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추구의 과정을 습관화하는 것
대문 이미지 by @gamiee
한 줄 요약: 뇌는 자동화를 추구한다. 자동화되기까지는 의식적인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다. 습관이라는 자동화 과정이 형성되기까지는 목표 그 자체보다 습관 형성하는 것에 마음(=의식적 주의)을 쏟으라.
우리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육감적으로 뭔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은 내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자극의 출현에 연관되는 것일 수 있죠. 보상과 연관되는 자극일 수도 있겠지만, 보상의 가능성보다 위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이런 자극에 둔감하다면 생존율이 떨어지겠죠. 그래서 뇌는 새로운 자극이 들어올 때 가장 활성화가 잘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 뇌가 각성돼 있다면 금방 소진돼 응급실로 실려가겠죠. 사실 뇌는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안 좋게 말하면 뇌는 게으르다는 것이죠. 프로그래머들이 코딩을 통해 자동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뇌도 자동화를 통한 효율의 최대화를 추구합니다. 굳이 일일이 신경써가며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죠.
실제로 인간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문제해결 상황에서는 뇌를 많이 쓰지 않습니다. 대부분 습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죠. 매일 아침마다 몇 시 몇 분에 지하철 승강장 몇 번 위치에서 승차하는 사람은 별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기 쉽습니다. 그 시간과 그 위치가 아침 출근시간대 환승에 있어 최적이라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에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한 번 습관으로 형성되고 나면 그 이후로 이 습관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효율적인 자동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이 자동화는 새로운 정보가 출현하기 전까지 유지가 됩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나 행동 패턴에 배치되는 자극의 출현이죠.
이를 테면 이런 거죠. 한국 도로에서는 우측 통행이 상식이지만 일본에서는 좌측 통행이 상식입니다. 일본에 여행 가서 운전하면, 가뜩이나 여행이라는 상황 자체가 끊임없는 새로운 자극의 출현인지라 피곤한데 거기다 또 운전하며 뇌를 많이 써야 해서 배로 피곤해질 것 같습니다.
의식이 풀로 작동하는 이런 상황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학습이라는 상황 자체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죠. 책 읽을 때 너무 술술 넘어가면 그 책에서는 얻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적당히 이해가 안 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머리가 아프고.. 뭐 이런 과정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뇌는 자동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자극의 유입을 통한 변화에는 저항적이니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게 당연합니다. 아이들뿐이겠습니다. 어른들도 공부는 좋아하는 사람보다 안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습관이 학습되는 경우를 논외로 한다면, 학습을 통한 습관 형성은 환경에 더 적응적인 방향으로 뇌를 재구조화함으로써 인간에게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자동화를 통해 에너지 사용의 효율도 높여주죠.
새로운 자극이 출현할 때 의식은 이것을 일종의 문제로 여기고 고도의 집중을 발휘하여 이 문제를 풀게끔 설계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풀이 상황이 반복될수록 의식적인 관여가 줄어들고 자동적인 처리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의 기저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학습 경험이 배어있다는 것이죠. A일 때 B하고 C일 때 D하고 A와 B가 같이 나타날 땐 E를 하라는 등 수만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대처 방안이 무의식에 프로그래밍돼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적 집중 및 학습의 최종 목표는 무의식적 자동화 아닐까요.
영어 학습과 관련하여 이런 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운동을 습관으로 형성할 때도 그랬지만, 영어 학습에서도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자기조절 관련 자기계발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목표의 디테일입니다. 목표가 가시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으면 목표 달성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절반만 믿습니다.
이미 습관 형성이 된 상태라면 목표를 명확하게 잡는 것이 습관 유지에 도움이 되겠지만, 습관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는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는 것보다 습관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어 학습 자체가 새로운 자극이 계속 들어오는 의식 충만한 과정입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힘든 과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습관화 돼 있던 행동을 깨야 하는 경우도 생기죠. 기존 습관을 제거하는 동시에 영어 공부라는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하는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늦은 저녁 시간에 책을 읽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죠. 우선순위의 변경입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간에 영어 공부의 자동화에 주력해야 하고, 그래서 전 몇 가지 룰을 세워놓고 자동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자동화를 돕는 일종의 과정 목표이자 실행의도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딸과 와이프가 자면 원서 읽기를 시작한다.
-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듣고 싶은 음원이나 영상을 골라 리스닝을 시작한다.
- 하루를 못 했든 이틀을 못 했든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말고 오늘부터 1일이라는 심정으로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 원서 읽기가 끝나면 끝난 지점에 그 날의 날짜를 기록한다. 리스닝이 끝나면 구글 keep에 날짜와 리스닝한 시간을 기록한다.
- 리스닝은 그 때 그 때의 흥미에 따라 듣고, 1분이라도 하면 그 날은 공부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원서 읽기도 한 문장이라도 읽으면 공부한 것으로 친다.
- 원서 읽기의 중간 목표는 feeling good(600~700페이지 중 250페이지까지 읽음)을 다 읽는 것이다. 리스닝의 중간 목표는 7개월을 채우는 것이다(현재 2개월 반 정도 됨).
제가 4~5개월 후에도 영어 학습을 지속하고 있을지, 스스로도 매우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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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뇌의 자동화'가 꼭 필요한 분야가 있습니다.
논문쓰기... ㅠㅠ
(지금도 하기 싫어서 딴짓..)
논문은 참.. 쓸 때마다 어렵습니다. 한 20편 정도 써야 자동화가 되려나요.. ㅜ 미국에 사시는 것 같은데 논문도 쓰시는군요.
박사 유학와서 연구직으로 눌러 앉았거든요. 지구과학 분야입니다. :)
놀랍고 멋지네요 awesome~! 가끔 영미권 어느 나라에 식구들 다 데리고 가서 연구도 하고 돈도 버는 그런 허황된 꿈을 꾸는데 그걸 현실화시킨 분이 여기 계셨네요. ㅎ
저야 와서 식구가 늘어난 경우인데.. ^^
분야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겠지만 지구과학 분야에선 꽤 많은 분들이 나와 계세요. 아주 어렵진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