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소년이 온다

in #kr-newbie6 years ago (edited)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북리뷰를 쓴다는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하면서도 "채식주의자"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위안해 봅니다. 제가 원래 수술장면을 보면서도 워킹데드를 보면서도 밥도 술도 잘 먹는데요. 80년 5월 광주의 동호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읽는 동안은 밥과 술을 먹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거든요.
저는 감정 이입이 아주 빠르고 깊게 되는 편이라 책이나 영화를 끝내고 감정들로부터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이 책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왜냐하면…

나는 소년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비겁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아니, 정대와 너는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 셔터가 내려진 전자제품점 옆 담벼락에 아저씨 셋과 함께 붙어섰다. 그들의 일행인 듯한 남자가 합류하려고 달려오다 어깨에서 피를 뿜으며 엎어졌다.  

소년은 친구의 시신을 찾으러 상무관에 들렀다가 그곳의 시신을 정리하는 일을 돕게 됩니다. 도시의 모든 관들이 동이 나고 상무관의 자리가 비좁아졌는데도 시신은 계속 차고 넘치는 상황입니다.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시신들을 장부에 날짜와 시간을 적고 죽은 사람들의 인상 착의를 기록하며 시취가 온몸에 배도록 땀을 흘리며 시신을 확인하고자 하는 유족들을 만납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찾으러 나간 친구 정대가 옆구리에 총을 맞는 걸 보아서입니다. 개죽음을 피하기 위해 친구를 뒤로 하고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너를 문득 떠올린건 그 낯설고 생생한 밤이 끝나갈 무렵, 먹색 하늘에  마침내 파르스름한 새벽빛이 배어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아. 그렇지. 네가 나와 함께 있었는데. 차가운 몽둥이 같은게 갑자기 내 옆구리를 내려치기 전까지. 내가 헝겊 인형처럼 고꾸라지기 전까지. 아스팔트가 산산히 부서질 것 같던 발소리들. 고막을 찢는 총소리들 속에서 내가 팔을 뻗어올릴 때까지 옆구리에서 솟구친 피가 따뜻하게 어깨로, 목덜미로 번지는 걸 느낄때까지. 그때까지 네가 함께 있었는데.(중략) 넌  여기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살아 있었어. 그러니까 혼이라는 건 가까이 있는 혼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만은 온힘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거였어.  

죽어 영혼이 된 정대는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시체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총을 쏘고 시신을 태우는 군인들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고 너를 찾아가자 생각합니다. 그러나 폭약 소리, 비명 소리, 총신들의 불꽃과  함께 네가 죽는 순간을 느낍니다. 소년은 그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그날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아물지 않는 흉터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인간이라는 사실과 매일을 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한 치욕 속에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되고 네가 되고 당신이 되고 그가 되고 그녀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살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힘겹게 그날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지막 소년의 눈동자를 기억하면서... 

너는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워 있었어.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길게 뻗어가 있었어. 얼굴과 가슴은 하늘을, 두 다리는 벌어진 채 땅을 향하고 있었어. 옆구리가 뒤틀린 그 자세가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어. 숨을 쉴수 없었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 낼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힘으로.  


마음 같아서는이 책 한 권을 몽땅 인용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한강이 써내려간 것은 언어가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 해야 할것은 1980년 광주 뿐 아니라 4.26 세월호도 있습니다.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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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평가에서 스팀이 B-래요! (5위)
^^
좋은 컨텐츠가 즐거운 스티밋을 만드는거 아시죠?

오늘도 엄청 춥다던데 짱짱맨님 짱짱하고 뜨십게 입고 다니세요 ㅎㅎㅎ 언제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 한강... 무슨 말을 할까요 처음 읽었을 때도, 얼마 전 다시 읽었을 때도 한결같이 먹먹하고 죄스러웠던 소설이었어요 한강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한참 울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하고 있는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맞아요. 잊지 않고 살아가요 우리.

뭐랄까 아픔을 조용히 깊숙히 후비는 느낌이랄까요. 오래동안 잔잔한 아픔이죠.

한강씨의 이 작품은 당분간 읽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위에 글도 실눈을 뜨고 띄엄띄엄 읽었어요.
느끼면 아파서 아직은 볼 수가 없습니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아파요 많이. 준비가 되면 읽어보세요. 그전까진 쌀짝만 열어두시고요...

정말 어마어마한 소설이었어요. 읽다가 몇 번이나 몸을 떨고, 또 여러 번 울었습니다.

전 죽음에 대한 두려움같은게 있는데요.... 이 작품이 묘사하는 사후 영혼의 이야기에서는 거의 졸도할뻔했어요 ㅜㅜ

몇일전 영화'꽃잎'을 보고 포스팅을 했는데 아직도 귓가에 김추자의 '꽃잎'이 맴돌아요...꽃잎이 피고 또 질때면...그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그리고...저 한승원선생님과 안면이 있답니다. 고향 앞 바다에서 아침에 산책하시는 아주 찰나...ㅎㅎㅎ자랑, 부녀의 작품 안 읽어봐서 아는 채 못한거는 안자랑^^

어느 동네인지... 목포쪽인가요? ㅋ 담에 만나면 아는체 해주세요. 포스팅 보러갈게요

장흥입니다. 이 책 읽고 가야겠네요. 만나 뵐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이 분의 소설은 정말 이상하게도 읽히지가 않더라고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에겐 아직 이런 섬세한 감수성을 파악할만한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참 안 읽히는 책 있어요. 저한테는 김훈 작가님 글이 그렇답니다. 남한산성 읽는데 진을 뺐답니다 ㅋㅋㅋ

아직 읽지 못해봤네요 ㅠㅠ읽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스윗파파님 읽으시면 울지도 몰라요....

저만 모르고 있었나봐요.. 리뷰만봐도 마음이 콕콕 아프네요..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책 소개 감사해요

울림님 마음에 죽하고 상처를 그릴지도 몰라요 ㅜㅜ

유명한 작가의 책이어도 막상 읽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 일 것 같아요. 더이상 책이 읽히느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요ㅜㅜ 한권을 몽땅 인용해도 모자랄 정도라면 얼른 책을 찾아 읽어야겠습니다~~ 팔로우하고 갑니다. 앞으로 자주 소통해요 !!

오호~왜 또 비관이신지 ㅋㅋㅋ 콜빅님은 쬐끔만 긍정의 시각을 가지시면 더 멋지실것 같아요. 저처럼 무조건 좋은게 좋아보다는 오히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신 모습이 더 좋지만요 ㅎㅎㅎ 자주 만나요

비관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책이 안읽히는 시대인건 사실이고, 그것이 아쉬운건데 비관 운운하시니 살짝 황당하네요..너무 앞서 나가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북리뷰를 쓴다는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라는 말씀에 철저하게 괜찮다고 써드린 댓글입니다. 유명해도 막상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테니, 리뷰를 써도 무리 없다는 댓글이었는데요. 신경 써서 적은 댓글에 비아냥을 받으니 기분 나쁘네요. 제가 언제 그랬는데 "또" 그러냐며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훈계를 하시는지요?

불쾌한 기분이니 사과와 해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불쾌하셨다니 당연히 사과드리겠씁니다. 처음 콜드빅님의 포스팅을 찾아 갔을때 스스로 말씀하신 스팀잇에 관한 개인적 역사에대해서 읽고 제가 댓글로 남기면서 상호간에 약간의 교류감이 있다고 판단된 터라서요. 저는 콜드빅님 입장을 이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썼으니 훈계따윈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부디 마음 풀어주세요. 아무래도 글로 쓰다보니 제맘이 잘못 전달된것 같습니다. 친해지고 싶어서 한말인데 너무 앞서간게 맞군요ㅜㅜ... 죄송합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바로 사과와 해명을 해주시니, 날을 세웠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상호간에 교류감이 있었지요.

저도 에너자이저 님을 좋은 분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댓글에 적잖이 놀랐는데, 다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윗 댓글을 보고 에너자이저님의 포스팅과 그동안 쓰신 댓글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텍스트를 사랑하시고, 진정한 스티미언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저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친근한 댓글에 제가 과민 반응 했던 모양입니다^^;; 저 또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며 사과 드립니다. 이것또한 소통의 한 모습 같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뵙고 소통했으면 합니다. ^^

아닙니다. 제가 경솔했었죠. 글이란게 읽는 분에 따라 해석이 여러가지 일터인데 좀더 신중한 어휘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덕분에 많은걸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시원하게 사과도 받아주시니 기분이 급상승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소통하면서 친해져보도록 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처음 읽고나서 며칠간은 계속 가슴이 먹먹해서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아 그러셨군요. 저도 꽤시간이 걸려서 빠져나왔어요. 이번에 리뷰 쓴다고 들여다보다가 그만 또 빠져버렸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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