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스티미언] 내 생애 첫 바다

in #kr-travel7 years ago (edited)

제 여행기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하하하하.

음,,, 그러니까... 20살 때였습니다.
시에 미쳐서 매일 영풍문고 시 코너에서 살 때였습니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일기장에 종이낭비를 해가며 시를 갈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바다에 대한 시를 읽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겁니다.

'아,,, 난 태어나서 바다를 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태어난 이후로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던 겁니다.
여름이면 다들 부모와 함께 바다로 산으로 놀러다니는 일은 남의 얘기였습니다.
할머니와 삼촌들과 함께 살다보니 여행은 그저 꿈이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식당에 일하며 내가 직접 번 돈,
이 돈으로 무작정 기차를 탔습니다.
목적지는 정동진.

막차를 타고 징글징글 아~~~ 피곤해...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도착을 안 하는 바다.
그러다가 아침이 됐습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일출은 개뿔.
해가 중천에 뜨자 도착한 정동진.
(이때 정동진역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와~~~~~
이게 바다냄새구나.
와~~~~~
이게 진짜 모래구나.
와~~~~~
이게 바로 파도소리구나.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 온 사람은 나 뿐.
친구 아니면 연인.
서로 사진 찍어주며 놀고 있더군요.
아냐아냐 난 외롭지 않아... 라는 주문을 걸고 무작정 모래사장을 걸었습니다.
한,,, 30분쯤 지났나...
혼자 앉아 있는 여자 발견.
무슨 용기였는지 다가가서 말을 붙였습니다.

'저기,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나요.?'
'네? 아뇨. 저기 일행 있어요.'
'아, 저는 혼자에요. 저는 바다가 처음이고 여행도 처음인데요, 그 흔한 수학여행도 못 갔거든요. 와~~ 바다는 정말 처음이에요. 냄새도 좋고 소리도 좋고, 정말 바다엔 바닷물 말고 아무것도 없네요. 바다랑 하늘이 서로 만나고 있어요.'
주절주절... 그러고 있으니 자기도 혼자라고 말하더군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데, 첨엔 경계심이 생겨 일행 있다고 말한 거라고.
첫 여행이고 첫 바다인데 카메라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더니 자기에게 카메라가 있다고 찍어준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는 주소를 물어봐서 알려줬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인화해서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이제 어디 가세요?'
'저는 ㅇㅇ에 친척이 있어서 거기 들렀다가 또 ㅇㅇ으로 가요. ㅇㅇ님은 어디로 이동하세요?'
'아, 저는 갈 곳이. 그냥 기차 타고 다시 집에 가죠 뭐.'
'그럼 저랑 같이 경포대 가보실래요? 강릉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깝잖아요. 혹시 비둘기호 타보셨어요?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같아요. 밥은 먹었어요? 역 밖으로 나가면 분식집 하나 있는데 여긴 식당이 그거 하나 뿐이에요. 저 뒤에 등산로도 있긴 한데 비추.'
그렇게 저는 첫 여행에서 은인을 만나 맛나게 아점을 먹고 비둘기호를 타고 버스를 타고 경포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경포대 가면 실망할 수도 있어요. 거긴 더럽거든요. 여기 모래는 자연 그대로잖아요. 거긴 달라요.'
와~~~ 정말 모래 반 쓰레기 반이더군요.
경포대에서 다시 바다를 구경하고, 호수도 한 바퀴 돌고, 어디 숲도 돌고 그러다가 다시 터미널로 갔습니다.
우린 터미널에서 헤어졌죠.

사진 왔냐고요?
ㅎㅎㅎㅎㅎ
제가 편지쓰기를 좋아해서 펜팔도 있었는데요,
펜팔이 한 명 더 늘어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사진의 봉투에는 보내는 사람 주소가 안 적혀 있었습니다.
사진만... ^^

흠... 22년 전이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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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혼자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첫 바다라니... 상상만 해도 그 때 감정이 어떠셨을지 느껴지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면 좋겠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글 쓰고 있으니... 20살 풋풋했던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네요. 그땐 모든 일이 처음이었는데... ^^

처음 본 바다라... 그 감동이 어떠셨을지... ㅎㅎㅎ
첫 바다를 보러가셔서 사진기가 없으셨다니 조금 아쉬울 만도 했을텐데... 그래도 우편으로나마 사진을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 ㅎㅎㅎ
사랑은 냉면처럼이 실제 있었던 일들을 소재화하여 씌여졌을거 같군요.
식당에서 직접 일도 하셨다니... ㅎㅎㅎ 암튼 글 잘읽고 갑니다 :)

<사랑은 냉면처럼>의 배경은 제가 일했던 식당과 비슷합니다. 제가 일했던 건물도 3층 건물있고, 1층에 300석 2층에 대략 100석 3층에 대략 100석이었습니다. 주방도 1층 주방은 조리팀, 2층 주방은 준비팀, 3층 주방은 반찬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고 냉장고도 있고 했어요. 저는 냉면부였습니다. ㅎㅎㅎㅎ 그런데... 소설은 100% 허구입니다. 배경만 가져왔고 내용은 지어냈어요. ^^ 간혹 경험담이냐고 묻는 분들 계셔서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답니다. ^^

저의 첫 바다는 해운대 였어요. 부산 할머니 댁에 갔었는데 햇볕 알러지 있는걸 첨 알게 된 때이기도 하죠 ㅠ

해운대에 얽힌 추억도 있죠. ㅎㅎㅎㅎㅎ

좋은 추억이네요^^
제가 정동진을 갔을때는 진짜 쓰레기장이었는데 ㅜㅜ
한창 정동진이 유명해졌을때 다녀온터라 너무 지저분해서 안좋은 기억만 ㅜㅜ
naha님은 경포대에 그런기억이 있으시군요~
22년 전이면 정말 오래되었네요. 좋은 추억이신듯해요^^

사람들이 많이 오면서 예전 모습이 사라졌다고 해요. 이젠 다시 가도 그때의 느낌이 있을 것 같진 않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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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저도 22년전이라면 여행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싶음 필카니.. ㅋㅋ 디카가 있었던 때인지 모르겠네요 ㅋ 필카로 찍어서 다 뽑아주세요! 하면 정말 반은 흔들리고 ㅋㅋㅋ

디카가 없던 시절이죠. 삐삐시대. ㅎㅎㅎ

그래도 좋은 분 만나셨네요. 귀찮을 법도 한데 사진까지 보내주시고..

여행에서의 인연은 많은 추억을 남기게 하는 것 같아요.
인연으로 인해 그 여행지는 더욱 특별해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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