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시선의 바라봄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몇년 전이었나.

이 이야기를 후배에게 한 적이 있다. '생각해봐, 이런 이국적인 시선에 대해..' 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게 무슨 말이에요?'였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그리 집착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나의 의식의 저변 어딘가에서 늘 맴돌고 있는 생각이었다고 할까.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오늘 꺼내어본다. (이번엔 설명을 잘 해야지.)




여행지에서 바라보는 시선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할 때 우리는 평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풍경의 모든 것들에 예민하게 시선을 돌리고 감각을 연다. 거리의 상점에 걸린 팻말도 유심히 쳐다보고, 줄지어 서있는 가로수에도 눈길을 준다. 편의점의 우유 패키지 디자인도 이 나라만의 감성이 아닐까 생각해보고, 지나가는 행인의 생김새나 표정도 힐끗거린다.

모든 것이 적절하게 낯선 감각으로 내 안의 낭만을 자극한다.





누군가에겐 생업의 공간이자 지겨운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여행자에겐 그것조차 낭만이다.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일상의 공간과 루틴을 벗어나 만나는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여기, 되게 이국적이다!'

이국에 와서 이국적이라는 말을 남발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 말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입에서 뱉어지는 이유는 '이국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더 이상 그것이 이국의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에게 그렇게 다가온다는 사적인 시선과 감각을 표현하고 싶을 때 나오는 감탄사같은 표현이다.

(가난을 벽화로 승화시킨 공간은 제외다. 집안이 그 정도로 폭삭 망한적은 없지만, 내가 벽화마을 주민이라면 모든 관광객들을 증오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국적인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랜드마크를 관광하는 것도, 조용한 곳에서 휴양하는 것도, 뒷골목을 찾아나서는 것도 각자의 성향에 따라 나뉘는 여행의 유형일 뿐이다. 그 누구도 내 방에서 하던 생각과 경험을 되풀이하려고 여행을 떠나진 않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정을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모든 여행의 경험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한 때는 패키지 여행을 뻔하고 틀에 박힌 거라고 치부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누구의 어떤 여행도 '환기'를 전제로 하기에 시간의 길이과 장소의 선택을 기준으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나의 여행이 패키지 여행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시선의 치환


평소에는 우리집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나무들이나 마트의 패키지들에게 그리 낭만적을 시선을 준 적이 없다. 가장 냉정하고 자비없으며 무심한 시선을 하사한다. 아니, 아얘 시선을 주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반대로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외국인이라고 가정하고 나의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자라난 환경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자아낸다고 느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그게 무슨말이에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외국인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중국과 일본의 그것과는 다른 한옥과 그에 더해진 카페나 상점들의 분위기는 이국적일지도 모른다. 흔해빠진 플라타너스 나무와 단풍, 진달래들에게서 내가 야자수에서 보았던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국립박물관을 방문하는 건 외국인 지분이 클 수도 있겠다. 서울 사람이 남산 안가는 것처럼..




호기심과 바꾼 일상


'호기심이 없어지면 늙는거래'라고 선배 @bombom83 이 말했다. '전 요즘 궁금한게 없으니, 나이드는 건가봐요' 라고 답했다.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싫증나고 우울했던 시기였던 것이 분명하다. 괜한 반항심에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시기.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아무리 그 루틴에서 벗어나려해도 쉽지 않다. 익숙함이란 이렇게 무섭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 달에도 작년에도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어디로도 떠날 수 없을 때. 내가 외국인이라면 골목길의 빨간 벽돌 건물도 이국적이라고 느낄까 하고.





내 풍경의 질감을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무겁고 큰 다짐이 아니라, 깃털저럼 가벼운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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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시선, 닮고 싶은, 회복하고 싶은 시선입니다.

이미 너무나 다양한 시선을 갖고 계신걸요!ㅎㅎ

제가 요즘 지나쳤던 익숙해진 주변의 공간들 속에서 새로운 면들을 계속 발견하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 글을 만나네요.^^

감사합니다! 매일 가던 길을 조금씩만 다르게 가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다른길로 돌아간다던지 하는식으로요.ㅎㅎ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에요. 여행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여행지에서는 시선의 범위가 넓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매일 지나치는 동네에서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볼 때 1층의 층고로 좁게 바라보는 데 멀찌감치 떨어져 멀리 시선의 범위를 넓혀서 바라보면 달리 보일 때가 있더라구요.

조금만 시선을 다르게 두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여행은 그걸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시선을 넓게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구요 :)

음악가는 청소기 소리나 사람의 목소리도 음악으로 들리고
사진작가의 눈에는 일상이 작품소재가 됩니다.
이국적이란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 좋은 표현이네요!!

그나저나 첫 번째 사진은 어디에용?ㅎㅎ

발리 우붓입니당 :)

새로운 발견인가요? 시선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리 보이겠지요! 이국적인 시선이란 익숙함과 낯섬을 포용하는건지도...ㅎ

역시 에빵님 ㅎㅎ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낯설게 보기, 저도 계속 되새기며 상기시킬 마음가짐이네요-좋은글 감사해요-

봄봄님!! 저에게 첫 댓글을 남겨주셨군요!! ( 반말하셔도되요...ㅋㅋ)

ㅎㅎㅎㅎㅎㅎ네넵,이젠 존댓말이 익숙해지려고 해요,ㅎㅎㅎㅎㅎ

두 분 댓글들 어째서 웃기죠!? 목소리 자동 재생되고요?

P 님 프로필 바꾸셨네요 +_+ 굉장히 시크하게 느껴져요 ㅎㅎ

이국에 와서 이국적이라는 말을 남발한다.

이거 딱 저네요... ㅠㅠ 이국적인 거 엄청 좋아라하는데, P님 말을 듣고보니 너무나도 당연한거네요 ! 그렇지만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처럼 우린 외국에 나간 순간부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모든 환경을 보니까, 뭐든 새롭게 받아들이나 봅니다 :)

해외에 나가서 진짜 이국의 것들을 경험하는 것도 좋고,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도 좋고 이 둘이 서로 막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아, 프로필 시크해보이나용 ㅋㅋㅋ @nomadcanna 님이 만들어주셨어요. 반응이 좋네요 :)

반응이 좋다니 기쁘옵니다 ㅎㅎㅎ
프로필까지 만들길 잘했구만요 'ㅇ'/

어찌보면 이국적이란 표현이 새로움에대한 인식인것도 같습니다. 생각해본다면 생소함, 이질감 등으로 느껴질수도 있는데 그 의미속에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도전?,즐김도 함축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평범함에 길들여져 나에게 관계되는 환경에 대한 새로움을 음미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 바로 살지 못하고 낯선 곳을 찾아서 여행을 하나봅니다. 모처럼 감성레코드판(? ^^)님 덕분에 멋진 풍경 사진과 사색의 즐거움을 느껴봅니다. 항상 새로워짐을 꿈꾸면서 perfact stranger가 되기를, 호기심만은 인생에 활력을 훔~ 불어넣기를 기도해봅니다. 익숙함의권태로움에 빠지지않는 그리고 감사하는 新을 身에 담고 神스럽게 申伸해보고자 다짐합니다.
ps. Deep purple의 이노래가 제 심상에 동조화를 일으키네요.

어쩌면 익숙함에 길들여지는게 가장 빠져나오기 힘든 늪이 아닐까 싶어요. 저보다 더 잘 정리해주셨네요 ㅎㅎ그런데, '감성레코드판' 호칭은 처음들어봐요!ㅋㅋ 신선하네요 ㅎㅎㅎ

기분 나쁘시진 않으시죠? @Emotionalp 님, Emotional - p로 보면 박-감성적인님이신거 같은데, 저는 자꾸 보면 Emotion-alp로 눈에 뜨이고 그래서 감성적인 (외계인 알프) 혹은 Emotiona- LP로 눈에뜨이네요. 이놈의 習이 무섭습니다. 익숙함에 길들여져셔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이죠.

ps. 그런데 외계인 알프가 alp가 아니라 alf내요. (이놈의 익숙함.....쯧쯧, 죄송합니당!)

ㅋㅋㅋㅋㅋ전혀 예상치 못한 접근인데요. 전혀 기분나쁘지 않습니다. 뭐라도 불러주시면 감사해요 ㅋㅋ 대부분은 P로 부르시고, 아니면 이모셔널이라고 부르시는 분도 있습니다. ㅎㅎ

보통 여행가면 며칠이상씩 같은 장소에 묵으면서 현지인 코스프레(?)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며칠 묵다보면 여기가 내 생활공간이 되면서 이국적인 것이 점점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다소 이국적인 것을 느끼고 싶어 여행을 가면서, 또 그 현지에서 현지인처럼 느낌을 받고 싶어하고... 그렇게 여행 다니고 있어요. ^^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현지인들만 알고 느끼는 공간을 탐닉하고 싶어한달까.. 어디든 익숙해지면 이국적인 것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계속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삶이 계속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역마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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