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어느 날] 6. 다시 처음부터 맨 땅에 헤딩

in #kr-pen6 years ago

1. 허파에 바람든 날
2. 김칫국 들이키던 나날들
3. 헤드헌터에게 그리 적합치 않았던 상품
4. 이상적이진 않지만 이거라도 한 번
5. 첫번째 전화 인터뷰는 지나가고 에서 이어집니다.

전편 줄거리
어느날 우연히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을 받아 뉴욕 금융계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고 행복한 상상에 즐거워하지만, 시간이 지난 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감이 커진다. 그래서 그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기대치 않았던 채용 공고를 하나 받게 되었고, 전화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나는 뉴욕 금융계에 대해서, 그리고 헤지펀드 회사들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 검색부터 시작했다.

키워드는 "Quantitative (양적인, 숫자에 기반한) Hedge Fund"다.

1980년대 초 뉴욕 주립대 수학과 교수였던 xxxx가 세운 Renaissance Technologies는 어쩌구 저쩌구...

Quantitative Hedge Fund의 대표 주자라면 Two Sigma를 들 수 있다. 어쩌구 저쩌구...

헤지펀드 회사들 중 규모가 큰 Top20 회사들은...

이렇게 유명한 회사들 이름이 나올 때 마다 그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구인란을 훑어보았다. 그 외 여러 대형 은행들 (Chase, Citi, Morgan Stanley, ...) 홈페이지의 구인란 역시 훑어보았다. 그리고 여러 구인 사이트들 (LinkedIN, Indeed, efinancialcareers, ...) 도 찾아보았다. 정말 많은 채용 공고가 있었다.

이 많은 공고들 중에서 나에게 적합해보이는 걸 추려본다.
먼저 "Science"와 "Graduate"이라는 키워드로 거른다. 학부 졸업생 뽑는 공고도 많았는데, 어차피 난 그들과 경쟁이 되질 않는다. 이왕이면 "박사"라는 자격증을 이용해야 했다. 이렇게 거르고 보니 크게 3가지 부류의 채용공고로 모아졌다.

  1. Software Engineer
  2. Quantitative Researcher
  3. Data Scientist

1번은 그 안에서 또 크게 2가지로 갈리는데, 하나는 "Low Latency Program"이라는 특수한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외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전자는 0.01초 단위로 주문을 내어 사고 파는 초단타 거래를 위한 프로그램과 관련된 일이었고, 후자는 다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1번 부류에서 내가 걸리는 부분은, 일단 나는 소프트웨어 공학을 배워본 적이 없다. 나는 몇 몇 프로그램을 짤 줄은 안다. 이건 내 필요에 의해 자료를 분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협동으로 만든 큰 프로그램을 개발해본 적은 없다. 이건 마치 집에서 계란 후라이 할 줄 안다고 대형 호텔 음식점 주방장에 지원하는 꼴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C/C++/JAVA다. 그 어디에도 Fortran을 쓰는 곳은 없었다. (Fortran이 필수인 채용 공고를 하나 보긴 했는데, 그건 기존의 포트란으로 만들어진 코드를 C/C++로 변환하는 일이었다) 1번의 전자는 커녕 후자에도 지원하기엔 무리가 있다.

2번 부류는 3번글에서 언급했듯이 일단 SQL이 기본이고, 더하여 통계적 시뮬레이션 모델링 경험을 중요시한다. 모델링이라고 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어떤 현상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것이고, 지구과학이라는 내 전공 상 수치모델은 나에게 아주 익숙한 분야다. 그런데 내가 아는 모델은 그들이 말하는 모델과 전혀 다른 것이더라.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아는 전공분야 모델들은 물리학에 기초한 방정식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나, 그들의 모델은 물리적인 방정식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의 시뮬레이션이었다. 이 부분은 바로 전 편 5번 글에서 전화 인터뷰 당시 깨닫게 된 것이었다.

3번 부류는 Hadoop이라고 하는, 역시 현재의 내가 쓸 일 없는, 대용량 자료를 보관하고 이용하는데 필요한 프로그램 능력을 필수로 하며, 더하여 기계 학습 Machine Learning을 필수로 한다. 기계 학습 역시, 내가 Clustering이라는 제한된 분야는 시도해 본 적이 있으나, Deep Learning에 필요한 TensorFlow 같은 프로그램을 써봤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어떡하지...
알면 알아갈 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만 커져갔다. 게다가 이름있는 회사일 수록 채용 공고에 "Degree from Top Tier University"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여기 미국도 학교 이름으로 걸러내는구나... 내가 한국에선 나름 이름있는 학교를 나왔지만 그걸 알아줄 리 만무하고, 여기서 박사 받은 학교는 그리 큰 유명한 학교는 아니고... 에휴.

물론 내가 채용 공고만 보고 지레 짐작하여 한숨만 쉰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내 경력과 겹치는 게 있으면 일단 이력서를 접수시켰다. 그리고 예상대로 답은 거의 오지 않았다.

어떤 곳은 채용 공고가 아주 간단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몇 줄 적은게 다다. 이런 곳도 혹시나 하고 지원해보지만, 기본적으로 답이 없고, 운이 좋은 경우 "미안하다"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이런 곳이 사실 더 무서운 곳이다. 진입 문턱을 낮춰 최대한 많은 이력서를 받은 후 고르고 골라 최고의 인재만 뽑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래도 가뭄에 콩나듯 그나마 지원해볼 만한 공고들이 있었고, 그 중의 한 부류는 "Quantitative Developer"라는 요상한 이름의 공고였다. 이 공고는 느낌상 위 1번 부류와 2번 부류의 중간 쯤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학부때 들었던 알고리즘 수업, 그리고 대학원 수업에서 들었던 과학적 계산론 (Scientific Computing)을 가지고 적당히 부풀리면 그래도 비벼볼 만한 공고였다. 그 중의 하나는 시카고에 있는 A Capital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공고였는데, 여기는 일단 이력서를 접수시켰더니 금방 연락이 왔다. 1단계로 Python 시험을 보란다.
'오.. 이거 괜찮은데? 내 경력이 어떻든 실력을 보고 뽑겠다는 거로군. 좋아. 실력을 보여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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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rba님이 dj-on-steem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zorba님의 [2019/1/31] 가장 빠른 해외 소식! 해외 스티미언 소모임 회원들의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enerva 뉴욕 dj-on-steem/td> DC 근교 hello-sunshine DC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스팀잇에 글 올리기 시작한지 40여일에 불과하긴 합니다.
그렇거니 그간 봐온 글들 중 “첫손에 꼽고 싶습니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군대 얘기’고,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게 ‘군대서 축구한 얘기’라지요?
우리처럼 사회과학을 한 6학년에게는 ‘컴퓨터 얘기’, ‘자연과학 박사가 하는 컴퓨터 얘기’ 쯤이 그에 해당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그 싫어질 게 분명한 얘기에 재미가 솔솔 돋는구먼요.
7탄, 고대하고 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사실 저도 쓰면서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아닌가 걱정하긴 했는데, 재밌게 봐주신다니 다행입니다.

분명 한글로 씌어 있는데 외국어 착시 효과가 나네요. 그나저나 이야기를 어디서 끊어야 되는지 너무 잘 아시네요. ㅋㅋ 편집의 귀재십니다. 다음 편 기대합니다.

저도 쓰면서 너무 전문적인 내용 아닌가 걱정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어떻게 돌려 말할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끝 부분에 항상 다음 편에 대한 힌트를 주며 끝내는 방침을 취하고 있습니다 ^^
이제 슬슬 마무리를 고민해야 하는데, 용두사미 될까봐 걱정되네요.

이제 막 대사까지 ㅎㅎ

조금 오글거리죠? ^^;;

재미있어요. 이제 다음엔 BGM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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