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여행기 2, 시공간의 재탄생

in #kr-travel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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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여행기 2

시  공  간  의  재  탄  생




서점투어를 마치니, 책 두권은 은근 가볍지 않았다.

내가 미리 생각한 목적지는 '완벽한 날들'과 '동아서점'이 전부였기에 이젠 뭘 할지 생각해야했다. 아침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먹은 샌드위치를 반은 버스 안에서 먹고, 반은 등대해변에 앉아서 먹었다. 그리고 서점에 앉아서 마신 음료 한잔이 전부였다. 두세시쯤 되었었나보다. 생각보다 배가 고프진 않다보니, 카페에서 쉴지 뭘 먹을지 고민했다.






비단우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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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밖에 마시지 않고, 우유는 좀 덜 마시려하는 편이라 밀크티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는 알고 있었지만 갈 생각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책 두권과 카메라, 노트 등과 함께 있으려니 어디가서 좀 쉬는게 낫겠다 싶었다. 마침 동아서점에서 5분거리에 있는 비단우유차를 가기로 했다. 마침 카페 바로 앞에서 막국수집을 발견하고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조용한 동네 식당에서 혼자 먹는 것도 먹을만했다.

비단우유차는 오래된 건물에 입구도 작아서 그냥 지나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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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하다고하여 사람이 많으면 바로 나올 작정이었다. 혼자서 그런 공간에 있고 싶진 않았으니까. 타이밍을 잘 잡았던 건지 평일 오후라서 그랬던 건지 모르지만, 나 말고 손님은 한 팀 뿐이었다. 잘 됐다 싶었다.

교실도 방도 아닌 것 같은 오래된 공간엔 '회의실'이라고 적혀있었고, 짐을 풀고 주문서를 작성했다. 첨엔 모르고 그냥 '밀크티주세요'했더니, 주문서를 작성해오라고 하셔서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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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서를 작성해갔다.

오리지날 한 잔이요. 사장님이 자리에 없을 땐 종을 치면 안에서 나오신다. 호텔리셉션 같은 주문방식이었지만, 화려한 호텔이 아닌 오래된 부띠끄 호텔 느낌이었다. 밀크티도 냉장고에서 꺼내서 빨대과 함께 바로 내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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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파우더를 넣지 않고, 숙성을 시켜 만드는 밀크티라고 했다. 쑥 밀크티도 궁금했지만, 과한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단맛이 적은 오리지날을 선택했다. 계피와 생강이 들어간 오리지날은 맛이 오묘했다. 다행히 내 허용범위내의 단 맛이었는데, 더 단 메뉴를 선택하지 않은 건 잘한 것 같았다.

얼마 전 이곳에 다녀간 지인은 품절되서 밀크티를 맛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단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난 자리에서 한잔을 마시고, 두잔을 더 사가지고 왔다. 덕분에 가방은 조금 더 무거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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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겸해서 '완벽한 날들'서점에서 산 책 '그림 여행을 권함'을 마저 읽기로 했다.

읽을 수록 김한민작가의 글은 술술 읽히고 그림은 너무나 편안한 스케치같았다. 벽에 기대어 한참을 읽었다. 한시간을 좀 넘게 밍기적대며 책의 마지막 몇 챕터만 남겨두고 거의 다 읽어냈다. 한 손으로 책을 들고 읽었는데, 목도 안아프고 글이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았다.






칠성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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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우유차에서 5분거리에 칠성조선소가 있었다.

이곳의 기능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확인차 가보기로 했다. 사진으로 보아, 이름으로 보아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고 직감하긴했다. 오래된 조선소 자리에 새로운 해석들이 얹어진 공간이 분명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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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오픈.

요즘은 '살롱'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남 일 같지가 않고, 괜히 심쿵하게 된다. 여긴 또 무슨 살롱을 하는걸까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유난히 많이 쓰이는 부분도 있다. 워크샵이나 공연같은 모임을 진행하면서 '살롱'은 단골손님처럼 쓰이는 단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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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이 열려있는 호수인 '청초호'를 앞에 두고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고, 작은 주택건물과 조선소 건물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단층의 주택 건물은 카페의 기능을 하는 것 같았다. 크지 않은 공간에 손님이 꽉 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전 이곳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그 포스터가 아직 남아있다. 내가 요즘 즐겨듣는 노래를 부르는 '새소년'도 왔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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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안은 정말 조선소를 그대로 남겨둔 듯 했다.

나무배는 남겨진 것인지 전시중인 것인지 약간 헷갈렸고, 그 안쪽은 조선소의 흔적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듯 했다. 어둡고 또 어두워서 작은 공간이었지만 들어가기가 조금 겁이나서 얼른 둘러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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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흔적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덕지덕지 녹이 슨 닻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담긴 산업의 잔재들은 미학적이기도 하다. 굴러다니는 녹슨 철들과 조선소가 아니었다면, 이곳을 특별한 곳이라고 느끼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오래된 장소의 이름을 그대로 살리고, 어느 시대일지 모를 복고적인 폰트를 간판에 내건 후 그 안을 새로운 오브제로 채워넣는 것은 약간은 공식같기도 하다. 요즘 통하는 공식같은 거. 예전엔 그런 것들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시각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색안경을 끼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런 시도들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많아져야 숙성의 단계에도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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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를 나오자마자 고양이들을 만났다.

고양이를 키우진 않지만, 마트에서 산 값싼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다닌다. 고양이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다리며.. 이건 고양이만을 위한 건 아니고,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침 구멍가게 앞에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하고 간식을 줬다. 새끼고양이가 더 식탐이 많은지 겁도 없이 간식을 낚아챈다. 조금만 타이밍 늦게 줬으면, 손을 긁힐 수도 있었겠다.

골목길 건너편 할아버지는 고양이 좋아하면 한 마리 가져가 키우란다. 가게라서 장사를 해야하는데 고양이들이 몰려들어 키울 수도 안키울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키울 생각이다. 고양이의 일생을 책임질 수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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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마리의 고양이를 세번에 걸쳐 만났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마법같은 존재다. 사실은 외모도 귀엽지만, 겁을 내고 경계를 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사랑받기 위한 제스쳐마저 은유적이다. 마치 자연스러운 사람의 마음같다고도 느끼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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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청초호를 삥 둘러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다.

가방엔 책과 카메라와 밀크티들이 가득했지만, 벤치에서 자주 쉬니 나름 걸을만했다. 혼자 걷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쉼을 가져다 준다. 좀 더 자주 혼자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속초여행기 1, 완벽한 날들의 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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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고양이 좋아해요...
혼자 여행가면 단점을 한가지 꼽자면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단점이라.. 성향에 따라 혼자여행이 좋을 수도 좀 외로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소문난맛집은 애초에 안가게 되는데, 그런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동행자가 있는 것이 외롭지 않고 좋겠죠. :)

혼자 걷는 여행 좋아요! 서점 투어는 안 먹어도 배부를 여정이네요^^

앞으로 가끔은 혼자여행도 즐겨보려구요. :)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꽤 걸어다녔는데 요새는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다시 좀 걸어야 할 텐데 날은 더워지고.. ㅎㅎㅎ

그러게요. 갑자기 여름이 되어버렸네요.

참 의미있고 아름다운 여행이네요
이렇게 여유롭고 편안한 여행을 하시는것이 부럽네요.
잘 읽었습니다 ^^

ㅎㅎ짧게나마 여유좀 부려봤어요.

이런 시도들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많아져야 숙성의 단계에도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

저도 예전에는 유행을 우후죽순 따라한다고 느껴서 안 좋게 바라봤어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데 P 님의 글을 읽으니 그 또한 숙성 전 단계일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이제서야 생각나네요 ㅎㅎ

네 물론 저도 대놓고 복붙하는 형태는 좋아하지 않지만, 고민하는 시도의 과정들은 복붙과는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

그런데 한 가지 우려점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무언가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투자하고 전통으로 지켜나가는 자세는 미약하다는 거예요 ㅠㅠ 여름철 한탕장사처럼 치고 빠지는 태도는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깊이 공감해요. 뿌리가 약하죠. 재해석할 전통도 약하고, 재해석도 깊지 않은 것이 현실이죠. 이제 장사를 위한 장사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과정을 지켜보며 고민과 논의를 해보면서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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