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하기 싫은 날 1. 밥값 밥벌이

in #kr-pen6 years ago (edited)

나이 계산법이란 걸 봤어.
몇 년 전에 알려진 계산법이라는데 이제야 본 거야.
과거보다 평균수명이 늘어서 현재 나이에 0.8을 곱하면 신체나이가 된다는 식.
내가 지금 22(+20)살이니까 0.8을 곱하면 13(+20)살이 나와.
아직 어리지?

이런 생각을 해봤어.
기왕 낮출 거 0.5를 곱해볼까?
으힛~~~ 욕심도 과하셔.

100세 시대라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이야.
60(또는 70)살에 은퇴한다면 남은 30~40년을 제2의 인생으로 살아야 해.
그런데 넌 준비하고 있어?
돈 벌기 위한 일 말고 제2의 인생을 위한 일을 준비했냐고.
난 말야, 소설을 쓸까 해.
지금은 밥값 벌기 위해 개발자라는 직업으로 살지만, 은퇴 후 40년 동안은 소설을 쓰고 싶어.

오늘 박상률 작가님의 <개님전>이 생각났어.
내 어릴 적 꿈이 소설가잖아.
특별히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어서 청소년 소설의 대부인 박상률 작가님의 소설을 좀 읽었지.
제목 참 재밌지?
"개"에 "님"을 붙였어.
예상했듯이 개가 주인공이야.
그것도 아주 훌륭한 진도개.
(왜 진돗개가 아니라 진도개냐고? '진도에 사는 개'라는 의미로 진도개래.)
소설에선 계속 '밥값'을 언급해.
개로 살면서 인간에게 밥을 얻어먹으려면 밥값을 해야 한다는 거야.
어미개는 자식들에게 밥값하는 방법을 교육해.
쥐잡는 방법도 알려주고 아가 응아 핥는 방법도 알려줘. (옛날엔 이렇게 아기 응아를 처리했대. 신기하지?)
어미개는 자식들에게 밥값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태어난 것인냥 밥값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
이 험난한 세상 밥값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개가 밥값을 못하면 결국 보신탕이 돼버리거든.
아니나 다를까, 소설에선 집주인이 큰 병에 걸리자 마을사람들이 어미개를 잡자고 권유해.
하지만 집주인은 어미개를 잡아먹지 않아.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밥값'이야.
흔히 밥벌이라고 하는 이 밥값.
밥값을 못하면 죽어.
개가 밥값을 못하면 보신탕이 되듯 사람이 밥값을 못하면 죽어.
밥이야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병에 걸리면 어떡할 거야.
송파 세 모녀사건 봐봐.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은 인생 펑펑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의 재산이 있어도 건보료 0원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건보료 채납하고 병원 갈 돈도 없어 자살하는 송파 세 모녀도 있어.
밥벌이 못하는 사람은 밥값 못 하는 개처럼 보신탕 신세를 면하지 못해.
그래서 밥값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 거야.

밥값하는 방법을 배우고 열심히 밥벌이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인간만의 숙명은 아니야.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이 그렇게 살아.
(참,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은 제외.)
얼마 전 아내와 얘기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어.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죽을힘 다해 공부할 것 같아.'
난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지.
'죽을 힘으론 부족해. 목숨 내놓고 공부할 것 같아.'
계층 이동이 차단된 우리나라에서 상위층으로 가는 방법이 딱 하나 남았어.
외우는 머리만 인정해주는 공부.
슬픈 현실이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진 않을 거야.
밥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거든.
밥이 많아도 하루 세끼 이상 못 먹어. (그래 네 끼까지는 인정해줄게.)
그래서 난, 내 밥값 내 가족의 밥값을 할 수 있을 정도는 갖추라고 말하고 싶어.
그리고 더 많은 밥값을 한다면 밥벌이가 어려운 사람과 나누라고 말하고 싶어.
밥 많아 봐야 썩어. 나눠야지. 그럼 안 썩거든.

난 매일 슬럼프야.
소설 쓰고 싶은데 회사일로 시간이 안 나는 거야.
툭하면 철야하고, 집에 오면 뻗고.
내가 욕심이 많아서 불행한 건 아닌지 생각도 들었어.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그 슬럼프를 탈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60살에 은퇴하면 40년 동안 질리도록 소설 쓸 생각'을 했거든.
상상이 가?
40년 동안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거. 징글징글하게 소설만 쓰고 살 40년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지더라.
내 인생의 반을 소설가로 살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경우가 어딨니.
앞으로 남은 18(~28)년 동안 밥벌이로 열심히 살고
남은 40년은 질리도록 지겹도록 진절머리나도록 다신 '소설'의 '소'자도 보기 싫을 정도로 물리게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거야.
기분 좋아지는 상상이지?
30살까지 밥값하는 방법을 배우고, 60살까지 밥벌이를 하고, 100살까지 내 꿈을 이루며 사는 인생 멋지지?
꿈은 죽기 전까지만 이루면 된다고 해.
30살에 이뤄야 한다는 법도, 40살에 이뤄야 한다는 법도 없어.
50살에 이뤄도 꿈을 이룬 거고, 90살에 이뤄도 꿈을 이룬 거야.

그러니까
지금 힘들어도 힘을 내려고 해.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거야.
내 꿈을 이룰 제2의 인생.

.

사람하기 싫은 날 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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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번 다시 보고 읽었어요~^^
좋은내용이예요
준비하고있으면 기회가오고 이루어질듯요
(글 잘쓰시는거 멋져요^^)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
기회는 언젠가는 올 거예요. 죽기 전에만 오면 되죠 뭐. ^^

저는 지금 밥값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슬픕니다. 그래도 꿈을 꿀 수는 있겠지요? 나이 든다는 것, 아이들 키운다고 바쁘게 움직이다가 정작 내 삶은 놓친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저의 꿈을 마구 갉아먹고 있는거 같습니다...

지금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

밥값하는게 쉽지는 않은것 같아요...

어려우니까 배워야 하더라고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시대. ^^

제가 요즘 밥 값을 못하고 있어요 ㅠㅠ

지금 못해도 괜찮아요. 나중에 잘하면 되니까요. ^^

그 꿈 참 멋지네요
응원합니다^^

응원 고맙습니다. 언젠가는 꼭 소설가로 살 거예요. ^^

꿈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는것 같아요.^^ 좋은글 감사

하나하나 맞춰가면 꼭 완성되리라 믿어요. ^^

흐흐... 월급값은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과 '선생하기 싫은 날'이라는 책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퇴직하면 뭐하고 살아야 행복할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이 참 편하게 읽히네요. 글 속에서 나를 찾게 되구요.

제가 남의 글을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되게 조심스러운데 미숙의 증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평해봅니다~! 글 좋아요!! 그리고 설레요~!

앗... <선생하기 싫은 날>이라는 책도 있군요. ㅎㅎㅎ
그리고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좋은 글 많이 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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