만든다. 또 아무 생각도 않은 채로 한 없이 멍때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기도 한다. 물론 생각하는 것도, 글쓰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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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서서 식사를 할 곳을 찾아 돌아다닌다.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느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장장 한 시간을 걸어다녀버렸다. 여길 봐도 노랗고, 저길 봐도 노란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긴 공복과 지친 체력은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결국 들어가 배를 채운 곳은 패스트푸드점. 후식으로 맛있는 밀크쉐이크를 먹으며 다시 길가에 나오니 갑자기 눈 앞의 풍경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뭐 그런 것이다. 같은 그림이라도 자연광에서 볼 때와 인공 조명으로 볼 때가 완전히 다르듯이, 여행지에서도 같은 장소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의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하물며 햇빛이 쨍쨍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혼자 걷거나 누군가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때, 음악을 듣거나 혹은 도시의 소리를 들으며 걸을 때, 취했거나 그렇지 않을 때... 또 똥이 마렵거나 그렇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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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우니 앞이 보인다. 시내 곳곳에는 시장이 열려있다. 큰 길에서는 잡동사니 상품이나 옷, 악세사리를 파는 대형 시장이 주욱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왼쪽 골목으로 올라가니 조그만 광장에 과일시장이 열려있으며, 그 다음 블록에는 꽃 시장이 열려있다.

시장과 시장, 골목이 끝나는 틈새 사이에는 노래를 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세 명의 여자들, 분수대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와 아기를 달래며 남편의 기타반주에 노래를 하는 아줌마, 각종 기묘한 악기들을 땅바닥에 펼쳐 놓고 하나씩 연주하는 중년의 아저씨가 보인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빈 곳과 틈을 적당히 채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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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그맣고 노란 도시는 그 색깔만큼나 정말 활기가 넘쳐흐른다. 이 곳은 초대형 할인마트 건물 몇 군데와 백화점 건물 몇 군데로 돌아가는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정말 멋있는 세계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나온 부부 가수 앞에 앉아 한참을 감상하다가 결국 그 아줌마의 매혹적인 목소리에 반해 10유로를 주고 시디를 사고야 말았다. (그런데.. 왜 현장에서 감동받아 충동 구매했던 CD들은 하나같이 집에 돌아와 플레이어로 들어보면... 그때 그 느낌이 안 날까. 하긴. 귀로만 들었던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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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도시, 세잔의 도시, 액상프로방스를 이제 떠날 시간이 왔다. 유럽의 하이라이트, 이탈리아로 떠나는 기차 역에서 주절주절 메모를 하고 있다. 맞은편 벤치에 각자의 책을 펴들고 독서를 하는 커플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thelump




화가의 여행_최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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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추억들을 가지고 계시네요.^^ 과거 사진들 펼쳐보면 힐링도 되고 잊고 있던 기억들도 소환되고 좋지요.

맞아요. 여행은 계획할때 한번, 여행지에서 한번, 또 마지막에 여행기를 올리면서 한번, 이렇게 세 번 한다고 하잖아요. 후기를 쓰면서 또 여행하는 느낌입니다.^^

사진 구도가 너무 좋은 게 많네요...
어제 올린 세잔의 작업실 사진
그려보고 싶어서 프리트 해 놨습니다. ㅎㅎㅎ
허락과 용서를 구합니다. ㅎㅎ
오늘 도 마찬가지로
그림같은 사진들이 있네요

도시 자체가 멋져서 어떻게 찍어도 기본빵은 되더라구요. 그리고 raah님의 그림....기대됩니다!!! :)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사진과 글이 좋네요 :)

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외로움과 심심함은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맞는것 같아요. 결과물이 어떻든지 간에요. 그래서 스팀잇을 시작했는데 재미에 푹 빠졌죠. 조그맣고 노란 도시 잘 구경했어요! ㅎㅎ

스팀잇도 너무 중독되지 않게 경계하는 시기입니다. 이거 하다보면 정말.. 끝도 없네요 ㅎㅎㅎ

여행 중이시군요. ^^ 홀로 유럽여행이라... 로망로망하군요.
3가지가 인상적이예요.

글쓰기는, 쓰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내 자신과의 대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같은 그림이라도 자연광에서 볼 때와 인공 조명으로 볼 때가 완전히 다르듯이, 여행지에서도 같은 장소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의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

꼼꼼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여행에서 돌아온지 꽤 됐습니다 ^^ 여행 중에 썼던 메모를 그대로 옮겨서 마치 지금 있는 것처럼 페이크! 를 쓰고 있습니다 ㅋㅋ

오~ 완전히 속았어요!! 완벽합니다!! ㅋㅋ

큼은 호텔에서 혼자! 지내보자

정말 몇 일 동안 게스트하우스에 있다가
남은 일정을 1인실에서 보낼 때 그 해방감이랄까,
자유로움은 '이제 게하는 못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좋았었던 기억이 있네요.
길가에서 파는 건 먹는거 빼고는 다 실패라는 걸
다시 배우고 갑니다.

ㅋㅋㅋ 맞습니다. 한인민박은 맛있는 한식 먹고 싶을때 가는 것이고, 호스텔은 돈 없을때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죠. 1인실이 짱입니다. !!

저는 늘 써주시는 글도 좋지만 그렇게 오래 떠날 수 있었던 계기나, 뭐 상황들도 궁금하네요. 4달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갈 수 있다는게 저는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ㅎㅎ

1년간 준비했던 개인전이 끝나자마자 여건이 되어서 떠났었어요. 모든 걸 내려놓다기 보다는.. 내려놓을게 별로 없어서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온 힘 다해 나를 쏟아부어 뭔가를 만들고 훌쩍 떠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ㅎㅎ 저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려놓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통 여행기는 여행 당시에 쓰여지는데 화가의 여행은 여행의 족적을 어루만지는 글이라 재밌어요. 그 때의 사진과 일기를 정리하면서 그 때의 감정이 새롭게 영감을 줄 것같기도 하고요. 저도 나중에 지나온 여행기를 한 번 써보고 싶네요:)

음악가의 여행은 어떨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길거리에 널린 것이 악사들인데 그들을 보는 시선이 궁금하기도 하구요. 나중에..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혼자 떠난 유럽 여행,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제가 못해본 경험이라 그럴까요? ^^

한번쯤은 괜찮더군요. 여행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즐기고 왔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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