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떠올린 2년 전 어느 날] 허파에 바람든 날

in #kr-pen6 years ago (edited)

2년 전 즈음, 나에게 월급을 주는 연구비 펀드가 불확실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는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했고, 그래서 LinkedIn 프로필을 정비했다. 그리고 Job Seeker라는 옵션을 발동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들 말하는 그 상태다. '몰라서 용감한' 상태.

구직자 옵션을 발동했더니 몇 몇 헤드헌터들의 의미없는 입질들이 있었다. 대부분 내 전공이 뭔지 제대로 보지 않고 '뿌리는' 종류의, 말하자면 전단지 돌리는 듯한 내용 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LinkedIn 상에서 쪽지가 왔다.

Hi,
I am interested in speaking with you about opportunities in technology focused hedge funds and prop trading firms.
Would you consider opportunities?
Thanks,
기술 기반 헤지펀드 회사에 취직하는데 관심있어? 너랑 얘기해보고 싶은데.

헤지펀드? @@
헤지펀드에서 날 왜?
사실 이 쪽지가 장난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처음에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래서 쪽지를 몇 번 더 주고받았다.

Hello,
Thank you for contacting me for an opportunity.
I think that I am so far from the "hedge fund" stuff, hence I feel quite curious about what you want to say.
Please let me know some details.
Best,
나에게 연락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난 내가 "헤지펀드"와는 도통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네가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긴 하네.

I was going to speak with you to gain more of an understanding of your current position, we work with the top hedge funds and prop trading firms that are continuously on the look out for the best people to join them. They look at different kinds of profiles from within the finance industry and outside of it, they are working on very interesting problems / projects and use the latest technology to solve them.
너랑 얘기하려는 것은, 일단 너의 현재 일/능력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야. 우리는 최고의 헤지펀드 회사들과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항상 최고의 인재를 원하지. 그들은 금융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들은 꽤 재밌는 문제/프로젝트와 씨름하고 있고, 그것을 풀기 위해 최신 기술이 필요하거든.

그렇구나. 그들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찾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바로 그런 인재의 한 사람이구나 후훗.

여기서 그와의 대화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전화통화 한다고 돈 들거나 문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가까운 시일내로 약속을 잡고 통화를 하게 된다.

내가 현재 하는 일을 물어봤고, 내가 가진 기술을 확인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리눅스 기반의 파이쏜 프로그래밍을 물었던 것 같고, 그리고 SQL 할 줄 아냐고 물었다. 뉴욕으로 이사갈 의향을 물었고, 난 좋은 오퍼 받으면 안 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가 나에게 그래서 얼마 받길 원하냐고 물었고...

사실 이 통화 하기 전 당연히 연봉에 대해 생각했었고, 인터넷 상으로 좀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한 직업 명칭이나 회사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연히 예측값을 구할 수는 없었고, 그쪽 동네가 워낙 많이 준다고 하니 한 2배 정도 불러볼까 생각할 뿐이었다. 그 비싼 뉴욕 동네 집값 생활비 감당하고도 지금보다 여유가 있는 형편이 되려면 그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너무 높게 부르면 안좋게 보일까 하는 쫄보의 마음도 있는지라...

그래서 그 헤드헌터가 물었을 때 15만불을 불렀다. 나름 세게 부른 거였는데, 그냥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아니 사실은 살짝 '(겨우?) 피식'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갑자기 눈의 확 떠졌다.
신세계가 보였다.
저택이, 그리고 고급 승용차와 윤택한 생활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그 날, 나는 허파에 바람이 단단히 들어앉게 되었다.


2년 후 덧붙이는 말
헤드헌터 말은 한 10% 정도로 축소해서 받아들이면 된다. 그 이상은 희망고문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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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ped님이 dj-on-steem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beoped님의 감사//audit

녁때 동생이 감사 관련 이야기를 했고, dj-on-steem님이 불현듯 떠올린 2년 전 어느 날, 허파에 바람든 날 에서 연구비 이야기를 해서 갑자기 옛날(?)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때는 내가 졸업하고...

재밌네요ㅎㅎㅎ

‘허파에 바람 든 날’
그런 날도 가끔은 생기면 좋지 않을까요?

그 날 전후로 여러 날은 구름 위에서 놀 터이고, 그런 게 정신건강에도 꽤나 도움이 될 터이고.
물론 구름 밑으로 떨어질 때의 ‘허망함’이야 감내해야 하겠지만.

도움이... 되나요? ^^ 그 '허망함'의 반동이 만만치 않아서요 :) 뭐 그래도 이런 기회로 제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엔요? 그 회사 취직했어요?

다음편 써야겠네요. 쓰겠습니다. 다만 결말에 반전은 없어요. ^^

dj님 이거 엄청 재밌어요 ㅋㅋㅋ 뒷 얘기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후편 써야겠지요? 안쓰면 원성이 자자할듯 ^^ 물론 반전은 없지만요.

뉴욕에서 뭐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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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꿨죠 ^^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절단신공을!

그리고 15만불이면 정말 적게 부르셨네요. 헤지펀드에서 최신 기술자를 찾는다면 50만불 불렀어도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을듯...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 그렇습니다. 50만불 받을 위인도 아니구요 ㅎㅎ

오오. ㅎㅎㅎ

zorba님이 dj-on-steem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zorba님의 [2019/1/19] 가장 빠른 해외 소식! 해외 스티미언 소모임 회원들의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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