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 - 다시 떠돌게 될까?

in #kr-movie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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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가 원작의 판권을 사고 감독을 섭외하고 그 감독이 역으로 제작자인 배우를 섭외한 영화, 논픽션의 원작에 픽션의 시선을 덧댄 영화, 주연과 굵직한 한 조연을 제외하고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노마드족이 자신의 삶을 연기한 영화, 미국의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꼬집지 않지만 숨기는 건 하나도 없는 영화, 노마드족을 동경하게 만들지도 동정하게 만들지도 않는 숨김이 없는 영화, 인생이 담백하고 일상적인 동시에 장엄하고 아름답게 담겨있는 어쩐지 본 적 없이 새로운 영화, 노마드랜드(노매드랜드)



정처 없이 떠돌며 살고 싶었다. 잠시가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계속. 거의 그러려고 했다. 일시적이지만 세상을 떠돌며 집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때로는 사무치게 미칠 것 같이 외로워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 집이 그립지 않았다. 어느 날 돈이 다 떨어지고 방법을 찾지 못해 쫓기듯 집으로 돌아갈 날이 올까 두려웠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고 전적으로 자신감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길 위에서 스치듯 흐르는 게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가장 나다웠다. 책임질 게 없어 자유로운 게 아니었다. 길위의 하루는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착 감기는 옷처럼 저항 없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다. 원래 이렇게 살아온 사람처럼.

올려다보아도 끝이 없는 숲의 나무를 안고, 흙을 밟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물속에 둥둥 떠다니는 펀을 보며 낯익은 기시감이 들었다. 저 느낌이 뭔지 알지. 말로도 사람으로도 받을 수 없는 위로를 건네는 자연을 나도 만난 적이 있었지. 99가지 어려움을 뚫고 찾게 되는 1의 시간이 저거라면 그 가치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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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돌아오자마자 그 모든 감각과 욕망은 내가 놓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졌으니. 노마드로 살기에 능력이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어쩌면 포근하고 안락한 침대, 따뜻하고 깨끗한 온수, 안전망이 되어주는 집을 선택한 걸지도 몰랐다. 많은 이가 그렇듯 편리함의 유혹을 떨쳐내기 힘이 들었다.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핑계로 정착해서 살아보자 결심했다. 코로나가 터진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에서 떠돌고 있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운이 좋았다고.

그러나 지금도 어딘가를 계속 여행하는 여행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이유와 사정으로 능력과 상관없이 노마드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자문하게 된다. 결국 나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될까? 펀처럼 모든 걸 다 상실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면, 다시 떠돌며 살기로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게 나의 본성이고, 어떤 일을 해도 누굴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아물어 화석이 되려면 다시 길 위를 걸어야 할테니. 애써 잊으려 하는 마음 한편이 파헤쳐진 기분이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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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30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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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돌아오고 또 떠날 꿈을 꾸고... 사람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이 영화는 기존과 다르게 세상 경험 다 한 어르신 분들이 노마드 생활을 하는 영화였어요. 도잠님 말처럼 떠나고 돌아오고 그게 우리 DNA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최근 자살 소동으로 정말 죽을 정도로 지인들에게 혼났죠. 하지만 아직도 꿈을 꿉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꿈.

나하님 요새 많이 힘드신가봐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말이죠.
혹시 바쁘신 와중에 저라도 대화상대가 필요하시다면 알려주세요.
아무도 없는 듯 마음 편한 상태로 많은 아는 사람들 속에서 평온하시길 바랄게요.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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