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오늘만큼은 울고 싶지 않다, 이제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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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그가 떠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그와 함께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날이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날인 줄도 몰랐다. 1교시 수업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에 오르자 맨 앞자리에 해당 수업의 교수님께서 앉아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다른 자리를 찾아 앉아 눈을 붙혔다. 교수님이 밤새 괴롭힌 탓이었다. 오늘은 어떤 당근과 채찍을 선사해주실까.

학교 각 건물에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차려졌던 것 같다. 하루만에 철거 되었으니 말이다. 그날이 그가 떠난 날이었나 보다. 학교에 도착해 만난 선배와 함께 분향을 했다. 향 대신 담배에 불을 붙여 올려놓았다. 그가 담배를 태우실 동안 나도 선배와 함께 건물 중정에서 담배를 태웠다. 오늘이 그가 가는 날이었구나.

수업시간이 되었고 출석을 확인하고 교수님은 짧게나마 그를 언급하셨다. 당신이 타고 오신 버스 옆으로 그를 태운 운구차가 지나갔었다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한 시간동안 곯아떨어졌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오래한 유학생활로 자신도 그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와 같은 대통령이 우리 곁에 있어 좋았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동기들을 그러모았다. 그날은 엠티를 떠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떠난 엠티에서는 그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고기를 구워먹고 게임을 시작하자 뒤늦게 선배들이 왔다. 또 게임을 하고 술을 먹고 놀았다. 그러다 문득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서거하셨는데 우리 이렇게 신나게 놀아도 되나?'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나보고 장난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너 빨갱이 아니냐? 아까도 향 대신 담배 올리더라니'

2008년 겨울 나는 군인이었다. 부식 수령 운행을 마치고 나는 취사반 티비 앞에 있었다. 그 날은 17대 대통령 이명박이 취임하던 날이었다. 마지 못해 뽑기는 했어도 내가 뽑은 대통령이었으니 지켜나 보자 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던진 표가 어떤 의미었는지를. 몇 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내 한표가 크게 영향이나 있었겠어? 했지만 그런 표는 많았을 것이다.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태반이었으니.

빨갱이 소리를 듣고나니 기분이 언짢았다. 나는 그가 서거하기전에는 그를 잘 몰랐다. 그냥 인간적인 도리로 한 말이 그렇게 돌아오다니, 반발심에 그분이 더 마음속에 파고 들었다. 혼자 테라스에 나가 담배를 꼴아 물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내가 못 할 소리라도 한거냐 푸념했다.

그 후로 나는 그가 떠오를 때마다 예전 영상을 찾아보며 뒤늦게 그분의 일생과 함께 했다. 추억한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를 잘 몰랐으니까.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엔 그의 도가 지나친 언행만 기억날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를 고깝게 보던 언론의 시선이 그대로 전달되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시간이 흘러 4-5년 전 경북 영천에 사시는 고모를 뵈러 홀로 내려갔다. 이왕 멀리 경상도 까지 가는 거 봉하마을에나 다녀오자 하고 김해로 향했다. 멀기는 엄청 멀구나,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없어 몇 번 갈아탄 후에야 진영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간 끝에 봉하에 닿았다.

비석에 가서 두 번 절을 하고 곁에 있던 의경에게 물었다. 부엉이 바위가 어디냐고. 매점에 들렀다. 대통령께서 피우시던 담배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바로 발길을 돌려 낮은 산을 올랐다. 펜스로 가려져 있는 곳을 찾으니 이곳이겠구나 했다. 마을이 바로 내려다 보였다.

다시 담배에 불을 붙여 5년 만에 올려드렸다. 마을로 내려와 사저로 향했다. 가까이는 가보지 못하고 대통령께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던 장소로 갔다. 너무 늦게 찾아왔구나. 추모관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마지막, 그와 관련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같이 있던 모두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작년 5월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친구, 문재인이 봉하마을에 내려갔다. 친구의 자격이 아닌 대통령이 되어 그를 추모했다. 퇴임후 다시 찾아오겠다 했다. 지켜보고 계셨겠지.

그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모처럼만에 가족들과 극장으로 향했다. 물론 아버지는 빼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며 그분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다큐멘터리었지만 그의 인생답게 다큐가 아닌 영화처럼 내용이 흘러갔다. 물론 이미 다 본 영상이었다, 그래도 중간 마다 그분 곁에 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스크린을 가득채우던 빛이 사라지며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짧지만 긴 시간이 흘러서야 극장 관계자들이 와서 정전이 되었으니 양해 바란다는 소리를 했다.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았다. 어렵게 접속한 인터넷에서 극장 주위가 온통 정전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관계자들은 기다리라고 하다, 환불해주겠다 했다. 예매한 동생을 다그쳤다. 내가 그래서 L말고 C로 하라그랬잖아...!

관객들은 기다리겠으니 빨리 다시 복구하라 했다. 누구하나 큰 소리 내지 않았다. 끝까지 보고 싶으니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 했다. 아...역시 그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가...?했다. 나같은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생전에는 잘 몰랐지만 그가 떠난 뒤 알았던 사람들, 생전에도 알았지만 지나고 나니 그런 사람 또 없다고 느꼈던 사람들.

노무현, 그는 떠났지만 이제 우리 곁엔 그분의 자랑스런 친구 문재인이 곁에 있다. 살아생전 대통령 노무현이 어떠한 대통령이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문재인이 어떠한 대통령인지는 잘 알겠다.

대통령 문재인의 친구, 바보 노무현, 친구를 얼마나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실까. 오늘부터는 울고 싶지 않다.

야~, 기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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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할 대통령을 갖게 되었더는것은
우리로서는 행복한 일이죠
첨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수채화 그려드리는 @raah 입니다.
요즘 @yhoh님이 주문하신 문대통령부부의 사진을 그리려고
찾고 있는데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 났어요...
그리운분. ㅎㅎ 좋은 포스팅. 팔로해요^^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결과가 드러나고 있어요 ㅠㅠ
https://steemit.com/kr/@raah/3cn15f-booksteem

어떤 수채화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과중한 업무에 계시지만 그래도 5년전 대선때 보다는 얼굴빛이 많이 좋아지셔서 그리기 한결 수월하실 것 같아요.
주진우기자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요새는 다스뵈이다 잘 안챙겨봤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책은 못챙겨보겠지만 다큐 저수지게임은 시간날 때 챙겨봐야 겠습니다!

그러시군요ㅜㅜ 좋은 그림 부탁합니다

음... 진정 저를 위해서 그려주신단 말씀이십니까 ... 기대가 한가득 입니다.^^
미리 감사 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울지 마세요!!! 지금 많이 기뻐하고 계실거랍니다.

그렇겠죠? 대통령께서 꿈꾸시던 '사람사는 세상'이 꼭 올거라 믿습니다.

2015년에,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동생 하나를 만났는데, 유의미한 첫 대화가 이거였습니다.

-형, 대통령 누구 뽑았었어요?
-문재인.
-형...! 문재인 빨갱이예요!
-응? 내가 좌빨인데 -_-/
-어버버... @.@

그분은 안녕하시지요? 저도 문통 뽑았는데...빨갱이인가...
아 저는 이미 학교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지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ㅎㅎㅎ
아, 저한테 빨갱이소리 했던 친구는 이명박근혜 뽑았을겁니다.
누가 빨갱이인지 모르겠습니다.

파리에서 매우 잘 지내고 있죠. 정치 성향이 반대인 사람들은 우리가 정치 성향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걸 굉장히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더군요. 재밌죠? 우리는 그 반대로 생각하잖아요ㅋㅋ

어버버...@.@가 상상이 됩니다. ㅎㅎㅎ
'우리'라는 단어도 반갑게 다가오네요. 근데...한 '우리' 안에서 싸우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할텐데 말이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왜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들인지 ㅋㅋㅋ

그게 건전한 민주주의 아닐까 싶어요. 누구들처럼 잡탕이 되지 않으려면...

한 때 제 별명이 빨갱이었어요 ㅎㅎ

저보다 아래 연배인듯 한데... 빨갱이소릴 듯다니! 제가 이상한건 아니죠!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그분이 있어 참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늘 그립고... 보고싶네요!

빨갱이의 뜻을 잘 모르고 한 소리 같습니다. 알고도 한 거라면 정말이지...
그분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계셨었군요. 그때 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웃으며 그분을 떠올리는 날이 되셨으면 합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나네요!! 그립네요 ~~

이제 웃을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재판이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 하겠지만 말이죠!

야~, 기분좋다~!

그분 목소리가 들리는거 같네요...

오늘은 페북에 못들어가고 있어요...온통 그분이라...아직은 웃지 못하겠어요...

언제쯤 웃으며 그분을 그릴 수 있을까요...

페북은 들어가 본지가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끝나고 다시 가신다고 했으니 그때는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 재판도 명명백백하게 잘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리운 분이시죠... 가끔씩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영상을 찾아서 보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저도 가끔씩 찾아보는데 이제는 울지 않으려고요. 이렇게 말하지만 그래도 울컥할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만 생각하면 씁쓸하네요
보팅하고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거하시던 날 , 술 한잔 못 하는 대학 동기 한 놈이 갑자기.. 소주 두병 까고 건물 복도에서 울부짖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처럼 서러운 울음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노무현 하면 그 울음부터 생각나네요.

얼마나 애통한 심정이었을지...후에 괜찮으셨겠죠? 그런 울음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를...

오늘 유난히도 날이 맑네요.
멀리서 기분좋게 막걸리 한 사발 드시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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