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동시대 미술을 보는 관점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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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을 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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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내가 묵고 있는 민박집 주인장 아저씨가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작업실 구경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맡아논 터라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아저씨의 작업실로 향했다.

아저씨와 한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아저씨의 그림 속에는 희뿌옇고 몽환적인 배경에 흐릿한 인물들이 유령처럼 있었다. 그림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견해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내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 묵묵하게 작업실에 앉아 매일같이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의 모습을 그저 보기만 해도 무언가 감동적인 기분이 들었다.

뭔가에 홀려 저렇게 평생을 작업실에서 자신의 내부를 온종일 주시하며 그것을 물질로 만들어내는.. 예술가라는 존재.. 새삼, 새삼스러웠다. 작업실을 빠져나오며 "내 미래의 모습을 아저씨를 통해 보는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번 방문이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아저씨와 나 둘 다에게 힘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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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찾아갔다. 모네 그림은 이번 여행에서 꽤 많이 본 터라 방문을 고민했었다. 안 갔으면 크게 후회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명작은 아무리 감상해도 지나침이 없음이라. 오랑주리와는 또 다른 느낌, 더 거칠고 터프하고 불타오르는 듯한 말년의 수련들을 감상할수 있었다.

젊은 시절 모네의 그림이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만 같은 빛의 세계였다면, 말년의 그림에서는 견고한 중력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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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빠져나와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걷는다. 바캉스 기간이라 골목은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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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거리의 악사들은 별 특별할 것 없는 골목을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도 잠시 앉아서 그들의 음악을 감상하다가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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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는 파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팔레 드 도쿄> 미술관. 건물 기둥에 설치된 스펙터클한 작품이 날 맞이했다. 작품 참 오지고 지리네. 입구부터 퐉! 제압을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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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내부가 넓어 다 보는 데에 한참 걸렸다. 파리의 동시대 미술은 어땠을까? 주로 설치와 영상 작업들이 전시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젊은 작가들답게 재기발랄하고 흥미로운 작업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딱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작업들이 많았다. 언어의 장벽에 막혀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딱히 언어를 다 알아듣는다고 해서 감상의 시선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작업들이었다.

내가 본 영상 작품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영상 속에는 대략 10여명의 사람들이 있다. 부끄러워하는 한 남자를 무대 중앙에 초대한다. 누군가 그에게 접시를 내민다. 남자는 그 접시에 똥을 싼다. 똥접시를 받은 사람들 무리가 한바탕 환호의 춤을 추며 끝난다.

음.. 자신의 치부를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드러내고, 사람들의 응원으로 말미암아 치유를 한다는 이야기인가? 뭐.. 뭔 말인줄은 대충 알겠다만..아....진짜 똥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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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집을 지어 그 안에 각종 자동장치들로 악기가 저절로 연주되고 있는 작품이었다. 집 자체도 굉장히 독특했고 그 안에 기계들이 연주하는 음악들도 역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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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거닐면서 문득 떠올랐던 것이, 대부분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각각의 작품들이 아니라 차라리 갤러리 '공간의 전체 구성'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미술관은 각각의 좋은 작품들을 큐레이팅 한 다음에 그것을 보기좋게 진열해놓는 방식이 아니라 마치 보기좋은 진열을 위해 공간에 어울릴법한 다양한 작품을 선정하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팔레 드 도쿄 미술관에서도 개별 작품들의 난해함은 있을 지언정 공간 디스플레이는 정말 조화로웠다. 벽에 페인팅이 걸려 있는가 하면 중앙에는 균형을 맞춰줄 적당한 설치물들이, 또 한 구석에는 구성의 다양함을 맞추기 위한 사운드 아트가, 다른 한 쪽에서는 돌출된 외벽에 적당한 영상작업들이 빔 프로젝트로 나타나는 식이었다. 가만히 보자하니 디스플레이라는 것이 작품선정 이후에 사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것은 분명 오로지 디스플레이를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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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을 차라리 '디스플레이 아트' 혹은 '인테리어 아트'로 정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개별 작품들의 '의미'에만 집착하기 시작하면 분명 허무하고 공허한 느낌을 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서 전체 공간의 구성을 느끼면 어떨까? 그러니까 하나의 인테리어로 보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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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을 일종의 훌륭한 산책 코스로 비유하면 어떨까?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현대식 정원' 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개별 작품을 이해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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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파리의 여행도 여기까지. 글로 쓰진 않았지만 파리의 주요 미술관은 다 돌았다. 다음의 여행지는 프랑스 남부 쪽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파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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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ump




화가의 여행_최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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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 라는 말에서 이미 저는 매료됩니다. 불문과 나와서 불어 한마디 시원~하게 못하는 주제에 프랑스 이야기만 나오면 설레는 이유는 뭐죠? ㅜ 제까짓게ㅜ asbear님이 주관하시는 홍보대사로 위촉됐어요. 늘 좋은 글 쓰시는 thelump님 글을

@홍보해

우와.. 주변 분들이 자꾸 뭐에 당첨되시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 홍보 감사드려요.

와 팔레드 도쿄의 저 나무기둥은 해외 건축사이트에서만 본 기억이 있는데 럼프님의 여행사진에서 보니 반갑네요. 현대예술은 해석보다는 직감이나 직관에 더 의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ㅎㅎ

네네 저 작품 여행 다녀와서 찾아보니까 생각보다 유명한 작품이더라구요. 워낙 스펙터클해서 여기저기 불려다닐만 한 것 같아요. 크다고 다 압도당하는건 아닌데 저거는.. 정말 볼만 했었어요 :)

잠시 파리로 이동하여 엿보고 온 기분입니다. 프랑스 남부로 이동하신다는데 제가 다 설레네요.ㅎㅎ

강렬한 태양빛이 내려쬐는 프랑스 남부.. 정말 설렜죠 ㅎㅎ 고흐나 세잔이 왜 이쪽으로 내려왔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었습니다..

아 중간에 집 미니어쳐들 모아놓은거 탐나네요~. 전시물 하나하나가 위화감 가지지 않고 감상할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대 동시대의 인테리어를 감상한다 라는 마음가짐으로요~

인테리어 구경하거나 쇼핑한다는 느낌으로 전시를 봐도 확! 달라보이긴 합니다. :)

간접체험한거같아요ㅎㅎ 잘보고가요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제가 스팀잇에 와서 가장 좋은게 뭐였냐면요,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이의 귀를 통해 세상을 듣는거였어요. 이렇게 화가님께 함께 하는 파리여행처럼요! 너무 좋네요. 꿈만 같아요. ㅎㅎ

계속 저를 따라 오시죠~ 다음 코스 준비해놓겠습니다! ㅎㅎ

@thelump님 안녕하세요. 개대리 입니다. @bookkeeper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개대리님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현대미술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 같아요. 팔로잉하고 갑니다. 더불어 잘 읽어보기 위해 리스팀도 할게요^^

부족한 지식을 늘어놓을 뿐이지만 재밌게 보셨다면 힘을 내어 계속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리스팀 감사합니다 ㅠㅠ!

제가 상당수의 현대미술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네요
'똥 싸고 있네'

뭐 어쨌든 다 좋다고 쳐도
너무 불친절해요. 그리고 직관적이지 못합니다. 현대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심지어 현대미술을 공부한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쓰다 보니 뭔가 스팀잇과 닮은 점이 많네요...;;;

미술이 직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말씀하신 감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의미가 너무 과잉되는 공간에서 관람객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요..

예술가의 파리 여행은 저보다 훨씬 풍성한 느낌이 드네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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