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in kr-pen •  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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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괴로운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나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중

데미안,
그리고 요조

지난 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어 소설가의 자전적 소설을 연이어 읽게 됐다. 따지고 보면 자전적이 아닌 소설이 어디 있겠냐만, 책 스토리 전반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르다. 뭐, 또 한 번 질문을 하자면 우여곡절이 없어 소설이 되지 못할 인생은 없다 할 수 있겠지만,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솔직하게 쓰지 않는다. <인간 실격>. 소설 속 주인공 요조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었다.

<데미안>과 <인간실격>은 삶을 회의하고 질문을 성찰한다는 두 주인공을 내세우나 둘은 전혀 다른 실존적 선택을 한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어느 이상을 따라 자신의 목소리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발견했다면, <인간실격>의 요조는 절망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아가다 목숨을 끊는다. 삶을 결정 짓는 건 경험이기도 하지만, 이상-생각-방향성이기도 한 것이다.

싱클레어와 요조의 삶을 보고 있자면,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얄팍한 충동이 들지만, 생각해보면 두 삶을 비교해도 어느 삶에 우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 자신에게 진솔했고 그렇게 진정성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다른 누군가 자신의 삶을 살아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또한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심에 떳떳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은 살아감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죄스러운 삶,
요조의 익살

요조는 죄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묻는다. 흔한 오류는 죄의 반대말을 선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는 특정한 기준에 따라 판결지어지는 일종의 가치 판단이다. 법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여기, 국가-사회가 형성한 법(기준)이 있다. 이 때, 준법하면 죄가 아니고, 위법하면 죄다. 그렇다면 죄의 반대말은 기준에 부합함 즉, 어긋나지 않음이다. 싱클레어와 요조는 보편적 사회 기대를 따르자면 모두 유죄(죄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것이 그들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지만(오히려 더 속박하지만), 이는 인간을 더욱 옥죄기만 하는 이토록 죄스러운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것임을 역설한다.

기독교의 가치관은 인간의 타락을 제시하며, 신과 분리된 인간의 원죄를 강조한다. 기준은 정해져 있고, 그것은 신의 계시를 따라 결정되어 있다. 태어나면서 인간은 죄인이고, 살아간다는 죄스러운 일이다. 다시, 싱클레어와 요조를 보자. 싱클레어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타파하며, 살아가는 일은 그것을 모두 껴안는 일이라 생각하며, 기준의 중심에 자신을 세운다. 요조에게 삶이란 선과 악을 고찰하는 문제가 아니다. 싱클레어와는 달리 가난한 환경 속에서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요조에게 던져진 질문은 살아가는 것,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다. 요조는 비틀거리며 홀로서기에 도전한다.

요조가 삶을 죄스러워했던 이유는 무얼까. 그는 왜, 여린 심정으로 무수히 많은 인간들의 테두리에 둘러쌓여 익살을 연기해야 했던 걸까. 요조를 죽인 건 요조가 아니었다. 요조를 죽인 건 삶에 대한 최선이었다. 결론에 대한 진정성 있는 실천이었다. 요조는 애썼다. 그의 생과 맞닿아 있던 유일한 구원의 끈인 '익살'을 평생토록 연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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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했던 책인데, 리뷰를 보고 나니 다시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20대에 읽은 느낌과 30대에 읽는 느낌은 분명 다르겠지요?ㅎ

그럴 거 같아요. 같은 텍스트를 다르게 느낀다는 것.. 그건 또 어떤 의미일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말 많은걸 알아 갈 수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로 나온 책이더라구요. 표지는 조금 가벼운데.. 내용은 요조의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책이었어요.

진정 인사이트가 담긴 글이 여기 있네요.
안그래도 부족한 이해력에 데미안은 읽어 봤는데 인간실격을 읽어보지 않아 글이 어렵게 느껴지네요. 진정성 있었음에도 익살을 연기하며 죽음을 택한 요조의 삶이 궁금하네요.

인사이트라니..^^; 과찬이십니다. 울적하고 씁쓸하지만 괜찮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다시 책장을 뒤져봐야겠네요.

책장 속에서 책을 발견하셨으려나요 ㅎㅎ 기회가 되시면 @tailcok 님 생각도 나눠주세요~! :)

저도 예전에 인간실격 보았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 했네요. 그당시 충격을 많이 받았던 책이었는데..

읽어보셨군요.. 저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줄거리는 벌써 가물가물해지는 거 같아요.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요조의 이야기가 제게 남아 있을 거 같아요.

책에대한 심도깊은 이해가 느껴지네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앞으로 많은 좋은글들 보여주세요 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우기님 먹스팀과 옷스팀에서 자극을 받아봐야겠습니다.

실존, 부조리. 참 제가 좋아하는 단어들입니다. 제 소설 하얀방도 이에 대한 이야기죠. 그러니 인간실격을 안 좋아할 수가 없네요.
저 역시 요조를 보며 다자이 오사무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삶의 대한 최선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충실하게 자신을 살아낸 거죠.
덕분에 오랜만에 인간실력을 되새겨 봤네요. 고품격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익살을 평생토록 연기하다 선택한 죽음이라...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지네요...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용기는 자신을 정말로 사랑했을때, 자신을 끔찍히 아낄때 가능하다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저는 그 글이 참 공감이 됐었어요. '나는 000이런 사람이여야해'라는 나의 기준,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나를 더이상 봐줄 수가 없을때...죽음을 선택한다는거죠. 요조의 익살이 어떤 건지 궁금해지네요..:)

그렇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기대에 대한 좌절이 생을 포기하는 일로 이어지기도 하겠네요. 요조의 익살은... 음, 글쎄요. 쉽게 이야기 하기가 힘든 거 같습니다. 요조는 무얼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요. 울적하고 씁쓸한 소설도 괜찮으시다면 한 번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

서점 가는 날 한번은 만나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