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opos #3: 러시아식 이름에 대한 개요

in #kr-pen6 years ago (edited)

A summary in English is to be found at the end of this article.
jamieinthedark6 copy.jpg

apropos의 의미: ~에 대하여, (특정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누가 누구를 지칭하는지의 문제는 기본적인 문맥 파악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대부분은 문제 없이 알 수 있으나, 유독 러시아 문학작품을 몇 권 읽다 보면 간혹 헷갈릴 여지가 있다. 단순히 이름이 길거나 어려운 것 외에도, 한 인물의 이름이 자주 바뀌어서 불리는 현상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 이름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한 인물의 이름은 세례명, 부계명, 성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나, 비교적 단순한 문제부터 푼다는 의미에서 거꾸로 보기로 한다.

  • 어차피 끼릴 문자로 쓰이는 언어의 이름들이다 보니 영어 철자로 표기하려면 가능한 답이 여러 가지이므로, 여기에서는 추가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영어 철자는 생략하기로 한다.

러시아식 성씨

우선 유명한 톨스토이의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어보자.

51yIXAsd4fL.jpg

[이반]은 세례명, [일리치]는 부계명이다.

세례명과 부계명의 문제는 추후에 보기로 하고, [이반 일리치]의 성은 [골로빈]이다. 그의 부인, 또는 딸도 그의 성을 따르지만 여성형으로 바꾼 [골로비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같은 저자의 안나 카레리나는 [카레닌]이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한 여성의 이름이다.

[골로빈] 또는 [카레닌] 성을 남편이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여성의 성은 [골로비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라는 성을 가진 군인과 불륜 관계에 빠진다. 결국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서 실패했지만, 만일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와 결혼하게 되었다면 그녀의 성은 무엇이 되었을까? ~키로 끝나는 이름은 ~카야로 바꾸면 된다.

be20bf54a5207cb9083045be34d434ed.jpg
알렉세이 브론스키(숀 빈) 때문에 보는 영화 안나 카레리나

[안나 카레리나]가 [브론스키]와 결혼하면 [안나 브론스카야]

마찬가지로 유명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베라]라는 딸이 있었다면, [베라 차이코프스카야]였을 것이다.

또 러시아 황실의 성은 [로마노프]였는데, 그 중 여성들의 경우 성이 [로마노바]가 된다.

이상 여성들의 경우, 성에 ~아 또는 ~아야가 붙는 정도만 알면 된다. 단, 영문이나 기타 언어로 번역을 할 경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냥 기본 "남성형"의 형태로 통합, 표기하기도 한다.

러시아식 부계명

다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어보자. [이반 일리치 골로빈]의 부계명은 가운데 이름 [일리치]이다.

성 [골로빈] 역시 아버지에게서 직접 받은 것인데 [일리치]가 부계명인 이유는 그것이 아버지의 세례명에서 바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식 "가운데 이름"이란 영어권에서처럼 부모 마음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세례명이 바로 반영된 결과이다.

[이반 일리치]의 경우, 아버지의 세례명이 [일랴]였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이름에는 주로 ~치, ~이치,~에비치, ~오비치 등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접미사가 붙기 때문이다. 딸의 경우 ~치나, ~이치나, ~오브나, ~에브나 등이 붙는다.

[일랴]가 아들을 낳아서 [이반]이라고 이름을 지어주면, [이반]에게는 [일랴]가 가운데 이름으로 붙는데, [일리치]의 형태로 붙어서 [이반 일리치]가 된다. (성씨 미정)

만일 [일랴]가 [타티아나]라는 이름의 딸을 낳는다면, 그녀의 이름은 [타티아나 일리이치나]가 된다. (성씨 미정)

kul-dostojevski1_620x0.jpg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유명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보자. 그의 이름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로, 아버지의 이름 즉 세례명이 [미하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그에게 나탈리아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면, [나탈리아 미하일로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가 될 것이다. 결혼하면 성씨는 남편의 것으로 바뀌겠지만, 평생 [나탈리아 미하일로브나]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미하일]이라는 이름이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 [표도르]와 [나탈리아]는 각각 [미하일로비치], [미하일로브나]라는 부계명을 가운데 이름으로 갖게 된다.

그럼 추가 예시를 위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저자 레오 톨스토이를 보자. 사실 레오란 영어 식으로 표기한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레브(료브)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이다. 그의 아버지의 세례명은 [니콜라이]였음을 알 수 있다.

article-1220646-066E8808000005DC-123_468x306.jpg
레브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톨스토야

톨스토이의 부인 이름은 [소피아 안드레예브나]였으니 그녀의 아버지 세례명은 [안드레이]였음을 알 수 있고, 결혼한 후로 남편의 성 [톨스토이]를 갖게 되는데 이는 여성형 [톨스타야]가 된다.

[니콜라이]가 나은 [레브]는 [레브 니콜라예비치], [안드레이]가 낳은 [소피아]는 [소피아 안드레예비치]가 되며, 이 둘이 결혼해서 [톨스토이] 부부가 되면 각각 [톨스토이]와 [톨스타야]의 형태로 성을 표기하게 된다.

아버지와 같은 세례명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나 대통령 푸틴이 이에 속한다.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의 아버지 이름은 [드미트리]였음을 알 수 있고,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의 아버지 이름은 [블라디미르]였음을 알 수 있다.

흔한 이름 [이반]을 예로 들면, 아들에게는 [이바노비치], 딸에게는 [이바노브나]로 변형되어 붙게 된다.

  • 참고로 아까 예를 들었던 차이코프스키의 전체 이름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인데, [표트르]가 자녀에게 부계명 즉 가운데 이름으로 주어진다면 아들의 경우 [페트로비치], 딸의 경우 [페트로브나]가 된다. 러시아어를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ㅛ와 ㅔ의 발음 구분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보인다. 실제로 e위의 독일어의 움라우트와 같은 것을 붙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와 상관이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사례로 격투기 선수 효도르(표도르) 역시 영어로 페도르라고 표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330px-Fedor_Emelianenko_2012.jpg
효도르(표도르) 블라디미로비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표도르)라는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한데, 그에게는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라는 세 아들이 있다. 이중에서 [알료샤]는 애칭인데, 이만 세례명 파트로 넘어가기로 한다.

러시아식 세례명 및 애칭

앞서 말했듯이 [알료샤]는 애칭으로, [알렉세이]의 애칭이다. 앞서 거론한 성 및 부계명에 대한 정보를 적용해보면, [알료샤]의 정식 이름은 [알렉세이 효도로비치(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임을 알 수 있다.

[알렉세이]를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료샤]가 기본으로, [알료샤]나 [알료셴카]도 가능하다. [알렉스] 같은 애칭은 비교적 현대에 와서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러시아의 세례명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로 바뀐다. 주로 친근한 사이에서 바뀌지만, 특별히 알려주기 전에는 넘겨짚어서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공적인 자리에서는 부계명까지 포함해서 부르는 것이 예의에 맞다.

특별히 자신이 선호하는 애칭을 알려주지 않으면, [드미트리 블라디미로비치], [예카테리나 게라시모브나]처럼 부계명까지 포함해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학작품에서도 작중 인물들이 서로 이렇게 길게 부계명까지 부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알료샤]의 형 [드미트리]의 기본 애칭은 [미챠]이지만, 더 친근한 사이에서 [미텐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좀 비하하는 또는 아주 정말로 친한 사이에서 낮잡아부르는 이름은 [미트카]인데, 이렇게 ~트카로 끝나는 이름에는 우리 식으로 하면 '놈'의 뉘앙스에 비견할만한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는 [드미트리]를 [디마]로 줄여 부르는 것이 더 흔해졌고, 영어의 영향으로 [디마스]라는 이름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능하다.)

가령 [드미트리 효도로비치(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약혼녀의 이름은 [카테리나]인데, 이도 [예카테리나]에서 줄인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줄인 애칭은 [카챠]이다. 더 가까운 경우는 [카텐카]도 있으며, [카츄샤]나 [캬츄쉬카], [카츄셴카], [카츄셰쉬카]도 가능하다. 이 이름을 가진 여성이 선호하는 애칭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미트카]의 경우처럼 [카트카]도 있으나,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털털함"을 표현하기 위해 선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쓰지 않는다. 아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도 [카챠]를 미워하는 다른 여성이 그녀를 [카트카]라고 속으로 부른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애칭에는 보통 ~샤, ~챠, ~쉬카, ~셴카 등이 붙는다. 가령 흔한 이름으로 인식되는 [나타샤]는 사실 [나탈리아]의 애칭이다. 비슷하게 [마리아]는 [마샤], [다리아]는 [다샤]가 기본적인 애칭이다.

반면 흔한 이름인 [사샤]는 남녀공용으로, [알렉산더]와 [알렉산드라]의 애칭이다. [사샤]는 [사슈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슈라]라는 이름도 나온다. 별로 직관적인 애칭들은 아닌데, 앞서 거론한 알렉세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는 영어의 영향을 받은 알렉스도 인기 있다.

그나마 [콜랴]가 애칭인 [니콜라이]나 [페챠]가 애칭인 [표트르(페트르)]는 직관적이다. 직관적인 애칭이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다. 카라마조프...에서 부자 관계를 망치는 여인의 경우 그루셴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리는데, 정식 이름은 [아그라페나]이다. 이 이름의 기본 애칭은 [그루샤], 더 다정하게 부른 이름이 [그루셴카]이다.

러시아식 애칭은 꼭 짧게 줄여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니나의 경우 가까운 관계에서는 니노쉬카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고, 앞서 거론한 [안나 카레리나]의 아들은 [세료자]로 불리는데, 정식 이름은 [세르게이]이기 때문에 (비록 한글로는 한 글자 줄었지만) 사실상 발음 길이가 줄어든 이름은 아니다.

더 이상 줄일 수 없을만큼 짧은 이름 [안나]를 보자. [안냐], [안니쉬카]는 기본이고 [뉴라], [뉴샤]도 있다. 흔한 남자 이름 [이반]에게는 [바냐], [이바누쉬카] 등의 애칭이 있다. 물론 [반카]도 가능한데, 이반의 여성형 [이바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반카" 같은 이름은 러시아식 이름이긴 하나 정식 형태가 아닌 애칭이다.)

Vladimir_Putin_2017.jpg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집에서는 볼로쟈라고 불릴까.

애초에 긴 이름은 어떨까. 푸틴의 이름이기도 한 [블라디미르]의 기본적 애칭은 [볼로쟈]다. 현대에 와서는 [보바], [볼로쉬카] 등도 있으나, [보바]는 굉장히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이고 [볼로쉬카]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개구쟁이 캐릭터 이름이라고 하니, 푸틴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처럼 러시아식 애칭이란 세례명을 꼭 짧게 줄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직관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결국 외국인 입장에서는 느껴질 듯 말 듯 하는 다정한 느낌이 적용된 것이 애칭인 것 같다.

For @sndbox

This post is on the constituents of Russian names: the christian name, the patronym, and the surname. I have covered the masculine and the feminine forms of surnames and patronymic names, as well as some examples of nicknames. The purpose here is to help people in reading works of literature translated from Russian, since Russian names may confuse the reader.

Footer_jamieinthedark.png

Sort: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ㅎㅎ

시보노모스키~

저기요~ 제이미. 여기만 리플이 안달리고 있습니다. 여기! 여기!

러시아는 언어부터... 좀 헷갈리네요 ㄷㄷㄷ

아시나요님 헷갈리시나요?ㅎㅎ

아 이런.. 닉값못했네요 ㅋㅋㅋ

닉값ㅋㅋㅋㅋ

제가 몇 학기 러시아어 수강을 한 적이 있는데요. 진짜 이름 때문에 화가 납니다ㅋㅋㅋ 강사님 하시는 말씀이, 얘네는 예전 위인 이름 따라짓는거 좋아해서 이름이 거기서 거기인데 그래서 누구의 자식을 뜻하는 부계명이 필요했는지 모른다고.

보통 근처 나라들의 경우를 보아도, 성과 이름만으로는 이름이 특정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고향 이름을 함께 대는 경우가 많은걸 보면 그럴듯 한 주장같기도 합니다ㅎㅎㅎ 상산의 조자룡!

이더의 비탈릭부테린 ㅋㅋ

아 걔도 넣을걸. 비탈릭 자체가 애칭이고 원래는 비탈리, 부계명 드미트로비치군요. ㅎㅎ

헐 몰랐음. 비탈군ㅎㅎㅎ

근데 그 부계명도 어차피 세례명에서 나온 거라 거기서 거기인 건 어쩌죠? ㅋㅋㅋ

제 생각에 저런 식의 이름은 대가족 단위 안에서 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거기서 거기인 이름들의 조합을 늘리면 좀 더 사람이 특정되니까요ㅋㅋㅋ 저기에 엄마 이름까지 넣으면 거의 제대로 특정될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어후

ㅋㅋ엄마 이름 하니까 스페인-히스패닉 방식의 이름이 딱 떠올랐네요!

재밌게 봤습니다.
어떻게 러샤 이름에도 조예가 깊으신지 ㅎㅎ
아버지의 이름이 아들에게 가는군요.
북유럽 ~손 처럼..

러시아 문학 작품이 너무 많다보니 혼란 방지를 위해 일찍이 관심을 가졌었죠! ㅎㅎ 아 그리고 깨알 마지막 회에 댓글 다세요. 당첨 보팅ㄱㄱ

전 러시아 작품은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어요. 항상 읽다가 포기를... 좀 딱딱해서 그런지 진도가 잘 안 나가서요. 이름 영향이 있을수도 ㅎㅎ

이름이 좀 크긴 해요. 순발력이 요구되는 대화나 말다툼 등의 장면에서도 막 서로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율리아 페트로브나 이러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리죠. ㅋㅋ

찌니는 러시아식이름으로 어떨지 궁금하네여
...찌바....?

ㅋㅋ제냐가 맞겠네요. 예프게냐의 애칭

저는 고전에는 약해서 고전 문학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었을 때의 그 고단함은 기억합니다. 예전에 러시아 사람 밑에서 일을 할 때도 느꼈던 그런 대목인것 같아요. 재미있어요 ㅎㅎ

아주 어릴 적엔 장편 소설을 보면 같은 부계명이 종종 나오니까, 이게 이 사람들이 친척인 것인지...의아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 러시아 사람과 일도 하셨었군요!

러시아 이름을 들으면 대위의 딸 같은 푸시킨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러시아어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이미지랄까요 :)

푸틴을 보바라고 불러보고 싶은.. 거꾸로는 바... 보...?네요? -ㅁ-

맞아요. 러시아 이름은 문학작품에서 제일 일찍 접하는 경우가 많겠죠! 보바는 그나마 Vova니까 좀 나은...ㅎㅎ

러시아식 이름 정말 복잡하고 어렵네요.

그렇죠. 저 나라 사람들은 규칙들을 안 헷갈리고 바로 안다고 하니...익숙함이 무서운 것 같습니다.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24
TRX 0.11
JST 0.031
BTC 61122.11
ETH 2972.46
USDT 1.00
SBD 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