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보상에 관한 문제

in #kr-pen3 years ago (edited)

#1
최근 몇 년 간은 늘 생각해왔던 문제이다. 서울대생이 썼다는 글을 방금 읽었다.

  • 서울대생인 거 예전처럼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 노력의 보상이 최대치가 아니라도 괜찮다.

  • 서울대생의 B0가 타 대학의 A0보다 낮게 취급되고마는 블라인드 채용의 맹점 정도는 보완해 주면 좋겠다.

보통 그 정도 내용이 담긴 듯 하다. 잘 안 읽혀서 읽다가 자세히 안 읽었다. "아니다. 괜찮다." 말로는 그렇게 적었지만 자신들 '노력의 특출남' 정도는 최소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논조가 담겨있다.

#2
나는 이 서울대생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실망or절망을 할만한 세상의 시작이 약 10여 년전부터 였다고 본다. 그 당시 문사철의 몰락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대는 실용적이지 않은 지식은 배격하겠다. 이 정도의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도 나도 공대로 몰려갔다. 실체가 있는 학문을 배워서 졸업하는 학생들은 취직이 괜찮았다. 내가 06학번 나이인데 10 정도까지도 괜찮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코딩을 하는 졸업생은 넘쳐났고 코딩을 '제대로' 하는 인재는 줄어들었다. 이게 첫 번째 징후이다.

  • 실체가 없는 학문을 다루고 잘 한다고 해도 대접 받을 수 없다.

위의 명제가 현재까지 발전된 것이다.

  • 서울대 나왔다고 당신의 역량을 검증했다고 여기지 말아라. 서울대라는 이름만으로 실체를 입증할 수 없으며 그 것은 이제 특별대우 받을 수 없다.

이 정도로 현재 귀결이 되었다.

#3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방송 매체가 활성화 되었다. 사농공상으로 사회를 계급화 했던 엘리트와 엘리트의 자녀들은 다시 학벌로 사람들의 상하를 나누려고 했는데 무려 서울대를 간 대단한 인재들보다 쉽게, 그들(자칭 상류계층)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잘 사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루트가 생겨났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게 성공하는 자와 그 성공방식을 따르려는 자가 점점 많아진다.

  • 무식하게 많이 먹는 방송을 왜 봐?
    천박하게 노출이나 하는 영상을 왜 봐?
    비속어나 남발하고 논리적이지도 않는 방송인의 팬이 되고 싶니?

기성 세대들의 이와같은 상식은 그야말로 철저한 무논리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진다.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즉시 틀딱으로 간주되며 자신들이 트랜디 하다고 여기는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무시당한다. 세대 간에 공존하는 상식은 현재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학업 성적의 우수함만이 학벌과 성공과 행복한 인생의 유일한 답안이었는데 공부 한 글자도 안 한 것 처럼 보이는 이들도 마구잡이로 자신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이니 서울대생(으로 대표되는 예전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환장할 노릇이다. 물론 모든 서울대생이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금 서울대생의 글을 읽고 현재 쓰고 있으니 특정한 사상이 공유되는 집단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 뿐이다.

#4
그래도 몇몇의 소수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제외하면 여전히 기득권은 자신들이 가진 것이 유효한 줄 알았다. 그런데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코인판에서 기라성같은 부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한다.

  • 모든 코인 투자의 수익은 우연으로 간주하겠다.
    무지성 침팬치 매매로 돈을 벌어도 나는 부럽지 않다.
    운이 좋아 벌 수 있었겠지만 도박판의 끝은 파멸 뿐이다.

여전히 틀딱들이나 할 법한 생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다시 도서관에 가서 시험 준비를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자조 섞인 생각들만 들고 비슷한 처지의 우수한 인재들끼리 "그래도 우리는 정도(正道)를 걸으며 이 사회에 이바지 하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자"라고 말해 보지만 눈은 자꾸 유튜브와 코인 기사로 쏠린다.

#5
위처럼 신랄하게 글을 쓴 이유는 내가 몇 년 간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치나 의미, 공정이나 정의와 같은 관념들은 내가 알던 것이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하고 있었고 의미있는 언행은 오직 명예나 돈 같은 결과물로만 증명이 가능했으며 '공정과 정의'는 일상보다 정치인들의 담화문에만 단골로 등장할 뿐이었다. 혼란스럽고 답답했으며 결국 내가 좋게 여기던 것들을 조금 무가치하게 여기기 시작하고 선하지 않다고 여기던 것들에 대해 다소라도 무감각해지려고 노력했다.

이제 진리는 의미를 잃었다. 진리가 없어졌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진실은 없고 해석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모두는 서로의 이해타산과 이합집산만 신경쓰면 된다.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면 그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미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사회를 비판하며 독야청청을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것은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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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것은 대체로 공허한 메아리겠지만, 그중에는 가끔 즐거운 목소리도 섞여 있을 거예요. "가든님이 좋게 여기는 그것을 나도 좋게 여깁니다!" 이런 거요.

세대 간에 공존하는 상식은 현재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랄하네요. 가든님의 말씀에 매우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혼란한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미를 찾기로 일단락을 짓고 살고 있어요. 옳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행복하기 때문이죠.그외 다른 것은 너무 어렵고 따분해서요.

A보다 돈이 적은 B가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접한 100명은 B가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B는 A를 부러워하고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B는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냅니다.

B보다 더 돈이 없고 못난 외모를 가진 C가 말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100명은 C가 한 말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C가 행복하다고 말한 것에 주목해 달라고 돈도 많고 잘생기고 언변도 좋은 A가 말합니다. 100명은 사실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A가 대단한 사람이며 무조건 행복할거라고 결론 내립니다.

100명도 나쁜 사람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꽤 오랫동안 100명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군중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며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 글을 읽는 이들은 100명 이외의 사람들 이었는데도.. 아직 전혀 영향력이 없는 제가 이런 생각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합니다.

저는 늘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만 앞으로 조금씩 더 행복해 질 생각입니다.

우화 같네요 여러 번 읽었어요.
가든님은 흥미로운 사람이네요. 말씀대로 조금씩 더 행복해지시길

개인적 소망으로는 회의감 들더라도 글은 계속 써주셨으면 해요. 그러시겠죠. 그러다보면 군중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편견없이 글을 읽은 는 사람은 언제나 나타나죠!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는 글이네요.
하지만 저는 진리는 존재하고,
그것을 우리가 거부하고 또 모른다고 해도
존재한다는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행복은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행복은 최종 '결과'일 뿐입니다.

나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유를 추구하며, 또 타인을 사랑하고,
그 행위를 지속하다보면 어느새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거죠

이런 노인네 같은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는 말씀이 많이 와닿습니다. 세상 모든 이의 삶의 목적이 행복인 줄 알았던 시절에 행복은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바람이긴하나, 모두가 그것을 위해 살아가진 않는다는 말을 듣고 긴 시간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오늘 좋은 댓글에 하루동안 다시 비슷한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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